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무역수지가 12개월 넘게 적자 행진을 이어갔다. 더 심각한 점은 적자폭이 날로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올해 들어 이달 20일까지 석 달도 안 된 시점에서 관세청이 집계한 무역수지 적자 누계는 이미 지난해 1년간 적자의 절반을 넘어섰다.

1차적 원인은 수출 부진이다. 종목별로는 반도체, 지역별로는 중국으로의 수출이 현저히 감소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반도체 및 대(對)중국 수출은 제각각 올해 하반기나 돼서야 서서히 회복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당분간은 무역수지 개선을 크게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1일 관세청이 발표한 ‘2023년 1월 1일~3월 20일 수출입 현황’에 의하면 이달 1~20일 수출액(통관 기준, 잠정치)은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17.4% 감소한 309억4500만 달러에 그쳤다. 조업일수를 고려해 산출한 일별 수출 실적은 더 크게 감소해 마이너스 폭이 23.1%나 됐다. 이달 상순(1~10일)과 중순(11~20일)의 조업일수 합은 14.5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일이 더 많았다. 하루 더 조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출액은 작년보다 65억2200만 달러 감소했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전년 동기 대비 수출액의 감소 행진은 반년째 이어질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올 들어 이달 20일까지 누적된 무역수지 적자 소계는 241억300만 달러에 이르렀다. 이는 지난해 우리나라가 기록한 연간 무역적자(478억 달러)의 50.4%에 해당한다. 우리나라는 지난해에 역대 최대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3월 20일까지의 올해 누적 무역적자는 작년 같은 기간(65억2400만 달러) 대비로는 4배에 가까운 규모다.

무역수지 적자는 지난달까지 12개월 간 이어졌다. 이달치 적자만 20일까지 63억2300만 달러인 것을 보면, 연속 적자 기록은 곧 13개월로 경신될 가능성이 크다. 무역적자가 1년 이상 이어지기는 1995년 1월~1997년 5월 이후 처음이다.

우리의 수출액은 지난달까지 5개월 연속 감소했다. 이런 흐름은 이달 하순에 획기적 변화가 없는 한 6개월째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월간 수출이 6개월 연속 감소한 마지막 사례는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인 2020년 3∼8월의 일이었다.

수출 부진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는 반도체와 중국이다. 품목별로 살펴보자면 반도체 수출 감소가 우리 수출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반도체는 우리 수출에서 20%에 육박하는 몫을 감당해온 효자였으나 최근 들어 그 규모가 크게 줄었다. 우리의 주력 수출 품목인 메모리 반도체는 현재 수요 부진과 가격 하락에 시달리고 있다. 대만이 TSMC 등의 비메모리 반도체 생산능력을 앞세워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달 상·중순의 반도체 수출액은 1년 전 같은 기간에 비해 44.7% 감소한 43억2300만 달러로 집계됐다. 반도체 수출 감소만 약 35억 달러에 달했다. 월간 집계를 기준으로 한 반도체 수출은 지난달까지 7개월 연속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추세는 이달을 넘어 상반기 내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석유제품(-10.6%)과 철강(-12.7%), 무선통신기기(-40.8%), 정밀기기(-26.0%), 선박(-57.0%) 등의 수출 규모도 1년 전보다 줄었다. 반면 승용차(69.6%) 수출은 비교적 크게 늘었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무역수지 악화의 또 다른 원인은 우리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으로의 수출 부진이다. 이달 1~20일 대중(對中) 수출은 61억8400만 달러에 머물렀다. 1년 전 대비 증감률은 -36.2%다. 대중 수출 감소세는 지난달까지 9개월째 이어져왔다. 이달 상·중순 무역수지 적자 중 중국이 차지한 액수만 21억9700만 달러에 이른다. 20일 동안의 전체 무역수지 적자액(63억2300만 달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4.7%다.

4대 주요 수출국으로의 수출액도 전반적으로 줄어들었다. 이달 1~20일 기준 주요 지역별 수출액은 유럽연합(EU) 35억1000만 달러, 베트남 26억7500만 달러였다. EU와 베트남을 상대로 한 수출액은 1년 전에 비해 각각 8.9%, 28.3% 줄어들었다. 중국 다음의 교역국인 미국을 상대로 해서는 1년 전보다 4.6% 증가한 56억600만 달러를 수출했다. 기타 주요 교역국인 일본과 인도 등으로의 수출도 차례로 8.7%, 3.1% 줄어 14억3100만 달러와 9억300만 달러를 각각 기록했다.

이달 1~20일 수입액은 372억6900만달러로 5.7% 감소했다. 석탄(19.4%)과 승용차(24.5%), 기계류(8.5%) 등의 수입은 늘었고 원유(-10.3%), 반도체(-4.8%), 가스(-23.1%), 석유제품(-34.7%) 등의 수입은 줄었다. 이달 20일까지의 연간 누계 수입액은 1515억44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3% 감소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수출 현황과 관련, “글로벌 경기 상황과 반도체 가격 하락세 지속 등으로 인해 우리 수출 여건은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수출 부진이 상반기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하반기부터는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활성화), 반도체 시황 회복과 함께 수출이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등 업종별 협회나 한국무역협회 등도 비슷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21일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수출 부진은 올해 2분기부터 다소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원이 밝힌 올해 2분기 수출산업경기전망지수(EBSI)는 1분기(81.8)보다 크게 개선된 90.9를 나타냈다. 이는 작년 수출 실적 50만 달러 이상의 기업 1206개를 조사해 얻은 자료를 토대로 산출됐다. EBSI는 작년 2분기 이래 줄곧 100 아래를 맴돌고 있다.

지수가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기준선인 100을 밑돌고 있어서 수출 부진에서 완전히 탈피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 달 지수는 수출 실적 악화의 정도가 다소 완화될 것임을 예고했다고 볼 수 있다.

지수상 수출 개선이 크게 기대되는 품목으로는 선박(146.5)과 플라스틱·고무·가죽제품(125.8), 석유제품(102.1), 가전(101.0), 자동차·자동차부품(100.9) 등을 꼽을 수 있다. 반도체는 단가 하락과 미·중 갈등 심화로 전체 품목 중 가장 낮은 52.0을 기록했다.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