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주택 시장이 특정 가격대 주택과 세대를 중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각종 통계자료들은 서울의 6억~9억대 아파트를 필두로 살아난 주택거래 분위기가 15억 이하 중고가 아파트로까지 번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주도하는 층은 2030이다. 그 배경엔 추경호 부총리로 경제사령탑을 바꾼 윤석열 정부의 대출규제 완화 정책이 자리하고 있다.

아직 온기가 부동산 시장 전체로 번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역적으로는 서울에서, 주택 종류별로는 아파트, 그 중에서도 6억~15억원 구간의 아파트가 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활발히 거래되고 있다는 의미다. 전체 부동산 시장은 여전히 침체 국면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비쳐진다.

이를 입증해주는 자료가 국토교통부의 ‘2월 주택 통계 발표’다. 이 자료에 따르면 올해 1~2월 전국 단위의 주택거래 건수(신고일 기준)는 6만6952건이다. 1년 전 같은 기간에 비해 21.1% 줄어든 수치다. 최근 5년간의 1~2월 누계 평균치와 비교하면 감소폭은 53.0%로 더욱 커진다. 서울의 경우 감소폭이 더 크다. 올해 1~2월 거래 건수의 1년 전 대비 감소율은 30.0%, 최근 5년간 1~2월 누계평균치 대비 감소율은 70.3%에 이른다. 주택 매매 시장이 여전히 냉랭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료들이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아파트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사정이 조금 달라진다. 아파트 역시 매매가 활발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기타 주택에 비해서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예를 들어 올해 1~2월 누계 거래량은 4만9178건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감소율은 3.0%다. 전체 주택 감소율이 21.1%에 이른 것과 비교하자면 거래가 비교적 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올해 1~2월 비(非)아파트의 전년 동기 대비 거래 감소율은 48.0%였다.

범위를 서울 아파트로 한 번 더 좁히면 분위기가 크게 달랐음을 실감하게 된다. 올해 1~2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전년 동기보다 28.4% 증가한 3447건으로 집계됐다.

이런 현상은 국토부의 실거래가 공개시스템 자료를 통해 확인된다. 자료 분석 결과 지난 2~3월 중개업소를 통해 거래된 서울 아파트 3879건(4일 신고 기준) 가운데 6억 초과 9억 이하 아파트의 거래 건수는 1189건이었다.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7%였다.

이는 직전 2개월(2022년 12월~2023년 1월) 동안 거래된 1967건 중에서 같은 가격대 아파트 거래가 차지한 비중이 28.8%(567건)였던 것과 대비된다.

9억 초과 15억 이하 가격대의 아파트 거래도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가격대 아파트의 지난 2~3월 거래 비중은 28.3%(1098건)였다. 이는 직전 2개월(2022년 12월~2023년 1월) 동안 나타난 같은 가격대 아파트 거래 비중 25.8%(507건)보다 2.5%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그래픽 = 경제만랩 제공/연합뉴스]
[그래픽 = 경제만랩 제공/연합뉴스]

이를 두고 정부가 생애최초 대출을 늘리고, 9억원 이하 주택 구입을 보조할 목적으로 특례보금자리론을 도입한 것 등이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정부는 올해 1월말부터 소득과 상관없이 9억원 이하 주택에 대해 최대 5억원까지 연 4%대에 장기대출해주는 특례보금자리론을 신설했다. 또 생애최초 주택 구입자에게는 규제지역인지 여부와 무관하게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80%까지 높이는 동시에 대출 한도를 4억에서 6억원으로 늘리는 조치를 취했다. 이들 조치는 사실상 주택 매매시장에 처음 뛰어드는 2030을 겨냥한 것들이었다.

금리가 정점에 도달했다는 인식이 퍼진데다 금융당국이 은행 등을 상대로 대출금리 인하를 압박하면서 대출금리 상승세가 주춤해지자 갈아타기 수요도 가세한 것으로 분석된다.

2030의 활발해진 움직임을 잘 보여주는 것이 한국부동산원의 최근 분석 자료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2월 30대 이하의 전국 아파트 매입 비중은 31.96%를 기록했다. 이는 젊은 층이 ‘영끌’을 통해 부동산 매입에 열을 올렸던 당시인 2021년 1월의 33.0%와 맞먹는 수준이다. 특히 서울 아파트를 상대로 한 2030의 지난 2월 매입 비중은 34.7%를 기록했다. 전달(30.8%) 대비 상승폭이 3.9%포인트나 된다.

2030의 부동산 매입 증가 현상을 두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수년전 영끌로 부동산을 샀다가 갑자기 솟구친 대출금리에 낭패를 본 사례가 많았다는 점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것이 비판론자들의 지적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도 부동산 대출규제 완화 정책을 설명하면서 “빚 내서 집 사라는 정책이 아니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단지 과하게 적용돼온 규제를 정상화하려는 것이 정부 방침이라는 얘기였다.

우려를 키우는 이유 중 하나가 고금리 시대의 장기간 지속 가능성이다. 최근 들어 엇갈리는 전망이 나오고는 있지만 고금리 시대가 금세 종식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금융 전문가들의 대체적 관측이다. 세계적으로 고금리 시대를 주도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부터가 올해 안에는 통화정책의 기조 변화가 없을 것이란 점을 공언하고 있다.

고금리 시대 장기화 와중에 높은 대출이자를 갚는 이들이 많아지면 소비가 더욱 위축돼 경제 전반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지금의 집값 수준이 여전히 높고 주택 공급 예정량도 적지 않아 부동산 시장 경착륙 가능성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점도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다.

주택건설업체들의 주택시장 전망도 그리 밝은 편이 아니다. 지방을 중심으로 미분양과 입주 포기 사례가 많아지면서 주택건설업체들 중엔 어려움을 호소하는 곳이 적지 않다. 주택 시장이 침체에 빠진데다 정부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가 줄어든 바람에 지난 한 해 동안 부도를 낸 종합건설업체만 해도 5곳에 이른다. 건설업체들 사이에서는 향후 주택건설 시장이 4~5년은 침체에 빠질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KB국민은행 박원갑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대출 문턱이 낮아지고 금리도 내리면서 매수심리가 다소 회복됐다”면서도 “다만, 글로벌 금융 불안과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이 여전해 주택 거래량이 크게 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