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정부가 5대 시중은행 과점체제를 해체하겠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요지는 시중은행 진입 문호를 넓혀 새로운 경쟁자가 탄생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실행방안은 기존의 지방은행을 시중은행으로 변신하도록 유도하고, 지방은행에 대한 신규 인가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는 것 등으로 정리됐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5일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은 금융 당국이 지난 2월부터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금융권 경쟁촉진 방안을 논의해 마련한 결과물이다.

TF를 구성한 계기는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권 과점 문제를 지적하며 개선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일이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월 시중은행들의 거액 성과급 지급 등 돈 잔치 사안을 거론하면서 “국민들 간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관련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하고 있는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사진 = 연합뉴스]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하고 있는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사진 = 연합뉴스]

금융위원회 등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은행의 당기순이익은 7조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1조4000억원(24.0%) 증가했다. 고금리 시대를 맞아 약속이나 한 듯 예대마진을 늘리는 방식으로 이자장사에 열을 올린 덕분이었다. 특히 5대 시중은행들은 크게 늘어난 이익을 바탕으로 임직원 보너스와 성과급 지급 등 돈 잔치를 벌여 안 그래도 예민해진 국민들의 감정에 불을 붙였다. 이는 윤 대통령이 금융위원회에 대책 마련을 지시하게 된 배경이었다.

금융 당국은 5대 시중은행이 대출과 예금의 70%가량(2022년말 기준 대출 63.5%, 예금 74.1%)을 점유하고 있는 현실에 주목했다. 그 결과 금융 당국은 은행권 과점 체제를 깨는데 무게 중심을 둔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개선 방안 중 첫째는 시중은행 늘리기다. 여기엔 5대 시중은행과 경쟁할 동격의 은행을 새로 탄생시켜 경쟁을 촉진시키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이를 위해 금융 당국은 시중은행 인가 방식을 ‘오픈 포지션’으로 바꾸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금융 당국이 인가방침을 정해 발표하면 신청이 들어오고, 그 이후 심사를 거쳐 인가 여부를 결정했지만 이제부터는 사업계획을 지닌 사업자 누구든 아무 때나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엔 상시승인 체제를 갖춤으로써 기존의 사업자들에게 언제든 경쟁자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우겠다는 의도가 스며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신청을 보다 유연하게 검토해 긍정적 결과가 나오도록 노력하겠다는 의지도 함께 읽힌다.

당장 승인 신청을 할 곳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일차로 거론되고 있는 대상은 지방은행인 대구은행이다. 대구은행은 전부터 시중은행으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온 곳이다. 만약 대구은행이 시중은행으로 새로 탄생한다면 이는 30년 만의 신기록이 된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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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포지션’은 지방은행이나 인터넷전문은행의 신규 인가에도 적용된다. 큰 틀에서 은행업계 구조를 기존의 과점체제에서 경합체제로 바꾸겠다는 것이 당국의 기본방침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금융시스템은 크게 은행법 기반의 일반은행과 개별 특수은행법에 기반을 둔 특수은행으로 분류된다. 이 중 일반은행은 다시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외국은행 국내지점 등으로 세분된다. 여기서 말하는 시중은행이란 전국에 걸쳐 지점망을 형성하고 있는 곳을 가리킨다. 시중은행에는 인터넷전문은행 3곳도 포함된다. 지방은행은 특정 지역에 지점망을 제한적으로 형성해 은행업을 운영하는 곳이다.

특수은행은 특정 부문의 금융 지원을 원활히 하기 위해 설립된 곳으로서, 중소기업은행(IBK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수협은행 등이 있다. 농협은행의 경우 흔히 5대 시중은행의 하나로 이야기되지만 한국은행 기준에 의하면 특수은행에 해당한다. 기업은행도 비슷한 사례라 할 수 있다.

금융 당국은 이밖에도 저축은행이나 지방은행, 외국계 은행 지점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줌으로써 이들 금융기관들이 시중은행과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저축은행 간 인수·합병 범위를 확대하고 ▲외국계 은행 원화 예대율 규제를 완화해주며 ▲핀테크 등 정보기술(IT) 기업의 금융업무 범위를 확대하는 한편 ▲금융사 간 대출·예금 금리 경쟁을 촉진시키기로 하는 등의 방안을 함께 제시했다. 대출 이자와 관련해서는 신용대출에 이어 주택담보대출(주담대)에 대해서도 갈아타기를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보강하기로 했다.

은행권의 성과급 체계에 대해서도 제한이 가해진다. 장기성과에 기반을 둔 성과보수 지급을 강화하고 임직원 성과급 및 퇴직금 등의 현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공개하도록 조치가 취해진다. 금리와 관련해서는 코픽스를 기준으로 하는 신용대출 상품의 하반기 출시와, 고정금리 주담대 상품 확대 출시, 대출금리 조정속도에 대한 관리점검 강화 등도 병행된다.

하지만 진작부터 거론됐던 특화 전문은행이나 스몰 라이선스(소규모 인허가) 등의 도입은 시간을 두고 추진하기로 했다. 비은행권 지급결제 허용도 보류됐다. 각각 시스템 안정성과 금융불안에 대한 우려 등이 작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특히 금융불안 발생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최근 미국에서 벌어진 뱅크런 사태와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번 조치가 금융권의 과점 구도를 해체시키면서 시중은행들이 혁신을 통해 글로벌 금융사로 발전해 나가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기대가 현실화될지는 미지수다. 이번에 발표된 방안에 이렇다 할 알맹이가 포함돼 있지 않다는 점이 그 이유다.

시중은행 늘리기 방침만 보더라도 그렇다. 지방은행 하나를 시중은행으로 전환한다고 해서 큰 효과가 나타날 것 같지 않고, 제2 제3의 대구은행이 나올 수 있을지도 의문스러운 게 사실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지금의 5대 은행 체제를 과연 과점체제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시중은행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최근의 실리콘밸리(SVB) 사태에서 보았듯 취약시기에 금융불안 문제가 오히려 증폭돼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중은행으로 변신한 지방은행이 오히려 기반을 잃고 흔들릴 가능성은 없는지도 따져보아야 할 것 같다. 일부 전문가들은 시중은행으로 전환된 지방은행이 지역고객 이탈과 시(市)금고 유치 실패 등의 부작용을 겪을 수 있다는 경고성 지적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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