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부동산 시장을 움직이는 핵심 변수는 역시 수요와 공급이었다. 서울 강남구 아파트의 전셋값이 올해 들어서만 7.8% 하락하며 1위 자리마저 잃은 것이 또 하나의 방증이다.

30일 부동산 정보제공업체 경제만랩이 KB부동산의 주택가격 동향을 분석해 제시한 바에 따르면 강남구 아파트의 3월 평균 전셋값은 3.3㎡당 3411만3000원이었다. 이는 지난 1월의 3700만7000원에 비해 289만4000원 하락한 값이다. 강남구 아파트 전셋값의 하락률(7.8%)은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전체 하락률 4.7%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서울 아파트의 3.3㎡당 평균 전셋값은 지난 1월 2398만3000원에서 2285만5000원으로 떨어졌다. 하락폭은 112만7000원으로 강남 하락폭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상대적으로 크게 하락한 탓에 강남 아파트 전셋값의 전국 순위는 2위로 내려앉았다. 대신 1위를 차지한 곳은 서초구였다. 3월 서초구 아파트의 3.3㎡당 평균 전셋값은 강남구보다 75만2000원 높은 3486만5000원이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일대의 아파트들. [사진 = 연합뉴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일대의 아파트들. [사진 = 연합뉴스]

강남구 다음으로 전세가격 하락률이 컸던 곳은 동작구(-7.3%)와 강북구(-6.7%), 송파구(-5.0%), 성동구(-4.8%) 등의 순이었다. 자치구별 하락폭에 차이가 나타나면서 전세가격 순위도 재편됐다. 서초·강남구 다음으로 3.3㎡당 전셋값이 비싼 지역은 용산(2764만3000원), 송파(2751만4000원), 성동(2732만7000원) 등이었다. ‘마·용·성’의 일부인 마포구 아파트의 3.3㎡당 평균 전셋값은 성동 다음으로 높은 2617만원이었다.

서울에서 3.3㎡당 전셋값이 가장 싼 곳은 1542만4000원으로 집계된 도봉구였다. 강북구는 도봉구보다 조금 높은 1650만8000원으로 바로 앞 순위를 차지했다.

강남구 아파트가 올 들어 가장 큰 폭의 하락률을 기록하게 된 원인은 공급량 증가였다. 강남구에는 올해에만 1만 가구 이상의 새 아파트가 들어선다. 최근 입주일 연기로 논란을 빚다가 지난달 입주를 시작한 개포 자이 프레지던스의 가구 수만 해도 3375가구다. 여기에 더해 오는 11월 말엔 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 아파트단지 6702가구가 새로 입주민을 맞이한다. 오는 6월 중엔 대치 푸르지오 써밋(489가구)도 입주를 시작한다.

주공1단지를 재건축해 새로 지어지는 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는 당초 11월 2일 입주를 시작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 여파로 공사 일정이 예상보다 순연되는 바람에 입주일이 11월 30일로 재조정됐다. 입주를 늦추더라도 11월은 넘기지 않겠다는 조합 측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였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강남구 아파트의 전세가 하락은 실거래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실거래가 공시시스템에 의하면 강남구 일원동 한솔마을 아파트 단지의 전용 84.73㎡ 아파트는 올해 1월 7억3000만원(2층)에 전세 거래됐으나 이달엔 5억원(2층)에 전세계약을 마쳤다. 두 달 간격으로 같은 평형의 전세가가 2억3000만원이나 하락한 것이다.

강남구 도곡동의 도곡우성 전용 84.83㎡의 경우 지난 1월 6억8000만원(13층)이었던 전세가가 이달엔 6억원(10층)으로 내려갔다. 예정된 입주 물량이 풍부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강남구의 아파트 전세가격은 추후 더 내려갈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최근 들어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전반적으로 하락 추세를 보여왔다. ‘KB 부동산 보고서’ 분석 결과 전체 주택의 전셋값도 지난 한 해 동안 전국에서 2.5%, 수도권에서는 4.0% 하락했다. 이 같은 현상은 고금리 시대를 맞아 대출이자 부담이 크게 늘어난 데다 역전세 및 전세사기 사건 등으로 전세를 기피하는 기류가 나타난 것과 관련돼 있다.

하지만 강남구 아파트의 경우 역전세 및 전세사기 우려에서 비교적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전세가율이 다른 지역에 비해 낮고, 전세 사기 발생 빈도 또한 단독주택이나 빌라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강남구 아파트 전셋값이 가장 크게 하락한 것은 결국 수요공급의 원칙 때문이라 풀이할 수밖에 없다.

지역 전체를 놓고 볼 때 전·월세 거래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꾸준히 줄고 있다. 이날 국토부가 발표한 ‘2월 주택통계’에 따르면 지난달의 전·월세 거래량(신고일 기준, 비아파트 포함)은 27만3114건이었다. 이중 전세는 12만847건(44.2%), 월세는 15만2267건(55.8%)이었다. 월세 비중은 지난달보다 1.2%포인트, 작년 동기보다는 8%포인트 이상 높아졌다.

그러나 주택 유형을 아파트로 한정하면 최근 들어 전세를 선택하는 세입자 비중이 다시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부동산R114가 국토부의 아파트 전·월세 실거래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1월 체결된 전·월세 계약에서 전세가 차지한 비중은 58.4%(2만2033건)였다. 이는 지난해 12월의 52.6%(2만2806건)보다 5.8%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아파트 전세 선호의 부활 흐름은 월세 부담이 점차 커지고 있는데 반해 전세가격은 전반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현상과 맞물린 것으로 보인다. 아파트 전세가의 전반적 약세는 찾는 이에 비해 매물이 더 많이 늘어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부동산R114는 전셋값 약세 흐름이 이어지면서 앞으로도 계약갱신권 사용을 포기한 뒤 가격이 낮은 신축 아파트 등으로 이주하려는 이들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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