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한국은행이 또 한 번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지난 2월과 이달의 통화정책 회의에서 연속으로 기준금리 3.50%를 유지한 것이다. 이로써 2021년 8월부터 이어져온 기준금리 인상 행보가 비로소 종료됐다는 분석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11일 한국은행은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기존의 3.50%에서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회의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금리 동결이 만장일치 의결로 이뤄졌다고 전했다. 다만, 위원 7명(이 총재 포함) 중 5명은 향후 3개월 안에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인상될 가능성을 열어두었다고 부연했다. ‘한국판 점도표’를 이번에도 공개함으로써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결정은 시장의 예상과 부합했다. 수출 부진에 의해 경기가 둔화되고 있고, 물가가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는 점이 미리부터 금리 동결을 전망케 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결과가 예상대로 나오자 시장의 전망은 한 걸음 더 앞서가는 양상을 띠었다. 3.50%가 이번 기준금리 인상기의 정점(최종금리)일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도 경제 환경에 큰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 한 한은이 무리하게 기준금리 인상을 시도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볼 때라는 인식이 한은 내부를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정점 인식을 지지하는 첫 번째 요인은 물가 흐름이다. 지난달 이창용 총재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월에 4.5%, 연말엔 3%대에 이를 것이란 전망을 제시한 바 있다. 이날 한은이 금리를 동결했다는 것은 물가 흐름이 한은의 예상 경로를 벗어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총재의 당시 발언 이후 발표된 공식 통계에 의하면 3월 소비자물가의 전년 동기 대비 상승률은 4.2%였다. 이 총재의 예상보다 낮게 나타난 셈이다. 이런 추세라면 연말 상승률 3%대 달성엔 무리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7월 6.3%를 찍었던 소비자물가의 월별 상승률은 올해 1월까지 5%대를 유지했으나 2월부터 4%대로 떨어졌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경기 둔화가 가시화되고 있는 점도 기준금리 동결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우리 경제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지난해 4분기에 -0.4%를 기록했다. 상황은 올해 1분기라고 해서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고작 플러스 전환을 바라야 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못하다. 가장 큰 원인은 수출 부진이다. 그 탓에 관세청이 집계하는 우리나라의 통관 기준 무역수지는 지난달까지 13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최후의 보루로 여겼던 경상수지도 올해 1~2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물가와 경기 상황을 종합하면 한은으로서는 당분간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물가가 느리지만 안정세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경기를 더욱 냉각시킬 카드를 굳이 선택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한은은 우리 경제가 올해 1.6%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한은이 곧 이보다 낮은 전망치를 다시 제시할 것으로 예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은의 성장률 수정 전망치는 오는 5월에 제시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도 국내에서는 금리 인상기가 종료됐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주 실장은 “기준금리를 두 번 연속 동결한 뒤 오는 5월에 다시 올리면 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변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3.50%가 한은의 최종금리가 되려면 경제 상황이 한은이 예상하는 경로대로 진행돼야 한다. 만약 돌발 변수가 나타난다면 최종금리 수준은 언제든 재조정될 수 있다. 가능성으로 보면 하향조정보다는 상향조정일 가능성이 크다.

우선 지목할 수 있는 변수는 국제유가다. 당초 한은은 국제유가가 올해엔 배럴당 70~80달러 선을 유지할 것으로 가정했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변했다. 산유국들의 감산 결정이 일차적 원인이다. 여기에 더해 우크라이나 전쟁이 조금만 악화되는 기미를 보여도 배럴당 100달러를 넘길 가능성이 있다.

최근 정부가 인상을 보류한 전기·가스 요금 추이도 기준금리 인상을 압박할 수 있는 요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수 부족에 시달리는 정부가 유류세 인하 철회를 고민 중인 점도 문제로 떠올랐다. 물가 인상을 자극할 수 있는 변수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또 하나 신경 쓰이는 것은 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움직임이다. 현재 시장 전문가들은 연준이 5월 초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릴 것이라는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예정대로 간다면 이미 역전 상태에 있는 한·미 간 기준금리 격차는 1.75%포인트로 더 벌어진다.

문제는 이 정도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가 탈 없이 돌아갈 것이냐 하는 점이다. 자칫 환율 저항선이 일거에 무너지면서 외화 자본이 빠르게 빠져나간다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 한은으로서는 이런 상황을 가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짐작된다.

지금도 원/달러 환율은 안정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환율은 이달 들어 1310~1320원대 초반 구간에서 등락하고 있다. 대외 경제환경 변화에 민감한 우리 경제가 수출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이 원화 약세를 자극하는 원인이다. 최근 원화는 세계적 흐름에 역행해가며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일본의 엔화보다도 빠른 속도로 가치 하락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한은으로서는 환율 관리 차원에서라도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금리 추이와 관련한 이창용 총재의 발언은 조심스러웠다. 그는 시장 일각에서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을 언급하면서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 총재는 또 “물가가 중장기 목표(2%)로 수렴한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는 금리 인하 논의를 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