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전기·가스 요금과 유류세 문제가 소비자물가 관리의 뇌관으로 부상했다. 이들 현안은 시한폭탄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물가관리 당국을 불안케 하는 요인이 돼버렸다. 전기·가스료를 인상하고 유류세 인하조치를 거둬들여야 한다는 데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그렇게 하면 더디게 축소되고 있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다시 커질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정부는 일단 유류세 인하조치를 연장하는 결정을 내렸다. 18일 기획재정부는 이달 말 종료되는 유류세 한시 인하조치를 오는 8월까지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재정 여건이 녹록지 않지만 민생 부담이 너무 커지고 있다는 판단을 한 결과다. 이 결정으로 휘발유 25%, 경유 37%의 유류세 인하는 4개월 간 더 이어지게 됐다.

전기·가스 요금은 조만간 적정 수준만큼 올린다는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여당인 국민의힘이 두 사안에 대해 갖고 있는 의견과 연결돼 있다. 여당은 유류세 인하조치에 대해서는 연장 의견을, 전기·가스료와 관련해서는 조건부 인상 의견을 나타내왔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여당의 이 같은 입장은 내년 총선을 의식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총선이 다가오는 마당에 모처럼 줄어들고 있는 물가 상승폭이 다시 확대되면 집권당을 향한 민심이 악화되리라는 것은 뻔한 이치다.

유류세 문제의 경우 여당은 일찍부터 정부에 인하조치 연장을 촉구한 바 있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지난 17일 열린 당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국내 소비자물가와 유가 동향, 국민 부담 등을 거론하면서 정부를 향해 유류세 인하조치의 연장을 검토해달라고 촉구했다.

이에 정부도 호응할 기미를 드러냈었다. 물가관리 총책임자인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같은 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답변하면서 “유류세 인하조치의 연장 방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이 여당이 유류세 인하조치 연장을 정부에 건의했음을 밝히며 정부의 관련 입장을 묻자 내놓은 답변이었다.

추 부총리의 발언은 두루뭉수리했지만 그 당시 이미 인하조치를 연장하는 방향으로 해당 이슈를 다루겠다는 의지를 굳혔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정부의 입장도 여당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초엔 유류세 인하 조치를 점차 축소해나가다 자연스레 폐지하는 것을 검토했으나 국제유가 동향 변화에 스탠스를 바꾼 것으로 분석된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이는 추 부총리가 지난주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참석차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 발언을 통해 유추될 수 있었다. 추 부총리는 당시 유류세 운영 방안에 대해 곧 결정을 내리겠다고 밝히면서 “최근 OPEC플러스가 감산을 결정해 국제유가 불확실성이 커졌으므로 민생 부담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 동안 배럴당 60달러대로 하락했던 국제유가는 최근 산유국들이 감산 결정을 하는 바람에 80달러대로 올라섰다. 이로 인해 소비자물가는 다시 상승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이런 상황이 물가관리 당국으로 하여금 유류세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바꾸게 한 것으로 분석된다.

전기·가스 요금은 인상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31일 전기·가스료 2분기 요금 인상 방침을 잠정 보류한 뒤 고심을 거듭해왔다. 그에 앞서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들 에너지 요금 인상 방안을 마련해 여당에 제시한 바 있다. 정부는 이들 요금의 인상을 계속 미루다간 나중에 더 큰 부담을 감당해내야 할 것이란 우려를 갖고 있다.

전기요금의 경우 정부는 kWh당 10원 안팎의 2분기 인상안을 당에 제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1분기 인상폭은 13.1원이었다. 한국전력은 오래 전 국회에 현황보고를 하면서 2026년까지 재무상황 개선 목표를 달성하려면 올 한 해 동안에만 전기료가 kWh당 51.6원 올라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었다.

정부의 전기·가스료 인상 방침 또한 여당에 의해 일단은 저지돼 있다. 여당 측의 입장은 조건부 찬성 정도로 요약될 수 있다. 요금 인상 방침에는 공감하지만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의 자구책 마련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요구에 한전과 가스공사는 각각 재정건전화 방침을 담은 계획서를 제출했지만 국민의힘은 자구책 내용이 미흡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보다도 표심에 더욱 민감한 여당은 전기·가스료 인상이 물가를 크게 자극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요금 인상의 무한정 연기는 문제를 키울 뿐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앞선 정부가 집권 5년간 해온 정책 실패를 더 이상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런 목소리의 주된 내용이다.

전기·가스료 억제 정책이 낳은 부작용은 이미 크게 불거져 있다. 눈덩이처럼 커지는 한전과 가스공사의 적자 및 미수금이 문제의 근원이다. 지난 한 해에만 두 개 공사에서 발생한 적자 및 미수금 합이 40조원 이상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이자 비용만 하루 5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년에만 32조원의 적자를 낸 한전이 이를 메우느라 회사채(한전채)를 마구 발행해 채권시장을 교란시키고 있는 것도 문제의 하나로 부각돼 있다. 한전이 워낙 선호도가 높은 한전채를 다량 발행하는 바람에 일반 기업들은 채권시장에서 자금조달을 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작년 국내 채권시장에 새로 나온 채권 47조원 중 32조는 한전채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가스공사의 미수금 문제도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해 8조 이상 쌓인 미수금은 올해 말이면 12조9000억원으로 늘어나리라는 것이 가스공사 측의 추산이다. 물론 요금 인상 없이 지금 상태가 지속될 경우 그렇다는 얘기다.

가스공사가 가스 구입비와 판매비 차액을 미수금으로 처리하는 것도 논란을 낳고 있다. 손실이 아니라 미수금(회수되지 않은 돈, 즉 언젠가 받을 돈으로 상정한 돈)으로 처리한 결과 이는 장부상에 자산으로 남게 된다.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