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세계적 트렌드로 자리잡은 고금리 정책에 변화가 일 조짐이 하나 둘 나타나고 있다. 핵심 주제는 언제부터 통화정책 방향을 기준금리 인하 쪽으로 전환하느냐 하는 점이다.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지난 1년여 동안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주도하는 긴축 강화에 보조를 맞춰왔다. 연준의 행보는 지난 한 해에만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 네 번, 빅 ‘스텝(0.50%포인트 인상)’ 두 번, ‘베이비 스텝(0.25%포인트 인상)’ 한 번을 취할 만큼 빠르게 진행됐다. 한국은행도 그런 움직임에 보조를 맞춰 같은 기간 동안 1.00%이던 기준금리를 3.25%로 급속히 끌어올렸다.

올 들어서도 미국과 한국은 기준금리 추가 인상에 나서 각각 5.25%(상단 기준)와 3.50% 수준을 유지하게 됐다. 이로써 한·미 간 기준금리 격차는 1.75%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사진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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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세계 각국의 통화정책 담당자들에겐 미국의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는 인식이 짙게 배어 있었다. 한은도 가계부채 이자 부담 증가와 경기 위축의 위험을 알면서도 연준과 일정 정도 보조를 맞출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랬다가는 외화 자금이 급속히 유출되고 원/달러 환율이 솟구치는 부작용이 나타날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의 직접적 원인이었던 각국의 물가가 전반적으로 안정세를 되찾고 있는 점이 그 배경이다.

긴축이 미국 주도로 이뤄진 것과 달리 최근 기미가 나타나고 있는 통화정책 방향 전환은 캐나다와 아시아 신흥국 등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캐나다는 주요국 가운데 가장 먼저 기준금리 동결을 실현한 국가로 분류된다. 캐나다 중앙은행은 지난 3월 기준금리를 기존(4.50%)대로 동결한데 이어 4월에도 같은 결정을 내렸다. 캐나다 중앙은행의 연이은 금리 동결은 주요국 기준금리가 마침내 정점에 도달했다는 국제적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연준이 그 이후인 5월에도 기준금리를 한 차례 더 올렸지만 뉴욕증시 등에서는 여기가 끝일 것이란 기대가 확산됐다.

국제 경제계에서 여전히 신흥국으로 분류되곤 하는 한국은 캐나다보다 먼저 기준금리를 동결한 나라다. 한국은행은 올해 1월 기준금리를 3.50%로 인상한 뒤 2월과 4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잇따라 현상 유지 결정을 내렸다. 한은은 이달 25일 또 다시 금통위 회의를 열고 통화정책을 논의하지만, 이번에도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아시아 신흥국들 사이에서 통화정책을 전환하려는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블룸버그가 16일(이하 현지시간) 내놓은 관련 보도 내용엔 한국이 오늘 8월 기준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사진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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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이 전한 이 같은 분석의 주체는 노무라홀딩스 애널리스트들이다. 통신에 따르면 노무라홀딩스의 시장조사 관계자는 “수출 급감과 인플레이션 완화에 따라 아시아 국가들의 중앙은행 모두가 금리 인상을 종료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통신은 한국의 경우 지난 4월 금리 인하 기대가 무산됐지만 이후 나온 자료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완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기대보다 빠른 금리 인하는 아시아 통화 중에서도 평가절하가 가장 심한 원화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은의 성급한 기준금리 인하가 원화 가치를 더 떨어뜨려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 원/달러 환율을 크게 뒤흔들 수 있음을 경고한 것으로 이해되는 내용이다.

노무라는 또 오는 10월 인도의 금리 인하를 예상하는 한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 기타 신흥국들이 완화적 통화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은은 기준금리 연내 인하에 부정적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11일 금통위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연내 기준금리 인하 기대에 대해 언급하면서 “과도하다”는 표현을 썼다.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이달 초 전망도 이 총재의 말과 궤를 같이했다. S&P는 인플레가 어느 정도 통제된다면 한은 기준금리는 내년 쯤 내려가기 시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준의 통화정책을 두고는 여전히 긴축 기조가 한 동안 더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최근 공개연설에 나선 연준 관계자들 다수가 그런 전망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연준이 추가 금리 인상을 단행할지 모른다는 전망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래피얼 보스틱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15일 미국 CNBC와 가진 인터뷰에서 경기 침체가 오더라도 연내 기준금리 인하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자신에겐 인플레 억제가 최대 임무라는 점을 강조하며 한 말이었다. 미국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의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은 4.9%로 여전히 높았다. 근원 CPI 상승률은 이보다 더 높은 5.5%였다.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은 총재도 같은 날 공개행사 발언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많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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