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기법 중에 ‘부정적 소구’라는 게 있다. 광고학에서 3B를 논할 때 비교대상으로 자주 다뤄지는 개념이다. 3B는 미인(Beauty), 어린이(Baby), 동물(Beast)을 지칭한다. 이들을 소재로 광고를 하면 소구(訴求) 효과가 크다는 것이 광고학에서의 정설이다. 3B는 친근감과 호감을 유발함으로써 소기의 광고효과를 얻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 소구의 수단이라 할 수 있다.

그에 대비되는 것이 부정적 소구다. 불안감·공포감 등을 조장하면서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게 유도하는 광고 기법으로서 화재보험 등의 상품 광고에 이용되곤 한다.

부정적 소구는 제한적으로 활용된다. 광고·홍보 업계에서도 일반적으로 권장되는 기법은 아닌 듯 보인다. 상품·서비스의 부정적 소구 방식에 대해서는 사회적 제약과 견제도 만만치 않게 가해진다. 꿈과 희망 대신 불안감·공포감을 자극하는 못된 속성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느 제약회사가 ‘이 약을 쓰지 않으면 병이 심화돼 곧 죽을 수 있다’고 광고를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잠시 상상하는 것으로도 답을 얻을 수 있듯이, 망하기로 작정하지 않고서는 어느 제약사도 선택할 수 없는 광고 방식이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단의 부정적 소구가 활발히 펼쳐지는 유일한 분야가 있다. 우리 정치가 딱 그런 분야에 해당한다. 정치 분야에서의 부정적 소구는 진영을 가리지 않고 나타났다. 소위 공포마케팅이 정치에서 집권을 위한 야비한 수단으로 빈번히 악용돼왔던 것이다. 공포마케팅 정치의 기본도구는 괴담이다.

현대 정치사를 돌아보면 공포마케팅을 먼저 시작한 쪽은 보수 진영이었다. 군사정권이 각종 괴담을 토대로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부풀리며 공포감을 조성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이후에도 ‘5·18은 폭동’이라든지 ‘5·18 당시 광주에 북한군이 내려와 있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김일성 찬양가다’라는 따위의 괴담이 한동안 우리 사회 곳곳을 악령처럼 떠돌아다녔다. 이런 괴담들이 사라지기까지는 꽤나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근래 들어서는 괴담 유포의 주된 주체가 진보 진영으로 바뀌었다. 진보 진영의 주축이 과거 군사독재 정권의 괴담을 앞세운 공포마케팅에 저항해 싸웠던 세력임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진보 진영의 괴담 양산은 보수 집권 세력과 첨예하게 대립할 때 심화되는 경향을 보여왔다. 광우병 파동과 천안함 폭침, 세월호 침몰, 사드 배치 논란이 발생했던 당시가 그랬고, 후쿠시마 오염수 배출 논란이 한창인 지금도 어김없이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각각의 이슈가 제기됐을 때 진보 진영은 ‘뇌송송 구멍 탁’, ‘잠수함 충돌설’, ‘청와대 7시간 의혹’, ‘전자파 참외’ 등의 괴담을 퍼뜨리며 국민들의 불안감과 공포감, 집권세력에 대한 반발심을 극대화하려 애썼다. 과거 그들이 그토록 미워했던 군사독재 세력이 그랬던 것처럼 오로지 집권을 위해서였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오염수 탱크들. [사진 = 연합뉴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오염수 탱크들. [사진 = 연합뉴스]

그 처절한 노력은 이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사태를 발판 삼아 전개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핵 오염수’ 또는 ‘핵 폐수’가 우리 해역을 오염시킬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야당으로서 국민 건강을 위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주장이다. 문제는 한계선을 넘어 데이터로써 해양 오염이 없을 것이라 반박하는 과학자를 ‘돌팔이’로, 오염수 안전성을 설명하는 정부 측 인사를 ‘친일파’로 몰아붙이며 공포감을 조성하는데 더 열심이라는 점이다.

부정적 소구를 통해서라도 오염수 방류를 막겠다는 것이라면 그 의지가 가상하다 하겠지만 그렇게만 비쳐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목적도 의심스럽지만 민주당의 주장은 너무도 감정적이고 막무가내식이다. 근거 없이 공포감을 조성하는 행위는 궁극적으로는 어민 등을 포함하는 수산업자와 판매상 등을 곤궁에 빠뜨리고 우리 경제에 해를 끼치게 된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운동에는 정의당 같은 군소 진보 정당도 가세하고 있다. 다만 정의당의 행동은 탈핵주의의 연장선에서 비교적 차분히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나름 평가받을 여지를 안고 있다. 그런 기류는 정의당이 일본 현지의 원전 반대 단체와 연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점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 그들이 강조하는 ‘핵폐기물 자국 내 처리’ 원칙도 국제사회가 이참에 공동의 아젠다로 재상정해 봄직한 일이 아닌가 싶다.

반면 민주당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에는 어떠한 철학도 원칙도 엿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 또는 탈핵 이념을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당당하게 내세우지도 못하고 있는 게 지금의 민주당이다. 집권 당시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해 현 정부와 같은 입장을 취했다가 이제 와서 반대를 외치는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오염수 방류 반대를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펼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근거도 없이 막연한 공포감을 조장하며 오염수 방류 반대만 외치고 있을 뿐이다.

진보 진영의 괴담 정치에 수차례 속은 경험 탓인지 시민들도 이번엔 비교적 차분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다시 당할 수 없다는 자세로 진보 진영의 공포마케팅 정치에 적극 대응하고 있는 것도 분위기를 안정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 여당 관계자들이 수산시장을 찾아가 회 먹기 이벤트를 연출하고,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 사태와 관련해 일일브리핑을 하는 것 등이 효과를 내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정부는 일본이 해양에 폐기하기로 한 물을 공식적으로 ‘오염수’라 칭하고 있다. ‘처리수(treated water)’라 불렀다가 공연히 ‘친일’ 시비만 낳을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기 위한 처사라 할 수 있다. 보수 진영 일각에서 불만이 제기될 수 있겠지만 오히려 현명한 일이라는 게 개인적 생각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바다와 국민 건강을 안전하게 지키면서도 정부에 대한 불신이 조장되지 않도록 분위기를 관리하는 일이다. 그러려면 정부가 밝힐 것은 밝히고, 일본에 요구할 것은 당당히 요구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작업은 신뢰를 토대로 괴담의 자양분인 막연한 공포심을 해소하는 일이다. 유일한 무기는 과학적 사실이다. 사드 전자파 논란에서 보았듯, 괴담은 결국 과학적 사실 앞에서 민낯을 드러내며 소멸되기 마련이다. 더는 괴담에 속지 말라는 자기부정의 역설적 교훈을 남겨둔 채 -.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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