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 방향을 제시하는 보고서가 1일 공개됐다. 보고서 작성 주체는 보건복지부 산하 전문가위원회인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다. 민간 전문가 12명을 포함해 15명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작년 11월 이후 20여 차례 회의를 거듭한 뒤 이날 서울 코엑스에서 공청회를 열고 ‘국민연금 제도개선 방향’이란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와 별도로 기금운용발전전문위원회는 ‘기금운용부문 개선사항’이란 보고서 초안을 공개했다. 여기엔 연금기금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방안이 담겼다. 골자는 국민연금공단에서 연금기금을 다루는 부문을 따로 떼어내 공사 형태의 기구를 만들자는 것이다. 기금운용의 독립성을 높여 정책적 판단보다 효율성을 앞세워야 한다는 취지가 담긴 방안이라 할 수 있다.

국민적 관심이 특히 집중되는 부분은 국민연금 제도개선을 위해 재정계산위원회가 제시한 실행방안들이다. 이대로 가면 기금이 2055년에 소진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런 불상사를 막을 방안이 제대로 마련됐는지가 주된 관심사라 할 수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재정계산위원회가 제시한 방안은 일단 올해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20세 청년이 90세가 되는 2093년까지 기금이 고갈되지 않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애초부터 이런 목표를 설정해두고 논의를 시작해 보험료율, 연금지급 개시 연령, 기금 수익률 등 세 가지 변수를 검토해왔던 것이다. 이들 변수를 어떻게 조정하고 조합하느냐에 따라 기금 고갈 시점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목표 달성을 위한 기본 실행 방향은 더 내고, 똑같이 받고, 더 늦게 받도록 조정하는 쪽으로 정리됐다. 다만 얼마나 더 내고, 어느 정도나 늦게 받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서는 각각 복수의 방안이 만들어졌다.

우선 보험료율은 현행 9%를 12%, 15%, 18%로 각각 올리는 안이 제시됐다. 보험료율은 월소득액 대비 보험료의 비율을 의미한다. 지금은 9%로 설정돼 있어서 직장 가입자의 경우 사용자와 근로자가 각각 9%씩 납부하고 있다. 보고서는 보험료율을 2025년부터 매년 0.6%포인트씩 올릴 것을 제안하고 있다. 올리되 인상 기간은 5년(3%포인트), 10년(6%포인트), 15년(9%포인트) 등 세 가지를 제시했다.

일례로 매년 0.6%포인트씩 15년 동안 9%포인트를 올리는 시나리오를 택한다면 보험료율은 2040년엔 18%로 올라가게 된다. 인상 기간을 조절할 경우 기금 소진 시점은 지금의 2055년에서 2063년, 2071년, 2082년으로 각각 늦춰진다. 다른 변수에 대한 손질 없이 보험료율만 올릴 경우 제시된 세 가지 시나리오 모두 기금을 2093년까지 존속시키는 데는 역부족이란 의미로 해석된다.

이런 전제 하에 함께 제시된 것이 연금지급 개시 연령 조정 방안이다. 이 방안 또한 세 가지로 정리됐다. 연금을 처음 지급받는 연령을 66세와 67세, 68세로 각각 늦추는 방안이 제시된 것이다. 지급 개시 연령은 2013년엔 60세였으나 5년마다 1살씩 늘어나고 있다. 이대로 진행된다면 2033년까지 해당 연령은 65세로 높아진다. 이런 원칙에 따라 올해 지급 개시 연령은 63세로 조정돼 있다.

연금지급 개시 연령에 따른 기금 고갈 시점은 66세이면 2057년, 67세이면 2058년, 68세이면 2059년이다. 이 또한 다른 변수의 병행 조정 없이는 기금을 2093년까지 존속시킬 수 없음을 보여주는 데이터라 할 수 있다.

마지막 세 번째 변수인 국민연금 기금 투자수익률과 관련해서는 현행 목표(4.5%)보다 0.5%포인트, 1%포인트 상향시키는 경우를 각각 상정한 방안들이 제시됐다. 이 경우 기금 소진 시점은 각각 2057년, 2060년으로 조금씩 늦춰진다.

위원회는 이상의 세 가지 변수를 조합해 모두 18개의 시나리오를 마련했다. 18개 시나리오 중 6가지가 기금 유지 기간을 2093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이러이러한 경우의 수들이 있으니 세 가지 변수를 어떻게 조합해 최종안을 마련할지는 정부가 알아서 결정하라고 과제로 남겨둔 셈이다.

김용하 재정계산위원회 위원장은 보고서 내용과 관련, 보험료율을 올려야 한다는 것과 매년 0.6%포인트 인상 속도로 가야 한다는 것을 제시했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이런 기본 방향 하에서 정부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한 셈이다.

명쾌하게 단일안을 제시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워낙 민감한 내용인데다 정책적 결단이 필요한 사안인 만큼 정부에 결정권을 넘긴 것을 나무랄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사실 국민연금 개혁은 기타 연금과 연계해 범정부 차원에서 이뤄져야 할 작업이다. 어차피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게임과 비슷한 일인 만큼 정책적 결단을 넘어 정치적 결단까지 동반돼야만 성공할 수 있는 지난한 작업이다. 지난 정부가 던지듯 복수의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사실상 국민연금 개혁을 포기한 것도 결단을 피한데 따라 벌어진 일이었다.

현 정부마저 위원회의 권고 내용을 참고해 결기 있는 단일안을 만들지 못한다면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도는 최악의 수준으로 떨어질 게 분명해 보인다. 개혁을 미룰수록 국민연금의 미래는 나날이 어두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청년층이 외면하는 국민연금은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을 윤석열 정부는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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