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국제유가가 연일 상승 행진 중이다. 유종(油種)별로 차이는 있지만 지난 5~6월만 해도 대개 60~70달러대에 머물렀던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롤 넘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외신 보도들에 의하면 6일(이하 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미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10월 인도분 선물가는 배럴당 87.54달러까지 올라갔다. 종가 기준으로 하루 전보다 0.85달러(0.98%) 상승한 값이다. WTI 가격은 9거래일 연속 상승하며 10개월 만에 최고로 치솟았다.

같은 날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11월물 브렌트유 1배럴은 전날보다 0.56달러(0.62%) 오른 90.6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국내 유류가격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두바이유 선물 가격도 전일 대비 1.38달러(1.54%) 오른 90.58달러를 기록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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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최근 두 달 새 나타난 국제유가의 상승세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원유 감산 연장 발표로 한 번 더 힘을 받았다. 두 나라는 지난 5일 각각 하루에 100만 배럴, 30만 배럴의 자발적 감산조치를 연말까지 연장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도합 130만 배럴 감산이란 강력한 조치가 적어도 연말까지 연장된다는 소식에 시장은 긴장감을 드러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非)OPEC 산유국 협의체인 OPEC+는 지난해 10월 하루 200만 배럴 감산에 합의한 바 있다. 이들 산유국 중 일부는 이와 별도로 지난 4월부터 하루 166만 배럴 추가 감산에 나섰다. 그 결과 하루 366만 배럴씩 감산이 이뤄지게 됐다.

사우디·러시아의 감산 연장이 발표되자 일부 글로벌 투자은행은 국제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미국 CNN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브렌트유 가격이 내년 연말엔 배럴당 107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골드만삭스는 이 시나리오가 가능성이 가장 큰 것은 아니라고 밝히면서도, 사우디·러시아의 조치만으로도 석유 공급량이 당초 예상보다 하루 50만 배럴 줄어들고 배럴당 유가가 2달러 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골드만삭스는 유가의 고공행진을 방해할 몇 가지 변수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유가가 지속될 경우 미국이 셰일오일 생산에 적극 나설 수 있다는 점, 내년 대선을 앞둔 미 행정부가 유권자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외교적 해결에 나설 것이라는 점 등이 변수로 지목됐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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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일각에서는 러시아와 사우디 외 산유국들이 증산에 나설 가능성, 중국의 경기 침체로 석유 수요가 감소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거론하며 유가 상승세가 주춤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사우디와 러시아의 감산 연장 발표 이후인 6일 미국 국채 수익률이 급등하고 뉴욕증시에서는 주요 지수들이 일제히 하락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특히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은 가장 많이 떨어져 1.06%의 하락률을 기록했다. 뉴욕채권시장에서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4%를 여유 있게 웃돌았고, 2년물 국채 금리는 장중 5%를 넘어섰다.

이 같은 현상은 국제유가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이 강화되고, 그 여파로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긴축 사이클이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와 연결돼 있다.

미국 경제가 여전히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점도 연준의 긴축 기조 장기화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때를 맞춘 듯 이날 공개된 연준 베이지북은 미국 경제가 완만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분석을 제시했다.

미국 경제의 연착륙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이 다시 강화되면 연준으로서는 큰 부담 없이 물가 안정에 올인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지금의 고금리 기조를 예상보다 길게 이어가거나 금리를 추가 인상할 가능성도 있다.

알리안츠그룹의 모하메드 엘-에리언 고문은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강한 상황에서 나타난 유가 상승이 기준금리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연준이 이번 달엔 금리를 올리지 않겠지만 다음 달엔 인상할 수 있다는 여지를 열어둘 것”이라고 예상했다.

연준은 오는 19~20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 인상 여부를 논의한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페드워치 툴에 나타나는 연준 기준금리 확률 전망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이달 기준금리 동결 확률엔 별다른 변화가 없지만, 오는 11월과 12월에 기준금리가 그대로 유지될 확률은 조금씩 줄고 있다. 대신 기준금리가 현행보다 0.25%포인트 올라가 5.50~5.75%에 이를 확률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7일 현재 페드워치 툴에 의하면 이달 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가 동결될 확률은 이번 주 초와 같은 93%(0.25%포인트 인상 3%)였다. 하지만 11월 1일과 12월 13일 끝나는 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가 지금(5.25~5.50%) 수준을 유지할 확률은 각각 65.3%에서 53.5%로, 63.3%에서 53.1%로 줄어들었다.

대략 줄어든 만큼 상승 확률은 높아졌다. 오는 12월 연준 기준금리가 5.50~5.75%로 결정돼 있을 확률은 지난 4일 30.7%에서 사흘 만에 41.9%로 상승했다. 이를 통해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 기준금리 동결에 대한 기대가 빠르게 약화되고, 대신 금리 인상을 점치는 의견이 많아졌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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