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미국에서 ‘인플레이션 목표 2%’의 효용성 및 합리성을 둘러싼 논란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한동안 금과옥조처럼 여겨져온 2% 목표가 최근의 경제 상황과 맞물려 새삼스레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세계 범용이 되다시피한 인플레 2% 목표는 우리나라에서도 통용된다. 한국은행 또한 물가안정 목표 2.0%를 기본 전제로 깔아둔 상태에서 통화정책을 운용하고 있다.

해묵은 이 논란을 다시 촉발시킨 것은 22일자(이하 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사 ‘연준의 인플레이션 목표(Inflation Target)에 대한 논쟁’이었다. 신문은 기사를 통해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설정한 2% 목표를 고수해야 하는지를 놓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논란의 구체적 내용은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2%로 떨어뜨리기 위해 장기간 고강도 긴축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합당한가에 모아져 있다. 반대론자들은 대개 인플레 목표 수준을 3% 정도로 높여도 무방하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토마스 바킨 미국  리치먼드 연방준비은행 총재.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토마스 바킨 미국 리치먼드 연방준비은행 총재.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반론은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현재 3.2%(7월 기준, 전년 동기 대비)로 내려가 있는 현실과 맞물려 있는 듯 보인다. 물가가 이 정도로 낮아졌으니 경제에 부담을 주는 고강도 긴축을 더 이상은 강화하지 말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6월 9.1%로 최고점을 찍은 뒤 서서히 감소했다. 그러나 그 속도가 더뎌 물가목표 달성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준도 목표에 도달하려면 아직 할 일이 많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해왔다. 2% 목표 달성이 가시화되기까지는 긴축 기조를 완화할 의사가 없다는 메시지를 발신해온 셈이다.

연준의 입장이 확고한 까닭에 시장에서는 5.25~5.50%인 지금의 기준금리가 장기간 지속되거나 더 오를 수 있다는 인식이 형성돼 있다. 확률상으론 현 상태의 지속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조기 통화정책 방향 전환(피벗) 가능성이 보이지 않자 시장에서는 장기간의 고강도 긴축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하나 둘 늘고 있다.

장기 긴축에 대한 불만은 주식 투자자들은 물론 일반 기업, 정치권 모두에서 나오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고금리가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지만 경제활동 위축이라는 부정적 효과를 동반할 수 있다는 점이 그 이유이다. 민주당 소속의 로 칸나 하원의원(캘리포니아) 같은 이는 “2% 물가목표는 과학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일 뿐”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애덤 포즌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소장은 “물가상승률을 3.5%에서 2.25%로 낮추기 위해 경제를 짓누르는 행위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웬만큼 물가가 잡혔으면 2% 목표에 구애받지 말고 긴축을 완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연준의 의지는 확고하다. 아직까지 드러난 바로는, 피벗 기미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목표 수정은 고려하지 않는다”라거나 “아직 갈 길이 멀다”고 강조해왔다. 연준 성명도 여러 차례에 걸쳐 비슷한 취지를 밝힌 바 있다.

연준의 입장은 22일 토마스 바킨 리치먼드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의 공개발언을 통해 재차 확인됐다. 바킨 총재는 이날 버지니아주 댄빌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해 연설하면서 “2% 목표는 달성할 수 없는 마법의 숫자가 아니다”라는 취지를 밝혔다. 물가안정 목표 2% 달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강조한 발언이라 할 수 있다.

2% 유지론자들은 연준이 물가안정 목표를 바꿀 경우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라 우려한다. 연준의 통화정책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게 우려의 핵심이다. 만약 목표치를 3% 등으로 바꾼다면 지난 수 십 개월 동안 추진해온 통화정책을 연준 스스로 부정한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이 점 또한 연준이 2% 목표 변경을 거부하는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이유일 것으로 분석된다.

논란이 본격화된 상황인 만큼 25일(한국시간 당일 밤) 잭슨홀 미팅에서 파월 의장이 인플레 목표에 대해 반응을 보일지에 관심이 쏠리게 됐다. 파월 의장은 이날 행사에서 경제전망을 주제로 연설한다.

이 자리에서 파월 의장이 일각의 기대대로 “물가안정 목표에 구애받지 않겠다”라는 취지를 밝힌다면 연준의 긴축 행보는 완전히 종결됐다는 인식이 굳어질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발언 등 정황을 살펴보자면 오히려 그 반대 취지의 발언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물가안정 목표에 대한 언급 없이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을 상기시키는 선에서 통화정책 발언을 마무리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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