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4분기 전기요금 인상 여부를 두고 정부·여당이 막판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요금을 올리자니 잡히지 않은 인플레이션을 증대시키며 서민 생활고를 더 키우게 되고, 그대로 두면 안 그래도 만신창이가 돼 있는 한국전력의 재정상황을 한층 악화시킬 게 뻔해서이다. 상식적으로 보면 올리긴 올려야 하는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 만큼 정부· 여당으로서는 민심이 악화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듯 여겨진다.

그러나 정부·여당의 고민도 조만간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4분기가 목전에 다다른 탓에 이젠 어떤 방향으로든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결정을 내리는 시점이 21일이 될 가능성도 있다.

4분기 전기료를 조정하려면 한전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고시에 따라 분기 시작 전달 21일까지는 전력량요금·기본요금 등과 함께 전기료를 구성하는 항목인 연료비조정단가(요금)를 확정해야 한다. 연료비조정단가는 킬로와트시(kWh)당 ±5원 범위 안에서 변경될 수 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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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21일 연료비조정단가 변경이 발표된다면 4분기 전기료 조정이 정부·여당과 한전에 의해 추진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일례로 지난 6월 21일 한전은 올해 3분기 연료비조정단가를 그대로 유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언론들은 이를 ‘3분기 전기요금 인상 없음’ 신호로 받아들였고, 실제로도 3분기 전기료는 인상되지 않았다.

앞선 1분기와 2분기에 한전은 전기료를 각각 kWh당 13.1원, 8원 올린 바 있다. 이로써 전기료는 올 들어 도합 21.1원 인상되는데 그쳤다. 당초 한전이 재정상황 정상화를 위해 인상해야 한다고 밝혔던 연간 kWh당 인상폭 51.6원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21일까지 연료비조정단가 변경이 이뤄지지 않는다 해서 4분기 전기료 인상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연료비조정단가 변경 없이 전력량요금을 상향조정하는 방식으로 전기료를 인상하는 방법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전력량요금 조정을 위해서는 한전 이사회와 산업부 전기위원회 심의·의결 등을 거쳐야 하는데 그런 절차가 진행 중인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만약 이런 일련의 절차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 확인된다면 곧 4분기 전기료 인상이 결정된다고 판단해도 무방하다.

현재로서는 4분기 전기료 인상이 이뤄질지 짐작하기 어렵다. 19일 새로 임명된 방문규 산업부 장관이 20일 한전 사장과 같은 날 취임했다는 점은 시간적으로 4분기 전기료 인상 결정이 제때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을 뒷받침해준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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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장관이 앞선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장관 후보자 자격으로 한 발언도 4분기 전기료 인상이 이달 안에 결정되긴 쉽지 않을 것이란 추론을 낳게 했다. 당시 방 후보자는 국민을 상대로 전기료 조정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려면 먼저 한전이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취지를 밝혔다. 선(先) 한전 구조조정, 후(後) 전기료 인상 논리를 펼쳤다고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장관 취임 후 먼저 한전 구조조정을 적극 독려해 소기의 성과를 낸 뒤 그 성과를 명분 삼아 전기료 인상을 단행하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방 장관이 청문회 당시 “구조조정 선행 없이는 그 얘기(전기료 인상)를 해선 안 된다고 본다”라고까지 말한 점을 상기하면 그 같은 해석은 더욱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방 후보자는 또 한전의 적자 확대가 국제유가 변동과 이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서 비롯됐다는 인식을 드러내면서 “전기료 인상이 가장 큰 고민거리”라고 말했다. 탈원전 정책을 한전 적자 원인의 하나라 지목한 그는 전 정권이 원전을 6개 없앴고 가동률도 줄인 점을 지적했다.

방 장관의 청문회 발언 등을 취합하면 4분기 전기료 인상이 10월이나 11월에 뒤늦게 이뤄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순리대로 한다면 분기 시작 전에 인상 여부가 결정돼야 하지만 이달 내 인상은 물리적으로 어렵다고 할 수 있다. 한전은 지난 2분기 때도 전기료 인상을 분기 도중 결정했고, 그 결과 소급적용 없이 5월 16일부터 오른 요금을 적용했다.

2분기 요금 인상이 분기 중간쯤에 이뤄진 탓인지 정부는 3분기엔 전기요금 인상을 건너뛰었다. 한 달 남짓 만에 전기료를 또 올리자고 하기엔 부담이 컸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를 참고하면 내년 1분기에도 전기료가 인상되지 않을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4분기 요금 인상이 10월로 미뤄진다면 그 가능성은 더욱 커질 수 있다. 10월 4분기 요금 인상에 이어 12월 말에 내년 1분기 요금을 또 인상하는 것은 부담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는 12월 말은 차기 총선을 불과 3개월여 앞둔 시점이다.

한편 한전 부채는 최근 200조원을 넘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한전이 지불하는 이자만 하루에 70억원 정도에 이른다. 시장 전문가들은 한전이 올해 3분기엔 약간의 영업이익을 내겠지만 4분기엔 다시 적자로 회귀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시장이 추산하는 한전의 올해 연간 영업손실은 7조원가량이다. 하지만 국제유가가 7월 중순 이후부터 예상 외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온 점을 감안하면 연간 영업손실은 이보다 커질 가능성이 있다.

이런 판국에 요금 인상마저 계속 억제된다면 한전은 심각한 재정난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은 소위 한전채라 불리는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해왔으나 내년부터는 법령상의 사채 발행한도에 걸려 그마저 여의치 않게 된다.

무리가 가더라도 사채 발행 한도를 또 늘리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려면 다시 한 번 한국전력공사법(한전법) 개정안을 제출해 국회 승인을 얻어야 한다. 그 경우 정부·여당은 국회 심의 과정에서 쏟아질 야당의 거센 비판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 정부·여당으로서는 택하기 쉽지 않은 카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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