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노조가 KTX와 SRT 통합운행을 요구하며 지난 14일부터 나흘간의 한시적 파업에 돌입했다. 임금 인상과 4조 2교대 시행 등이 요구사항에 포함돼 있다지만 핵심은 KTX와 SRT 통합운행에 있다고 보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종국엔 KTX 독점체제로 회귀한 뒤 경쟁 없이 다시 한 번 철의자·철밥통 시대를 누리려는 속내를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KTX-SRT 통합운행 요구는 지난 1일부터 SRT 노선이 전라-동해선 등으로 확대되면서 수서~부산 간 SRT 운행이 줄어든 데서 촉발됐다. 이 조치는 서울~부산 간 KTX 운행 열차 증편으로 이어졌는데 이는 수서~부산 간 SRT 운행 축소를 보충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자 철도노조는 KTX를 서울~부산 구간에 추가 투입하지 말고 SRT 운행이 감축된 수서~부산 노선에 투입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를테면 이참에 수서행 KTX를 투입해 수서~부산 구간을 KTX와 SRT의 통합운행 구간으로 만들자고 요구한 것이다.

철도노조 파업 이틀째인 15일 서울역 내부. [사진 = 연합뉴스]
철도노조 파업 이틀째인 15일 서울역 내부. [사진 = 연합뉴스]

하지만 이는 서울역 거점의 KTX(코레일 운영)와 수서역 거점의 SRT(SR 운영)로 분리돼 있는 현행 고속철 운영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재편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결국 과거로 회귀하자는 것과 같은 주장이다. 현행 분리 운영 시스템이 도입된 취지를 생각하면 정부는 물론 우리 사회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라 할 수 있다.

현행 시스템은 잦은 철도사고를 줄이면서 철도 운수 서비스의 질을 높일 목적으로 7년 전 도입됐고, 소기의 성과도 달성했다. 실제로 2016년 SRT가 출범한 이후 고속철 운행이 경쟁체제로 바뀌자 서비스가 개선되고 요금이 차별화되는 등의 구체적 성과가 있었다. 이용객들이 연간 1500억원의 운임 절약 효과를 누리게 됐다는 분석도 제시돼 있다. SRT가 KTX보다 저렴한 요금을 책정해 메기효과를 일으킨 덕분이었다. SRT가 ‘승무원 호출용 앱’을 개발하는 등의 노력으로 고속철 서비스 개선을 자극한 것도 평가받을 만한 대목이다.

철도노조는 이번 파업의 명분 중 하나로 승객 불편 해소를 내세우고 있다. 수서~부산 간 SRT 감축으로 이용객 불편이 커졌으니 문제 해결을 위해 수서행 KTX 투입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서는 철도노조가 SRT-KTX 통합운행을 계기로 고속철 운영체제를 과거로 되돌리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철도노조는 SRT 노선 확대를 민영화를 위한 또 하나의 준비 단계라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설득력을 얻고 있지 못하다. 노조는 7년 전 KTX와 SRT를 분리한데 이어 최근 SRT 노선이 확대되자 철도 민영화 움직임이 또 한 단계 구체화됐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정부가 최근 관련법 개정안 입법예고를 통해 SR에 대한 정부출자 의지를 밝힌 것도 철도노조의 민영화 반대 목소리를 키우는데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SR의 최대 주주가 되면 언제든 정부 의도에 따라 지분의 민간 매각이 가능할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철도노조 파업 첫날인 지난 14일 대전역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철도노조 파업 첫날인 지난 14일 대전역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이에 대해 정부는 거듭 고속철 사업 민영화를 검토해본 적이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SR에 대한 정부 출자를 민영화를 위한 포석이라 주장하는 것 또한 어불성설이라는 게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양측의 대립은 각각의 입장과 견해 차에 따라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철도의 주인인 시민들의 입장이다. 그런 만큼 모든 쟁점 사안은 어디까지나 시민 편의를 증진하는 방향으로 정리되어야 한다.

시민 편의 차원에서 보자면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지금의 KTX-SRT 분리 운영 체제가 지속돼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당연히 과거의 독점체제로 회귀하겠다는 의도를 담은 것으로 보이는 철도노조의 주장은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없게 돼 있다.

다수 시민들은 철도노조의 주장에 과거의 철의자-철밥통 문화에 대한 향수가 깃들어 있다고 보고 있다. KTX 독점 체제로의 회귀가 코레일 직원들에게 더 많은 선택적 이익을 가져다 줄 뿐 시민들의 이익에 반하는 결과로 이어지리라는 것은 상식에 속하기 때문이다.

철도노조의 명분 없는 파업은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 철도노조는 이번의 한시적 파업 이후에도 2차, 3차 파업이 추진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하지만 거대 노조의 힘을 앞세운 습관성 파업은 여론을 더욱 악화시켜 결과적으로 코레일의 유지·보수 부문 분리를 앞당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 문제는 현재 국회에서도 논쟁을 낳고 있는 현안이다.

시민들의 발을 묶는 파업은 설사 명분이 뚜렷하다 할지라도 예외 없이 여론의 질타를 받아왔다. 더구나 지금은 추석 명절을 앞두고 물류는 물론 여객 운송 수요가 특히 많아진 시점이다. 이런 때 시민 편의를 볼모로 잡은 채 파업하는 것은 여론을 극도로 악화시켜 그 해악을 부메랑으로 만들 수 있다. 누가 보더라도 루즈-루즈 게임일 수밖에 없는 파업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끝내는 게 현명한 일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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