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또 추경 타령을 하기 시작했다.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앞장서서 주장하는 이는 이재명 대표다. 명분으로는 이번에도 예외 없이 민생을 앞세우고 있다. 이재명 대표의 퍼주기 선호 성향이야 새삼 거론할 것도 없지만, 때가 때인지라 혹여 정부 여당마저 추경의 유혹에 휩쓸려드는 게 아닐까 우려된다. 경기가 침체 기미를 드러내고 있는 마당에 정권의 사활이 걸린 총선이 시시각각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어서이다.

정부·여당으로서는 미미하나마 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고, 무엇보다 선심용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추경에 매력을 느끼기 쉽다. 이재명 대표는 이 점을 의식하고 선제적으로 대규모 추경 편성을 주장하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추경 제안은 그 자체로서도 문제지만 내용은 더 우려스럽다. 35조원이라는 거대 규모의 추경을 요구하면서도 경기 부양은 안중에 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밝힌 자체 추경안은 30조원을 민생회복 프로젝트에 할애하고 있다. 말이 좋아 민생이지 세부 내용은 저신용자 신용대출 확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이자 감면, 고물가·에너지 요금 부담 경감, 전세보증금 이자 지원 등 현금성 지원이 주를 이룬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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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회복을 위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등에도 5조원이 할애돼 있지만 비중을 따져볼 때 명분 쌓기용이란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그마저도 경기를 선순환시킬 사업에 모두 쓰이도록 짜여져 있는 게 아니었다.

설사 35조원 대부분을 경기 부양용으로 투입한다 할지라도 문제는 남는다. 많은 전문가들은 지금 재정을 대규모로 투입한다 해서 경기가 유의미하게 호전될지는 알 수 없다고 말한다. 대외환경 변화가 한국 경제의 성장을 둔화시키고 있는 근본 원인이라는 점이 그런 판단의 배경이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재정을 함부로 풀었다가는 아직 해소되지 않고 있는 고물가와 그로 인해 파생된 고금리 현상만 더욱 심화될 수 있다. 얼마 전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경제 전망 보고서를 통해 근원물가가 여전히 높다고 지적하면서 각국에 긴축기조 유지와 재정건전성 강화를 주문했다.

IMF의 권고가 아니더라도 현 상황에서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재정 건전성 강화를 위해 법적 수단을 마련하는 일이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현 정부 의지대로 국가재정법을 개정해 재정준칙을 하루라도 빨리 도입하는 일일 것이다.

현재 우리의 국가채무는 1000조원을 넘겼고, 그 바람에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얼추 50% 수준에 도달해 있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말 우리의 국가채무가 액수로는 1100조원, GDP 대비 비율로는 50%를 각각 넘기게 된다고 추산하고 있다. 지난 5월 감사원이 국회에 제출한 2022회계연도 국가결산 검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의 국가채무는 1033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GDP 대비 비율은 48.1%였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박근혜 정부까지만 해도 30%대를 유지했다.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 전체가 40%선을 넘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금과옥조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후 스스로 입장을 바꿔 40% 기준의 근거가 무엇이냐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그 선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집권 5년 동안 국가채무 400조원 증가’였다. 정부 수립 후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누적된 국가채무가 600조원 정도였으나 불과 5년 사이 그 규모가 배 가까이로 늘어났던 것이다.

다행히 윤석열 정부는 취임 이후 줄곧 건전 재정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엔 2023년도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총지출 규모(639조원)를 전년도(추경 포함)보다 낮게 책정했을 정도로 재정 건전화에 대해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국가재정이 부실해지면 그 부담은 후세에 전가되기 마련이다. 적자국채 발행을 늘려가며 재정을 마구 투입하는 일은 무능한 정치 지도자 또는 포퓰리스트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로 인해 당대의 정권은 인기를 누리며 박수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나 나라 곳간은 나날이 비어가게 된다. 대규모 추경 편성 주장은 미래 세대에게서 빚을 끌어와 지금 당장 우리끼리 영화를 누리자고 외치는 것과 같다. 행여나 정부마저 총선 승리 욕심에 말려 스스로 꾸린 백년대계를 흩트리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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