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한국전력의 빚이 사상 처음으로 200조원을 돌파했다. 작년부터 40% 가까이 전기요금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올 해 상반기에만 8조원 이상의 추가 부채가 발생한데 따른 것이다.

22일 한전의 반기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6월말 현재 연결기준 총부채는 201조4000억원에 달했다. 국내 상장사 가운데 가장 많은 액수다. 35조 남짓의 자본 규모로 볼 때 만약 한전이 유사시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일반 기업이라면 회사채를 발행하기도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한전의 총부채는 지난해 말 192조8000억원이었다. 매년 조금씩 늘어나던 한전 부채는 특히 지난해에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렸다. 한전 부채는 2019년 128조7000억원, 2020년 132조5000억원, 2021년 145조8000억원 등으로 서서히 늘다가 지난해엔 47조원의 증가폭을 기록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에서 비롯된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이 전기요금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한전이 막대한 영업손실을 본 것이 주 원인이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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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생산에 쓰이는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자 한전도 지난해부터 전기요금을 여러 차례 올렸다. 인상 횟수만 5회에 이른다. 그러나 고물가가 일상화된 현실에 부담을 느낀 정부가 인상폭을 최대한 자제시킨 탓에 한전의 재무 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한전과 전력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한전의 누적 적자를 해소하려면 올해에만 전기요금을 kWh당 51.6원 올려야 한다는 입장을 낸 바 있다. 이에 따라 정부도 올해 전기료를 분기별로 나누어 4차례 인상하기로 했지만, 1분기(13.1원)와 2분기(8원) 두 차례에 걸쳐 도합 21.1원을 인상한 뒤 추가 인상을 유보하고 있다.

6월말까지는 결정됐어야 할 3분기 요금 인상은 이미 물 건너갔고 이제 남은 것은 4분기 전기료 인상이다. 이 결정은 다음 달 중 이뤄져야 하는데 지금 상황으로 보아선 인상을 장담하기 어렵다. 고물가 현상이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 총선(내년 4월)이라는 정치적 변수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은 대체로 한전이 올해 3분기엔 영업이익을 낸 뒤 4분기에 다시 적자로 돌아설 것이란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3분기 플러스 영업이익 전망은 지난 4월부터 나타난 국제유가 안정과 전기료 인상 등에 힘입어 이전의 역마진이 해소됐다는데 기반을 두고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한전의 올해 연간 영업손실은 7조원 정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전망도 그리 낙관적이지 못하다. 최근 들어 국제유가가 다시 상승해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90달러를 넘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서이다. 국제유가가 연료비 단가에 반영되는데 3~4개여월의 시차가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의 고유가는 내년도 상반기 한전의 영업실적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전기료 인상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연내 전기료 추가 인상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전기요금 인상이 끝내 성사되지 않는다면 한전은 큰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그간 의존해왔던 회사채(한전채) 발행조차 용이치 않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한전은 한국전력공사법에 의거해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치의 6배까지 한전채를 발행할 수 있다. 기본 원칙상의 한도는 2배로 더욱 타이트하다. 작년 말 기준 한전의 자본금·적립금 합이 20조9200억원임을 고려하면 한전이 최대한으로 발행할 수 있는 한전채 규모는 100조원을 조금 넘는 정도다. 올해 7월 말 현재 발행 잔액은 78조9000억원이다.

당장 우려스러운 것은 내년 상황이다. 현재 증권사들 전망대로 올해 7조원가량의 영업손실이 발생한다면 자본금과 적립금 합이 그만큼 줄어들고 덩달아 한전채 발행 한도도 올해보다 크게 축소된다. 국회가 또 다시 한국전력공사법을 개정해 한도를 늘려주는 방법이 있겠지만, 이는 사채 발행 제한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법 조항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

확실한 해결책은 전기요금을 현실화하는 일일 것이다. 더구나 지금처럼 국제유가가 다시 요동치는 상황에서는 전기요금 추가 인상이 전제돼야 내년도 한전의 영업실적 흑자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한전은 최근 2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2023년 말 대규모 적립금 감소와 자금조달 제한이 예상된다”고 전제한 뒤 “정부와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원가주의에 입각한 전기요금 현실화, 자금조달 리스크 해소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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