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국제유가가 상승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상승행진은 3주째 이어졌고, 이런 흐름은 한동안 더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유종을 막론하고 국제유가는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섰고, 이후에도 거듭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18일(이하 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0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가는 배럴당 91.48달러의 종가를 기록했다. 전 거래일보다 71센트(0.78%) 오른 가격이자 연중 최고치다. WTI 가격은 지난 14일 90달러를 돌파한 이후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날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는 11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가격이 전일 대비 50센트(0.53%) 올라 94.43 달러에 이르렀다. 이날의 브렌트유 가격 역시 올해 최고치를 기록했다. 브렌트유 가격은 지난 3월 저점에 비해 30% 이상 올랐다.

이처럼 국제유가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거론된다. 우선 지목되는 것이 공급 부족을 초래하는 원인들이다.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널리 알려진 공급 부족의 이유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하루 130만 배럴의 원유 생산량 감산 시한을 연말까지 연장키로 결정한 점이다. 하지만 이 조치가 최근의 국제유가 상승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두 나라의 결정이 생산량을 기존보다 줄인 것도 아니고, 그간 해오던 감산을 연장한 데 불과하다는 점이 그런 주장의 논거다.

때를 맞춘 듯 발생한 리비아 홍수, 쿠데타로 인해 불안해진 가봉의 정치상황도 최근의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를 키우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들 두 나라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가입한 산유국들이다.

리비아는 하루 10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해왔으나 근래 들어 홍수를 만나는 바람에 생산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가봉의 경우 일일 산유량은 리비아의 5분의 1 수준에 그치지만 나름 국제유가 공급분의 일정 부분을 감당해왔다.

공급 부족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불안심리가 국제유가 상승을 재촉한다는 견해도 있다. 그런 견해 중 하나가 미국의 전략비축유 보유량 감소로 공급 부족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커졌다고 보는 시각이다.

현재 미국의 전략비축유는 1983년 이후 최소량으로 떨어져 있으며 재고량이 정점을 이뤘던 2010년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고량 감소는 지난해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미국이 유가 안정을 위해 전략비축유를 대대적으로 방출한 것과 연관이 있다.

그러나 현실 여건으로 볼 때 미국은 전략비축유를 동원해 국제유가를 안정시킬 수 있는 능력을 더 이상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행정부는 전략비축유 부족분을 조만간 보충할 의지를 드러내고 있지만 그런 행동은 국제유가를 또 한 번 자극할 수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공급 불안 지속의 원인으로 또 하나 빼놓지 않고 거론되는 것이 미국 셰일오일 생산업체들의 소극적 움직임이다. 지난 세월 동안 미국산 셰일오일은 국제유가를 안정시키는데 크게 기여해왔다. 국제유가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서면 저유가 기간 동안엔 채산성이 없어 생산을 자제했던 미국 셰일오일 업체들이 활발한 생산 활동을 벌이곤 했다. 한동안 그 분기점이 배럴당 60~70 달러 선이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업체들은 국제유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산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 정부가 셰일오일 생산 활동에 대해 환경규제를 강화했고, 그 결과 셰일오일 생산비가 이전과 달리 크게 올라간 것이 그 이유로 지목된다.

셰일오일은 대개 모래와 화학약품 등을 섞은 물을 강하게 분사해 암반을 깨는 방식(프래킹: 수압파쇄법)으로 추출된다. 그 과정에서 심각한 환경오염이 발생한다는 이유로 미국 정부는 오래 전부터 셰일오일 생산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이것이 셰일오일 생산업체들의 활동을 위축시켰고, 결국 셰일오일의 국제유가 조절 기능을 약화시켰다. 현재 미국 내 유전들 중 90% 정도에서는 프래킹 기법이 활용되고 있다.

미국산 셰일오일 생산량은 앞으로 더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에너지관리청(EIA) 추산에 따르면 미국의 다음 달 원유 생산량은 지난 5월 이후 최저치인 하루 939만3000배럴 수준으로 떨어진다. 전달 대비 감소폭은 4만 배럴 정도다. 이는 셰일오일 업체들이 생산시설을 축소해가고 있는 움직임과 연결돼 있다.

국제유가 상승은 이상의 공급 측면에서의 이유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수요가 늘어나거나, 늘어날 것이란 인식이 확산될 경우에도 국제유가는 상승 압력을 받기 마련이다.

미국 주유소 모습. [사진 = AP/연합뉴스]
미국 주유소 모습. [사진 = AP/연합뉴스]

분석가들은 국제적으로 원유 수요가 당분간 늘어날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OPEC는 지난주 발간한 원유시장 보고서를 통해 올해 4분기엔 세계 석유시장이 하루 300만 배럴 이상의 공급 부족을 겪을 것이라 예상했다. 생산 감소 속에서도 수요는 꾸준히 늘어갈 것이란 점이 그런 전망의 배경이다.

수요 증가의 원인으로는 미국 경제의 연착륙 및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가능성 증가 등이 꼽힌다. 중국은 최근 정부가 경기 부양책을 내놓으며 경제 활성화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 데다 8월 경제지표가 예상 외로 좋게 나오는 바람에 리오프닝에 대한 기대를 다시 키우기 시작했다. 세계의 주요 석유 소비처인 중국의 경기 부진은 그간 국제유가 수요를 감소시키는데 크게 기여해왔었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국제유가 상승 압력은 공급과 수요 양면에서 점차 커지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들 사이에서는 국제유가가 조만간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제유가가 마냥 오르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둔 미국 행정부가 국제유가 상승에 의한 국내 석유류 가격 인상을 원치 않고 있고, 유가가 더 오를 경우 미국 내 셰일오일 생산이 활발해질 수 있다는 점이 그런 전망의 바탕을 이룬다.

국제유가 상승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취할 현실적 방안에는 외교적 해법도 포함돼 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18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국제유가 동향에 대해 언급하면서 “안정될 것이라 기대하지만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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