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더니 결국 200조원을 넘어섰다. 최근 한전이 공개한 반기보고서에 의하면 올해 상반기까지 누적된 한전의 총부채(연결기준)는 201조4000억원이었다. 국내 상장사 중 최대치이자 우리나라 1년 예산의 3분의 1을 넘어서는 규모다.

더 심각한 문제는 부채 규모가 증가일로에 있다는 점이다. 올 상반기 기준 누적 총부채는 반년 만에 8조원가량 늘어났다. 올해 3분기엔 국제유가의 일시적 하락에 힘입어 한전이 약간의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기대된다지만 4분기엔 다시 적자로 돌아서리라는 게 시장 분석가들의 전망이다. 예상되는 올해 한은의 연간 영업손실 규모는 7조원 정도다.

이 전망대로 간다면 한은의 총부채는 올해 말엔 201조4000억보다 1조원 정도 줄어들게 된다. 그렇더라도 이를 두고 전반적 흐름이 반전됐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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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내년 상반기 전망부터가 그리 낙관적이지 못하다. 지난 5월부터 안정세를 보였던 국제유가가 최근 들어 다시 강세로 전환된 것이 직접적 원인이다. 5월 초 배럴당 70달러 언저리를 맴돌던 두바이유 선물가격은 7월 중순까지 70달러대를 유지했으나, 그 이후 80달러대로 올라섰고 24일 현재 90달러 턱밑까지 도달했다.

앞으로 국제유가가 다시 안정세로 돌아선다는 최상의 시나리오를 가정하더라도 지금의 고유가는 시차를 두고 내년 상반기 한전 영업실적에 반영된다. 그 경우 한전의 재무상태는 한 번 더 악화된다.

한전의 부채가 늘어나면서 초래되는 문제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 심각성 또한 간단치 않다. 당장 거론되는 문제는 내년부터 한전채 발행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한전채 발행은 한국전력공사법(한전법) 규정에 따라 기본적으로 자본금·적립금 합의 2배 범위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다만, 특별한 이유가 인정될 경우엔 일정 절차를 거쳐 최대 6배까지 한전채를 발행할 수 있다.

관련 규정을 토대로 작년 말 기준 한전의 자본금·적립금 합이 20조9000억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한전이 발행할 수 있는 채권 규모는 백 수십 조원 선이다. 그런데 올해 7월 발행잔액이 78조9000억원이라는 점, 자본금·적립금 합이 올해 말엔 작년보다 7조원(올해 영업손실 예상액) 정도 줄어들게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야기가 또 달라진다. 내년엔 한전이 회사채를 추가로 발행하지 못하는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한전법을 재차 개정하면 되지 않겠냐고 되묻는 이가 있을지 모르나, 그 정도면 한전 재무상태가 이미 통제 불능의 상태에 들어갔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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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채 남발은 우리 경제 전반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빚이 많아도 정부 보증이 확실시되는 만큼 한전채는 채권시장에서 초우량주로 대접받는다. 그래서 한전채의 다량 공급은 채권시장에서 일반 기업들의 회사채가 외면받는 상황을 초래한다. 그 결과 기업들, 심지어 선호도가 비교적 높은 금융기관의 채권(금융채)조차 고리의 이자를 지불해야만 겨우 채권을 발행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채권 발행을 제때 못하면 기업들은 자금난에 봉착하고, 경영활동이 위축돼 경제 전반이 활력을 잃게 된다. 또한 금융채 발행으로 많은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면 이는 은행들의 자금조달 비용 증가로 이어지고, 종국엔 대출 금리가 올라가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처럼 심각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건만 정부는 아직도 설마설마 하는 심사에 기대 전기요금 추가 인상을 결단하지 못 하고 있는 듯 보인다. 1분기와 2분기에 각각 kWh당 13.1원과 8원을 인상한 뒤 미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선 정부가 내년 봄 총선을 의식해 인기 없는 전기료 인상 조치를 미루고 있다는 분석을 제시한다. 틀리지 않은 분석이라 여겨진다.

정부는 내심 국제유가가 하락세로 전환해 한전의 수익구조가 개선되면 내년부터 서서히 한전 부채가 줄어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단정할 순 없지만 그런 심산이라면 국정 운영 주체로서 너무도 위험하고 무책임한 자세라 할 수 있다. 국정을 책임진 이상 최대한 보수적으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정책을 운용하는 게 정도이기 때문이다. 낙관적 상황 전개를 전제로 한 정책 운용은 국가의 미래를 운에 맡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는 24일 출근길에서 한전의 채무 누적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이 나오자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통상 구조조정은 사업을 재정비하거나 그 범위를 축소해 군살빼기에 나서는 것을 의미한다. 방 후보자의 말은 앞서 한전이 밝힌 자구책을 토대로 재무구조 정상화에 우선 신경쓰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전기요금 인상이 우선 고려 대상은 아님을 짐작하게 하는 발언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부가 명심해야 할 점이 있다. ‘콩보다 싼 두부’에 비유될 만큼 비정상적인 전기요금을 방치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에너지 절약 의식의 강화가 더뎌지고, 그로 인해 누진적으로 가중되는 전기료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되돌아간다는 점이 그것이다.

3분기 인상이야 물건너 갔지만 4분기 전기료 인상은 피하지 말아야 한다. 4분기 인상은 겨울철 난방비 부담이 커지기 전에 짧은 기간이나마 에너지 절약 필요성을 상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시의성을 지닌다.

이참에 전기료 부과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작업도 필요할 것 같다. 시스템 전환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전기요금 책정에 매번 정치적 고려가 스며들 개연성이 상존하게 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선진 외국의 사례를 본떠, 독립적인 민간 위원회를 만든 뒤 전기요금을 결정토록 하는 방안도 고려해봄직하다. 전기요금 결정에 정치적 고려가 개입되는 관행을 타파하지 않는다면 에너지정책의 백년지대계는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말 것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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