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현대자동차그룹이 올해에는 해외 계열사들이 본사에 지급하는 배당액을 지난해의 4.6배로 늘린다고 밝혔다. 본사로 들어오는 배당금은 전기차 생산 시설 및 연구개발에 주로 투입된다는 계획도 12일 함께 공개됐다.

현대차그룹이 올 한 해 해외 자회사들로부터 받을 배당금 규모는 59억 달러(약 7조5800억원)에 이른다. 그룹 본사가 2020년부터 작년까지 3년간 해외 계열사들로부터 받은 배당액은 각각 1억 달러, 6억 달러, 13억 달러 정도였다. 추세를 보면 현대차그룹이 본사 배당액을 조금씩 늘려오다 특히 올해에 증가폭을 급격히 늘리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사로의 배당을 늘리는 해외 자회사들은 최근 경영 실적이 호전돼 상당 규모의 잉여금을 보유한 곳들이다. 현대차는 미국법인(HMA)과 인도법인(HMI)·체코법인(HMMC) 등으로부터, 기아차는 미국법인(KUS)과 오토랜드 슬로바키아(KaSK)·유럽법인(Kia EU) 등으로부터 거액의 배당금을 들여온다. 해외에서 들어올 올해 사별 배당액은 현대차 21억 달러, 기아차 33억 달러 규모다. 현대모비스도 해외 자회사로부터 연말까지 2억 달러를 배당받는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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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본사가 올해 해외 계열사에서 받을 배당액 중 79%는 상반기에 국내로 유입된다.

이런 움직임은 현대차그룹에만 국한돼 있지 않다. 국내 기업들 사이에선 올 들어 이런 기류가 뚜렷이 형성되고 있다. 일례로 삼성전자도 올해 1분기 중 해외 계열사들로부터 8조원 이상을 들여온 것으로 전해졌다. 1분기 동안에 들여온 배당금액만 해도 작년 연간 유입액의 두 배에 이른다.

최근 강화된 이 같은 현상을 한 마디로 정리한 개념이 ‘자본 리쇼어링’이다. 경제학 용어인 ‘리쇼어링(Reshoring)’은 기업들이 비용 절감 등을 위해 해외로 옮겼던 생산시설을 다시 국내로 들여오는 것을 말한다.

반대 개념으로 ‘오프쇼어링(Off-shoring)’이란 말이 있다. 기업들이 공장을 짓거나 생산시설을 늘리는 장소로 국내 대신 해외를 택하는 것을 지칭하는 용어다. ‘오프쇼어링’은 인건비가 국내보다 싸거나 세제 등이 보다 유리한 국가를 대상으로 이뤄지기 마련이다. 우리 기업들이 중국에 이어 베트남 등에 대거 진출한 것이 비근한 예라 할 수 있다. 우리의 고용 경직성과 노동조합의 강경 투쟁도 ‘오프쇼어링’을 촉진하는 이유가 되곤 했다. 요즘 들어서는 미국도 세제상의 이익을 이유로 우리 기업들에게 하나의 선택지로 부상했다.

최근 국내에서 일고 있는 현상은 공장 등을 국내로 옮겨오는 ‘리쇼어링’이 아니라 자본의 국내 회귀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자본 리쇼어링’으로 분류된다.

‘자본 리쇼어링’이 갑자기 늘어나고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된 개정 법인세법이다. 개정된 법인세법은 지난해 말 세제개편의 일환으로 국회에서 통과됐다. 법 개정의 핵심 내용은 내국법인이 10% 이상 지분을 가진 해외 자회사로부터 배당금을 받을 때 95% 부분에 대해 법인세를 면제해준다는 것이었다. 거꾸로 말하면, 배당금의 5%에 대해서만 법인세를 물린다는 의미다.

이는 개정 법인세법에 익금불산입(益金不算入: 이익금액으로 계산에 넣지 않음) 조항(제18조의 4)을 신설함으로써 가능해졌다. 과거엔 배당금 유입시 해외에서 납세한 금액 일부에 대해서만 공제혜택을 부여했었다.

현대차그룹 본사 사옥. [사진 = 연합뉴스]
현대차그룹 본사 사옥. [사진 = 연합뉴스]

법 개정 명분은 이중과세 논란을 해소하면서 기업들이 ‘자본 리쇼어링’을 통해 국내 투자를 늘리도록 유도한다는 것이었다. 이전까지 기업들의 불만은 특히 이중과세 논란과 연관돼 있었다. 해외 현지에서 이미 법인세를 납부하고 벌어들인 수익금인데도 국내로 들여온 뒤 또 다시 법인세를 내는 것은 이중과세에 해당한다는 것이 불만의 주된 내용이었다.

불만은 미국 등 선진국들이 해외 자회사의 배당소득 유입시 법인세를 면제해주는 방식으로 자국 기업들의 ‘자본 리쇼어링’을 독려하는 현실과 맞물려 더욱 커져갔다. 이에 우리 정부와 국회도 마침내 해외 자회사의 본사 배당금에 대한 법인세를 대폭 감면해주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하기에 이르렀다.

제도 개선이 가져다주는 효과는 다양하게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 우선 국내 설비투자나 연구개발 투자 증대로 국내총생산(GDP)이 늘어난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그에 따라 고용과 소비가 늘어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기업들의 해외 설비투자는 우리나라가 아닌 해당 국가의 GDP를 늘리는데 기여한다. 고용 확대 및 근로소득 증대에 의한 소비 진작 효과도 현지 국가의 몫으로 돌아가게 된다. 현지에서 번 돈에 대해 법인세를 거둬가는 주체도 현지 정부기관이다. ‘자본 리쇼어링’이 활발해지면 우리 기업들은 국내에서 설비 투자를 늘리는데 보다 적극성을 보이게 된다.

활발한 ‘자본 리쇼어링’은 국가 신인도의 핵심 요소인 경상수지를 개선하는데도 도움을 준다. 경상수지의 구성요소 중 하나인 본원소득수지를 늘리는 효과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본원소득수지는 자국민 또는 자국 법인이 해외에서 번 돈(배당소득 등)과 외국인 및 외국 기업이 국내에서 번 돈의 차액에 의해 결정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4월까지 집계된 우리의 본원소득수지는 132억2000만 달러 흑자였다. 수지 개선의 주된 원인은 기업들이 해외 자회사로부터 거둬들인 배당소득의 증대였다.

요즘 같은 고금리·고환율 시대라면 기업들이 ‘자본 리쇼어링’을 통해 얻는 이익이 더 커질 수 있다. 배당금 증액을 통해 고금리 시대에 수반되는 자금조달 비용의 증가 문제를 해소할 수 있어서이다. 고환율 상황 또한 배당금 유입이 가져다줄 이익을 극대화해주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유입되는 달러자금이 고환율 덕분에 보다 많은 원화로 환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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