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3%로 내려앉았다. 체감물가로 불리는 생활물가는 7월 들어 헤드라인 물가보다 더 낮은 1.8%의 상승률을 나타냈다.

이 수치들만 놓고 보면 국내에서 고물가 시대가 끝났다고 오해할 수 있다. 한국은행의 물가안정 목표에 거의 도달했다고 착각할 만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통화정책은 통화량 자체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기 대비 2%)을 목표치로 설정한 뒤 중기적 관점에서 그 목표를 달성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도 마찬가지다.

수치는 양호했지만 실상은 딴판이다. 통계 당국이나 한은 모두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급락이 기저효과에 의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비교 시점인 1년 전의 물가 수준 자체가 워낙 높았던 탓에 전년 동기 대비 7월 물가상승률이 낮게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2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7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1.20(2020년=100을 기준으로 함)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달 대비 상승률은 2.3%다. 이는 2021년 6월 2.3% 상승률을 기록한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작년 7월 6.3%로 정점을 찍은 이후 내려가는 추세를 보였다. 하향 흐름은 올해 1월에 잠시 상승반전(5.0→5.2%)하더니 2월부터는 다시 내리막으로 접어들었다. 그 결과 물가 상승률은 지난 6월 2%대(2.7%)로 하락했고 그 여세를 지난달까지 이어갔다.

물가 상승률 급락에는 국제유가 하락도 큰 영향을 미쳤다. 유가 하락은 석유류 가격은 물론이거니와 각종 공업제품과 전기·가스·수도료 가격을 안정화시키는데 두루 기여했다. 전체 7월 물가 상승률에 대한 석유류의 기여도는 -1.49%포인트였다. 석유류의 기여가 없었다면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3%+1.49%’가 됐을 것이란 의미다.

지난달 석유류 가격은 1년 전보다 25.9%나 하락했다. 1985년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래 가장 큰 하락폭에 해당한다. 경유는 33.4%, 휘발유는 22.8%, 자동차용 LPG(액화석유가스)는 17.9% 하락했다. 석유류 가격 하락의 영향을 연쇄적으로 받은 덕분에 공업제품 가격은 제자리 걸음(상승률 0.0%)을 했고 전기·가스·수도료는 21.1% 상승률을 보였다. 7월 전기·가스·수도료 상승률은 2022년 9월(14.6%) 이후 가장 낮은 것이었다. 해당 요금 상승률이 이처럼 커진 것은 정부가 정책적으로 인상 시점을 미룬 것과 연관돼 있다.

한 번 오르면 내려가기 어려운 외식 등 개인서비스 가격은 4.7%나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상승폭은 2022년 4월의 4.5%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개인서비스 가격 상승세는 꾸준히 완화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문제는 상승률 자체가 지나치게 높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농축수산물 가격은 폭우 등의 영향으로 채소류가 7.1%나 상승하는 바람에 전월 대비로 1.7% 상승했다. 채소류 물가가 전월 대비 플러스 상승률을 나타낸 것은 지난 3월(1.0%) 이후 처음이었다. 채소류 중에서도 상추(83.3%)와 시금치(66.9%)의 전월 대비 상승률이 유독 높았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채소류 가격 상승률은 다음 달 더 높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통계청은 채소류 가격이 7월 하순에 많이 올랐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다음 조사 때는 채소류 물가 상승률이 더 크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농축수산물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로는 -0.5%를 기록했다. 그중에서도 국산 소고기와 돼지고기 등 축산물 가격은 전년 동기에 비해 4.1% 하락했다. 이 모두는 작년 7월 폭염 등의 영향으로 농축수산물 가격이 크게 올랐던데 따라 나타난 기저효과 탓이었다.

하지만 사과(22.4%), 고등어(9.2%), 닭고기(10.1%), 고춧가루(8.3%) 등은 작년 동기 대비로도 비교적 높은 상승률을 나타냈다. 오징어 등 수산물 가격도 1년 전보다 5.9% 상승했다.

구매 빈도와 지출 비중이 높은 144개 품목을 따로 떼어내 산출한 생활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1.8% 상승했다. 이 지수 상승률이 1%대로 내려오기는 2021년 2월(1.7%) 이후 처음이다.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는 작년 동기 대비 3.9% 올라 지난해 4월(3.6%) 이후 최저 상승률을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방식의 근원물가(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상승률은 전달보다 0.2%포인트 낮아진 3.3%로 집계됐다. 이 또한 작년 4월(3.1%) 이후 최저치다.

물가 상승률은 기저효과가 사라지는 탓에 8월부터 다시 우상향 곡선을 그릴 것으로 예상된다. 통계청은 당장 8월부터 상승률 둔화 흐름이 끊어질 가능성을 거론했다.

한국은행도 비슷한 전망을 제시했다. 이날 김웅 부총재보 주재로 물가상황 점검회의를 진행한 한은은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8월부터는 3% 안팎에서 움직일 것이라 내다봤다. 김 부총재보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8월부터 다시 높아져 연말까지 3% 안팎에서 등락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은은 지난 5월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근원물가 상승률이 3.3%를 기록할 것이라 예상했었다. 한은은 또 향후 물가 흐름에 여러 변수가 작용할 수 있음을 지적했다. 국제유가와 기상여건 변화 등이 물가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소들로 지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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