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최저임금이 사실상 결정됐다. 몇몇 요식절차만 거치면 내년 최저임금은 전년보다 2.5%, 액수로는 240원 오른 시간당 9860원으로 확정된다. 초과근무 없이 주 40시간을 정확히 근무하는 상시근로자가 받는 월급을 기준으로 하면 206만740원이다. 이는 주휴수당 제도 덕에 쉬는 토요일에도 8시간을 근무한 것으로 쳐 월간 근무시간이 209시간에 이른다는 계산 아래 산출된 액수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장기간 논의를 거듭한 뒤 표결을 거쳐 의결한 내년도 최저임금을 두고는 노·사 양측 모두가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인상률이 연간 물가상승률 전망치(한국은행 추산 3.5%)에도 못 미친다는 점을 들어 “실질적 감소”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경제성장률이나 물가상승률 등이 일정 정도씩 플러스 행진을 할 게 확실시되는 만큼 노동계의 그 같은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하겠다.

반면 사용자 측의 중요한 한 축인 소상공인들은 자신들의 지불능력에 비해 최저임금이 과도하게 높아졌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인상률을 논하기에 앞서 최저임금 수준 자체가 너무 높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소상공인들은 임금을 줄 사람들의 지불능력을 고려해 최저임금이 정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 중 일부는 자본은 물론 알바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일하면서도 최저임금 이하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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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들고 나온 것이 업종별 차등화 방책이었지만 이 요구는 이번에도 관철되지 않았다. 사용자 측은 업종별 차등화가 안 된다면 지불능력이 가장 낮은 업종을 기준 삼아 최저임금을 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그래야 명과 실에 모두 부합하는 최저임금이 도출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이도 저도 아닌 최저임금, 사회적 공감을 담보하는 원칙도 없이 만들어진 최저임금에 대한 불만은 사방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불만은 건강한 남성이라는 이유로 군 목부를 해야 하는 사병들, 그리고 하위직 공무원들 사이에도 팽배해 있다.

서울시 공무원노동조합은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 소식이 전해지자 9급 공무원 초임 인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9급으로 입직한 공무원이 처음 받는 초임(9급 1호봉)이 월 170만원을 겨우 넘는 수준이라는 주장과 함께였다. 각종 수당이나 명절 휴가비 등을 제외한 액수이긴 하지만 초임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친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이런 유의 불만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공무원 임금의 대폭 인상을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이 뒷받침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군 사병들의 월급을 크게 올리는 것 역시 대선 공약에 의해 순차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부사관과 초급 장교들의 보수를 병행해 올려야 한다는 점이 만만찮은 과제로 부상했다.

우리 사회에서 최저임금은 매년 큰 사회적 비용을 치러가며 결정되지만 결과물에 대해서는 누구도 만족감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제부터라도 제도 자체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이 펼쳐져야 한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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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확실한 원칙 수립이다. 지금까지처럼 산식을 급조하거나 노·사 각각의 안을 두고 표 대결을 벌이는 등 매년 임시응변식 방법을 동원한다면 어느 쪽도 불만을 거둬들일 수 없게 된다. 지난해의 경우 위원회는 물가상승률과 경제성장률, 고용증가율 등을 고려해 최저임금 인상률을 산출했었다. 산식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지지 못했고 반론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일정한 원칙을 세운 뒤 인상률을 도출했다는 점 하나는 평가받을 만했다. 이를 참고해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하는 원칙을 만들 필요가 있다.

업종별 차등화도 심각히 고려해 볼만한 대안이다. 업종별로 지불능력에서 크게 차이가 나타나고 있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일본 사례를 참고해 지역별로 최저임금을 따로 정하는 것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우 연방 최저임금을 기반으로 각 주가 최저임금을 따로 정해 운용하고 있다. 미국의 지역별 최저임금은 현재 시간당 7.25~15달러 남짓으로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지역형편과 생활물가 등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 그 이유일 것이다.

최저임금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은 ‘사람을 고용하려면 이 정도는 지불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책정돼야 할 대상이다. 사회의 평균소득 또는 중위소득의 몇 퍼센트 정도는 돼야 한다는 등의 방식에 따라 매년 결정되는 게 합리적이다. 최저임금은 사회 구성원 전반의 소득 수준에 따라 결정되는 결과물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반대로 최저임금이 사회전반의 임금 수준을 좌우하게 된다면 그건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일이다. 그 같은 실험은 소득주도성장의 일환으로 지난 정부에서 강행됐다가 실패로 마무리됐다. 꼬리가 몸통을 흔들게 만들려다가 실패한 꼴이다. 어느 나라에서든 최저임금은 시장경제 원칙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제도적 장치다. 사회 전반의 임금 수준에 영향을 미치는 가이드라인이 아니라는 얘기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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