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세 번 연속 동결했다. 올 초 결정된 기준금리 3.50%가 2월과 4월, 5월의 연이은 정례 통화정책 회의를 거치면서 그대로 유지된 것이다. 이로써 이미 역전돼 있는 미국과의 기준금리 격차(상단 기준)도 1.75%포인트를 유지하게 됐다.

한은의 이번 결정은 25일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회의를 통해 내려졌다. 기준금리 동결의 표면적인 이유는 여전히 높은 수준의 소비자물가였다. 한은은 금통위 의결문을 통해 “물가에 중점을 두고 긴축 기조를 상당 기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추후 금리 조정 가능성에 대해 의결문은 “인플레이션 둔화 속도, 성장의 하방 위험과 금융안정 리스크, 금리 인상의 파급 효과, 주요국 통화정책 변화 등을 면밀히 점검하며 판단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리 동결의 배경엔 둔화돼가는 경기에 추가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한·미 간 금리역전 폭이 역대 최대로 벌어져 환율 및 자본시장이 불안해질 위험성이 있지만 냉각돼가는 경기를 살리는데 우선순위를 둔 것 같다는 의미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모습. [사진 = 연합뉴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모습. [사진 = 연합뉴스]

현재 한국 경제는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경제성장의 주 동력인 수출이 부진한 탓에 무역수지가 지난 4월까지 14개월째 적자를 보이고 있는 게 가장 큰 우려점이다. 지난 4월의 무역수지는 통관기준으로 26억2000만 달러 적자였다.

무역수지 또는 상품수지가 워낙 안 좋다 보니 경상수지도 악화일로를 달리고 있다. 올 들어 우리나라의 경상수지는 대체로 적자 흐름을 보이고 있다. 3월엔 2억7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해 1월(-42억1000만 달러)과 2월(-5억2000만 달러)의 연속 적자에서 겨우 벗어났지만 4월 실적에 대한 기대도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특히 4월엔 배당이란 마이너스 요인까지 대기하고 있어서 흑자 실현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상수지 적자 누적은 우리경제의 펀더멘털(기초)이 취약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징후다.

불행 중 다행으로 물가는 속도가 더디긴 하지만 꾸준히 내리막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3.7%를 기록했다. 작년 2월(3.7%) 이후 처음 나타난 3%대 물가상승률이었다.

이 같은 물가 흐름은 한은의 통화정책 운용폭을 다소나마 넓혀준 것으로 보인다. 물가 상승률과 기준금리가 거의 같은 수준에 이르렀고, 추이로 볼 때 조만간 두 개의 수치가 교차할 가능성이 엿보이자 일각에선 연내 기준금리 인하를 점치는 의견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실질적 정책금리(기준금리-물가상승률)가 곧 플러스로 전환되면 한은이 경기 냉각을 우려하면서까지 긴축을 고집할 필요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금융시장 불안이 상존해 있다는 점도 한은의 긴축 강화 의지를 약화시키는데 일조한 것으로 분석된다. 실리콘밸리뱅크(SVB)에서 시작된 미국발 금융불안은 국내 금융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이 긴축의 고삐를 더 조이면 제2금융권 등 취약부문부터 급격히 부실화될 수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전문가들 중엔 기준금리 3.50%가 한은의 최종금리(Terminal Rate)일 것이란 의견을 내놓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일부 전문가는 한은이 오는 8월 금통위 회의에서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할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정책변화 시점을 두고는 의견이 엇갈리지만 한은이 더 이상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을 것이라는 데는 대체로 의견 일치가 이뤄지고 있다. 다만, 기조 전환 시점을 두고 설왕설래가 있을 뿐이다.

이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부터 기준금리 동결에 들어갈 것이란 전망과 무관치 않다. 연준이 금리 인상 행진을 멈춘다면 한은으로서도 기준금리 인상을 고집해야 할 커다란 이유 하나를 덜어내게 된다. 만약 연준이 올해 하반기부터 기준금리 인하를 시작한다면 한은도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지금도 한은이 먼저 금리 인하를 시도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현재 우리 경제상황은 한은이 속히 기준금리 인하에 나서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경기가 둔화 정도를 넘어 침체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이 엿보일 정도로 상황이 안 좋기 때문이다. 정부도 최근 수개월째 우리 경제가 둔화 국면에 접어들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발간하는 그린북(경제동향 보고서)도 4개월 연속 ‘경기둔화’를 거론했다.

이런 상황을 반영, 한국은행은 이날 우리 경제의 올해 성장률에 대한 수정 전망치를 제시했다.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1.6%에서 1.4%로 낮춘 것이다. 이는 국내외 경제관련 기관들이 최근 제시한 전망치 수준인 1.5%보다도 낮은 수치다.

성장률 1.4%는 코로나19 팬데믹 첫해인 2020년의 -0.7% 이후 가장 낮은 수준에 해당한다. 2020년과 금융위기 당시였던 2009년(0.8%)을 빼고는 2000년대 들어 가장 낮은 수준이기도 하다. 다른 해와의 비교 없이 성장률 자체만 놓고 보더라도 1.4%는 우리의 잠재성장률 추정치(2%)에 크게 못 미친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지닌다.

한은은 내년도 우리나라의 성장률 전망치로는 2.3%를 제시했다. 우리 경제가 그나마 올해 후반부로 가면서 조금씩 개선되는 흐름을 보일 것이란 기대를 갖게 하는 대목이다.

한국은행은 올해의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기존대로 3.5%를 유지했다. 내년의 연간 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2.4%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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