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약칭 CBDC)가 다시 공론의 장으로 소환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이 글로벌 CBDC 플랫폼을 개발중이라고 밝힌 것이 촉매제가 됐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19일(이하 현지시간) 플랫폼 개발 사실을 밝히면서 CBDC가 개별 국가 단위 차원의 제안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장래에 등장할 각국 중앙은행의 CBDC가 국내용에 머물지 않게 하고, 국가 간 거래가 가능하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며 한 발언이었다.

이날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에서 열린 아프리카 중앙은행 회의에서 나온 게오르기에바 총재의 발언은 각국이 제각각 CBDC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 디지털 화폐는 세계 각국에서 중앙은행 주도로 개발 작업이 펼쳐지고 있는 미래의 신종 통화다. IMF에 따르면 현재 114개국이 CBDC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자국 CBDC가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기반을 선점하려는 것이 그 목적이다.

휴대전화 속에 들어간 디지털 위안화 지갑. [사진 = EPA/연합뉴스]
휴대전화 속에 들어간 디지털 위안화 지갑. [사진 = EPA/연합뉴스]

IMF는 국가별 개발이 완성될 경우 그것들을 연결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보다 효율적이고 공정한 거래가 가능해진다고 보고 있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글로벌 플랫폼 구축 필요성과 관련, 글로벌 상호운용성을 허용하는 공동의 규제체제가 합의에 의해 만들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지 않을 경우 진공상태가 만들어지고. 그 공간을 암호화폐가 대신 차지하게 된다고 부연했다.

현재 이 분야에서 가장 적극성을 보이는 나라로는 중국이 꼽힌다. 중국은 CBDC 개발에서 경쟁력 우위를 확보할 목적으로 위안화 기반의 CBDC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 또한 연방준비제도(연준) 주도 하에 개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CBDC가 초래할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아 개발 작업이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CBDC는 기존의 유형(有形) 화폐와 달리 각국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를 의미한다. 가시적 형태는 없지만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 삼아 분산된 장부(원장)들에 전자적 형태로 저장되고 이를 중앙은행이 보증하는 결제수단인 만큼 기존의 화폐와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 민간이 개발한 암호화폐와 대비되는 점은 크게 보아 두 가지다. 첫째는 중앙은행이 보증한다는 점, 둘째는 가치가 일반 화폐처럼 변동성이 매우 작다는 점 등이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미국 연준이 가상화폐 개발을 완성해 실용화할 경우 미국 시민들은 지폐와 똑같은 가치를 지닌 전자적 형태의 달러화를 전자지갑에 넣고 다닐 수 있다. 잔액 등의 내역은 그때그때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만들어진 분산 원장에 일일이 기록된다. 디지털 달러를 중앙은행 계좌에 입금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디지털 화폐의 장점은 이용 편의성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물론 장점만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아니다. 비판론자들은 CBDC가 일상을 파고들 경우 나타날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통제된 사회인 중국과 달리 현재 미국에서는 디지털 화폐 개발과 관련해 우려의 목소리가 활발히 개진되고 있다. 연준 총재 출신인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도 디지털 달러화 개발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찬반 논쟁은 지난해 1월 연준이 ‘디지털 달러화’ 백서를 발간하면서 CBDC의 장단점을 소개한 이후 본격화됐다. 미국 내 비판론은 은행업계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중심축은 미국은행연합회(ABA)와 미국은행정책연구소(BPI) 등이다.

이들 단체는 CBDC 사용이 일상화되면 기존 민간 상업은행들의 금융 기능이 필요 없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CBDC가 등장하면 중앙은행이 발행한 화폐가 직접 개인들의 전자지갑에 입금되는데, 이럴 경우 민간 상업은행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일반 민간은행 예금이 줄어들고, 그 여파로 기업과 가계 등 경제주체들은 대출을 받기 어려워진다는 게 이들 단체의 반박 논리다. 그 결과 상업은행들의 신용창조 기능이 위축되면 경제 발전에도 장애가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 단체는 고객의 전자지갑에 예치된 돈은 대출에 쓸 수도 없어 단지 연준의 부채로 남게 될 뿐이라 주장한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디지털 화폐가 한 국가의 금융 기능을 무력화시켜 경제 발전을 저해하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얘기다.

연준도 백서를 통해 CBDC 사용이 가져다 줄 부작용을 지적한 바 있다. 주된 우려 사항은 금융소비자들의 사생활 보호나 불법행위 대처 등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연준 백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과제로 남아 있음을 밝히고 있다.

옐런 미 재무부 장관도 CBDC 개발 과정에서 검토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강조함으로써 신중한 입장을 견지해오고 있다. 그는 강연 등을 통해 연준의 CBDC 발행을 ‘도전’이란 말로 표현하면서 이에 수년이 소요될 수 있으며 결론은 알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는 디지털 달러 도입을 위한 연구를 독려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3월 연방정부 차원에서 가상화폐 연구를 지시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내린 바 있다. 구체적 목표는 기축통화인 달러화를 기반 삼아 미국이 선제적으로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를 개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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