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경제가 장기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제 한국은행이 올해와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줄줄이 하향조정한 것이 그 방증일 수 있다. 수정 전망치가 불과 3개월 만에 추가로 낮아졌다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수정 제시된 성장률 전망치는 올해 1.4%, 내년 2.3%다. 하향 조정폭은 각각 0.2%포인트와 0.1%포인트다.

성장률 수치 자체도 우려스럽다. 올해의 경우 우리경제는 잠재성장률 추정치(2%)에도 못 미치는 정도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내년엔 잠재성장률을 살짝 상회하는 정도의 성장을 이룰 것으로 기대되지만 이 역시 썩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지금 상황으로 보면 이 전망치가 앞으로 유지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

근래 나타나고 있는 우리 경제의 성장 둔화는 유별난 데가 있다. 팬데믹 이후 글로벌 공급망이 흐트러지고 그 여파로 경제안보 논리가 강화되면서 세계경제가 전반적으로 활력을 잃은 것에 비해서도 그 정도가 심하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최근 발표한 ‘2023년 세계경제 전망(업데이트)’을 통해 올해 세계경제가 2.6%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주목할 점은 지난해 11월보다 전망치를 0.2%포인트 높였다는 사실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각 기관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점차 낮춰가는 흐름을 보이는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은행이 작년 11월 당시 제시한 우리의 성장률 전망치는 1.7%였다. 이 수치는 지난 2월 1.6%로 더 낮아졌고, 이번엔 1.4%로 거푸 하향조정됐다.

이런 흐름이 이어진다면 한국은 팬데믹 여파로 더 험난해진 국제경쟁에서 밀려나 낙오자로 전락하게 된다.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 문턱을 밟은 것에 만족한 채 점차 후순위로 밀려나게 된다는 의미다. 한 때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행세했던 일본이 장기간의 ‘잃어버린 세월’을 거치는 바람에 중국에 크게 뒤지는 3위로 밀려났고, 이제는 3위 자리마저 독일에게 내주어야 할 지 모르는 상황을 맞이한 현실이 한국의 낙오 가능성을 엿보게 해준다.

우리가 현 상황에 만족한 채 안주한다면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인식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지난 25일 한은 통화정책 회의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저성장 장기화 가능성’을 묻는 질문이 나오자 작심한 듯 쓴 소리를 쏟아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이 총재는 “우리는 이미 장기 저성장 구조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고 운을 뗀 뒤 그 원인으로 저출산·고령화를 지목했다. 이어 “낮은 성장률 때문에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 등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데 5~10년 후엔 노후 빈곤이 큰 사회문제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상태로 간다면 저출산·고령화가 더 심화돼 성장이 전보다 어려워질 것임을 공개 경고한 셈이다. 저출산·고령화 심화가 잠재성장률을 심각하게 갉아먹는다는 전문가들의 경고와 맥을 같이하는 발언이라 할 수 있다.

이 총재는 해법으로 노동·연금·교육을 포함하는 구조개혁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모두가 개혁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만 이해당사자 간 타협이 어려워 진척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논의가 수요자 아닌 공급자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대학의 학과정원 등을 (정책)공급자가 정하다 보니 현실성이 떨어지고 연금개혁의 경우 정부가 주도하면서 모수를 빼고 이야기하니 진척이 없다는 것이었다.

경제 문제를 재정과 금리로 풀려고 하는 그릇된 인식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았다. 재정과 금리는 단기 해결수단일 뿐이기 때문에 장기적이고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어 재정과 금리로 문제를 해결하려 들면 나라가 빨리 망가진다는 취지를 덧붙였다.

인구구조에서 비롯되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이민과 해외 노동자 활용, 임금체계에 대한 논의도 필요한데 진척이 없다며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외국에서도 원하고 국내에서도 그 필요성이 제기되는데 무작정 반대하는 목소리 때문에 적시에 법 개정 등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실을 개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총재의 이날 발언엔 국가의 체질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 경제가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는 절절한 경고성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임기응변의 단기 정책이나 인기영합적인 정책을 지양하고 큰 틀에서 분야별 구조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유의 경고는 그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정부나 정치권이 정파적 이익에만 관심을 쏟는 한 공염불에 그치기 마련이다. 이럴 때일수록 벼리를 쥐고 있는 유권자들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유권자들이 각종 선거 때 표로써 포퓰리즘에만 의존하는 정상배를 가려내고 제거하는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얘기다. 현실적으로 정책을 주도하는 건 관료와 정치인이지만 그들이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쪽은 유권자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