[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미국인들의 소비가 꺾이기 시작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지표들이 연이어 나왔다. 소비 감소 징후는 생산자물가지수(PPI)와 소매판매가 전월보다 하락 또는 감소한데서 감지됐다. PPI 하락과 소매판매 감소는 소비자물가 상승세의 의미 있는 둔화를 예고하는 신호일 수 있다.

미국 노동통계국은 15일(이하 현지시간) 2월 PPI가 전달보다 0.1% 하락했다고 발표했다. 생산자물가의 상승폭이 감소한 정도가 아니라 물가 자체가 0.1% 내려갔다는 얘기다. 이는 적어도 생산자물가의 단기 흐름이 하락 전환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물론 전년 동월 대비로는 4.6%의 상승률을 기록해 추세적 흐름에선 생산자물가가 여전히 높은 수준에 있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도 1월(5.7%)에 비하면 크게 축소된 수준이었다.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PPI는 기업 간의 1차 거래에 적용되는 상품·서비스 가격을 토대로 작성되며 흔히 도매물가로 불린다. 추후 시중 소매물가의 토대가 되기 때문에 소비자물가지수의 선행지표로 인식되어 있다. 실제로 PPI는 수개월의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지수에 반영된다.

미국의 2월 PPI는 전월 대비와 전년 동월 대비 결과치 모두 유의미한 변화를 보였다. 전월 대비 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데다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이 1%포인트 이상 축소된 것은 예사롭지 않은 사례다.

작년에도 비슷한 현상을 보인 때가 있긴 했었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정점(9.1% 상승)을 찍은 지난해 6월 직후가 그때에 해당한다. 작년 7월 PPI는 전월 대비 -0.3%, 전년 동월 대비 9.7% 상승률을 기록했다. 한 달 전에 비해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이 1.5%포인트나 축소됐지만 당시엔 미국의 물가 수준 자체가 워낙 높았다는 점에서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지금과 달랐다. 최종 집계된 미국의 작년 6월 PPI 상승률은 11.2%였다.

하루 전 노동통계국이 2월 CPI를 발표했을 때만 해도 일반 소비자나 자본시장 투자자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확실하게 꺾이고 있다는 확신을 주기엔 부족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2월 CPI의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은 6.0%였다. 전달(6.4%)보다 상승폭이 줄었지만 고물가가 끈끈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였다. 전월 대비 CPI 상승률은 0.4%였다.

둘 모두 시장이 예상했던 수준에 부합했다.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의 획기적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사진 = AP/연합뉴스]
[사진 = AP/연합뉴스]

물가의 추세적 흐름을 잘 보여주는 근원CPI도 디스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켜주기엔 많이 부족했다. 2월의 근원CPI는 전년 동기 대비 5.5%, 전월 대비로는 0.5% 상승했다. 한 달 전 각각의 상승률(5.6%, 0.4%)과 별반 차이가 없는 정도였다.

이처럼 CPI가 끈끈한 흐름을 보여준 것에 비하면 2월 PPI에서 나타난 변화는 비교적 큰 편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시장은 디스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를 다시 키울 수 있게 됐다.

같은 날 상무부가 발표한 2월 소매판매 또한 시장을 고무시킬 만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발표에 따르면 2월 소매판매는 전달보다 0.4% 감소했다. 1월 소매판매가 전달보다 3.2% 증가했던 것에 비하면 미국인들의 소비가 근래 들어 크게 줄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2월 통계치는 소비 증가폭이 축소된 정도를 넘어 소비 자체가 줄었음을 보여주었다.

상무부의 소매판매 현황은 미국의 소매점에서 실제로 판매된 상품을 토대로 작성된다. 서비스 판매 현황이 배제됐다는 한계를 지니지만, 소비자물가의 흐름을 예측하는 보조지표로서 가치를 지닌다.

미국에서 소비는 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소비성향이 높은 3억 이상의 인구를 가진 까닭에 소비는 미국 실물경제에서 70%에 육박하는 비중을 차지한다. 소비가 미국 경제를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의미다. 따라서 미국에서 소비가 감소한다는 것은 조만간 물가가 하락하고 경기가 침체될 가능성이 커져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분위기는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 이사회 의장이 지난달 초 통화정책 회의를 마친 직후 ‘디스인플레이션’을 누차 언급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그 발언 이후 미국의 각종 물가지표가 끈끈한 흐름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자 파월 의장에 대한 불신이 커지기도 했지만, 최근 들어 상황은 다시 반전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는 연준이 오는 21~22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만 올릴 가능성을 키워주었다. 미국의 소비 위축과 경기 침체 가능성 대두는 연준의 긴축 강화 행보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일부 전문가들은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의 여파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점까지 감안하면 연준이 이번엔 기준금리를 동결시킬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울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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