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내년도 정부 예산 편성이 시작됐다. 정부 예산은 향후 정기국회 본회의에서 확정되기까지 길고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다단계의 대장정을 진행해야 하는 만큼 정부는 매년 3월을 넘기기 전에 이듬해 예산을 편성하는 작업에 돌입한다.

올해의 경우 해당 작업은 28일 시작됐다. 예산 관련 부처의 사전작업까지를 포함하면 사실상 예산 편성 작업은 그 이전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공식적인 예산 편성의 시작은 국무회의를 통해 ‘예산안 편성지침’을 확정하는 일이다. 이날 확정된 지침에는 정부의 국정운영 철학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재정 운용 방향과 그에 따른 예산 편성 방침 등이 두루 담긴다. 세부적으로 어디에 중점을 두고 재정을 운용할지, 어떤 분야에 대해 재정 투입을 줄여 예산을 절약할지 등에 대한 기본방침도 지침에 포함된다.

이렇게 마련된 지침은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서 모든 부처로 보내지고, 각각의 부처는 저마다 국정 운영의 기본틀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저마다의 입장을 반영해 예산요구안을 작성한다. 이는 다시 예산 관리 부처로서 경제부총리가 통할하는 기획재정부로 보내져 취합된다. 부처들을 상대로 한 의견 수렴은 5월 말까지 진행된다.

국무회의 모습. [사진 = 연합뉴스]
국무회의 모습. [사진 = 연합뉴스]

각 부처로부터 의견이 취합되면 기재부는 이를 참고해 정부 예산안을 편성하게 되고, 이 안은 대통령 보고를 거쳐 국무회의에 회부된다. 이 때 실무를 담당하는 곳이 기재부 예산실이다. 국무회의에서 위원들의 심의·의결을 마친 뒤 대통령 승인 절차를 거쳐 발표되는 것이 이른 바 ‘정부 예산안’이다. 예산 편성으로 통칭되는 이 모든 과정은 행정부의 고유 권한에 해당한다.

정부 예산안은 회계연도 개시 90일 전에 국회에 제출돼야 한다. 이를 감안, 역대 정부들은 정기국회 개막 시점에 맞춰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해왔다. 예산 편성권을 행정부가 갖는 것과 달리 예산 심의·확정권은 국회에 주어진 헌법상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이다.

국회로 넘어간 정부 예산안은 각 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등의 심의를 거쳐 본회의로 회부되고, 의결을 통해 최종 확정된다. 국회는 예산안 심의를 통해 불요불급한 요소가 발견되면 원안에서 일정액을 삭감할 수 있지만, 증액은 불가능하다. 이 역시 헌법 조항에 명시돼 있는 내용이다.

윤석열 정부도 2024년도 예산안 마련을 위해 28일 이 같은 절차를 시작했다. 시작점은 이날 열린 국무회의였다.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내용은 ‘2024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지침’이었다.

이번에 의결된 예산안 지침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작성된 것이어서 그 내용에 쏠리는 관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지침의 내용은 이전 정부의 그것과 큰 차이를 담고 있다. 차이점을 한 마디로 설명하면 이전 정부 때의 ‘재정역할 강화’가 ‘건전재정 확립’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기본 방향은 진작부터 예고돼 있었다. 정부는 지난해 발표한 2022~2026년 국가재정운용계획 중기 재정지출 계획을 발표하면서 2024년도 정부 예산안이 올해보다 4.8%(본예산, 지출 기준) 증가한 669조7000억원으로 짜여질 것이라 전망했었다. 이전 정부 시절 본예산 기준으로 예산안 규모가 매년 8~9%대 증가율을 보였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추경예산까지 수차례씩 편성하곤 했던 것과는 크게 비교되는 증가폭이다.

작년 예고대로 간다면 내년도 정부 예산안 규모는 증가율 5%를 넘지 않는 선인 670조 안팎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이날 공개된 지침에는 정부의 긴축예산 편성 의지가 담겨 있었다. 발표된 지침엔 세 가지 대원칙이 소개돼 있다. 그 셋은 ▲건전재정 기조 유지를 통해 성장잠재력 확충과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하고 ▲사회적 약자 보호, 청년 일자리 창출, 국가의 기본기능 강화에 중점 투자하며 ▲무분별한 현금 지원, 보조금 부정 수급, 복지사업의 도덕적 해이를 철저히 차단한다는 것 등이었다.

실행 방안의 대강은 재정의 엄격한 총량관리를 통해 현금성 보조금 지급 등 불요불급한 지출을 억제한다는 것이다. 대신 “약자복지와 양질의 청년 일자리 창출, 국가의 기본 기능 수행 강화에 중점을 두고 과감한 투자를 이어간다”(최상대 기재부 2차관)는 것이 정부의 기본방침이다.

세 가지 중점 사안 중 국가의 기본기능 수행 강화는 국방과 치안 등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지키는 일, 행정서비스 보강에 예산을 집중적으로 투입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국방 분야에서는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무기체계를 첨단화하는 일과 장병 처우 개선 등에 예산을 집중 배정하기로 했다. 공공안전 확립과 관련해서는 마약범죄와 전세 사기, 보이스피싱 등의 예방은 물론 재난 대응을 위한 안전시스템 구축에 힘쓰기로 했다.

양질의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민간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방향으로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원전과 방위산업 등 새로운 수출 동력 증대와 유망 스타트업 육성 등이 구체적 실행방안에 포함됐다.

약자 복지 증대는 현금성 복지를 줄이고 대신 취약계층에 대해 맞춤형 서비스 복지를 늘리는 방향으로 추진된다.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복지제도의 보장성은 강화한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지침엔 부모복지를 내년부터 월 100만원으로 올린다는 내용도 들어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건전 재정 기조의 견지’를 강조하면서 “정부가 해야 할 일에는 과감히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해야 할 일로는 국방과 법치, 미래성장 기반과 고용창출 역량 제고를 통한 약자복지 강화를 제시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회계와 자금 집행이 불투명한 단체에 지급되는 보조금, 인기영합적 현금 살포, 사용처가 불투명한 보조금 지급 등 부당한 재정 누수 요인을 철저히 틀어막고, 복지전달체계를 효율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