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한국경제가 빚더미에 눌려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도한 빚에 의한 고통은 정부와 기업, 가계 등 주요 경제주체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과다 채무는 정부로 하여금 재정집행 여력을, 기업에 있어서는 투자 능력을, 가계의 경우 소비 능력을 제약함으로써 경제 발전에 큰 지장을 초래한다.

정부의 경제활동에서 발생하는 빚은 국가채무로 쌓여가며 종국엔 국가 신인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더구나 우리처럼 비(非)기축통화국이라면 그 심각성은 더 중대해진다.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할 일은 지출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주어진 조건 하에서 재정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일이다. 그 대안으로 정부는 재정준칙을 담은 국가재정법 입법을 추진 중이지만 해당 법안은 국회에서 장기간 낮잠을 자고 있다.

기업과 가계가 짊어진 민간 채무 역시 경제활동을 제약하는 대표적 악재로 꼽힌다. 민간 채무의 지나친 증대는 소비와 투자 여력을 약화시켜 국가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국내총생산(GDP)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는 내수가 오그라들면 수출이 아무리 잘 된다 할지라도 경제 성장이 순탄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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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등에서는 민간 채무가 지나치게 커진 상태를 두고 통상 금융불균형이 심화됐다는 표현을 쓴다. 예금보험공사 정의에 의하면, 금융불균형이란 ‘생산역량에 의한 미래소득의 현재 가치에 비해 부채 비율이 지나치게 커진 상태’를 지칭한다. 기업이나 가계 등 민간 경제주체가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로 많은 빚을 짊어지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고 이해하면 무리가 없을 듯하다.

금융불균형은 자산 가치가 급격히 커지거나 그 위에 거품이 생길 경우, 생산요소가 비효율적으로 배분될 경우 등에 나타나기 쉬워진다. 어떤 경우든 금융불균형이 심화되면 경제 발전에 지장이 초래되기 때문에 정부와 금융 당국은 각종 제재 수단을 동원해 불균형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펼치기 마련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금융불균형이 다시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자 한국은행은 문제 해결을 위해 가계대출과 부동산 가격을 적절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민간신용 증가를 이대로 방치한다면 소비 및 투자가 위축돼 국가경제 전반에 심대한 타격이 가해질 수 있다는 게 한은의 지적이었다.

26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의 추정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기준 명목GDP 대비 민간신용(자금순환통계상 가계와 기업 부채의 합) 비율은 225.7%였다. 이는 1분기 말의 224.5%보다 1.2%포인트 높아진 것으로서 역대 최고치에 해당한다.

이 비율은 작년 4분기엔 225.6%를 보였다가 올해 1분기에 1.1%포인트 하락했으나 2분기 들어 다시 상승세로 전환됐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민간신용 중 가계신용의 명목GDP 대비 비율은 101.7%를 나타냈다. 직전 분기의 101.5%보다 0.2%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서 주택 관련 가계대출이 증가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기업신용 비율은 직전 분기보다 1.1%포인트 상승한 124.1%를 기록했다.

민간신용이 증가한 것에 비례해 금융취약성지수(FVI)도 전보다 악화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지수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금융불균형 정도와 금융기관 복원력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산출된다. 수치가 높을수록 금융취약성이 커진 것으로 인식된다. 이 지수는 2021년 2분기에 59.3으로 정점을 찍은 뒤 내리막을 달리다 올해 2분기 들어 반짝 상승했다. 2분기 FVI는 직전 분기(43.3)보다 0.3포인트 높은 43.6으로 집계됐다.

단기적 관점에서 금융안정에 영향을 미치는 실물·금융 지표를 토대로 산출되는 금융불안지수(FSI) 또한 올해 8월엔 전달(15.3)보다 1.2포인트 올라 16.5를 나타냈다. 이 수치는 주의 단계 구간(8~21)에 포함된다. FSI는 0(안정)~100(불안정) 사이에서 값이 형성된다.

한은은 보고서를 통해 FSI의 최근 상승이 민간신용 증가와 자산가격 오름세 등의 영향에 의해 이뤄졌다고 분석했다.

한편 이 보고서에 첨부된 ‘연령별 가계대출 차주의 특징과 평가’에 따르면 개인사업자 대출을 포함한 가계대출 차주들이 진 빚은 1인당 연 소득의 3배 수준에 이르렀다. 개인사업자 대출은 통상 기업대출로 분류되는데 여기서는 가계대출로 분류돼 집계가 이뤄졌다.

연 소득 대비 차주 각각의 가계대출 비율을 의미하는 소득대비부채비율(LTI)은 평균 300%였지만 연령대별 편차는 비교적 큰 것으로 밝혀졌다. 대체로 채무 부담 정도는 고령층에서 컸고, 부채 증가 속도는 청년층에서 빨랐다. 1인당 대출 규모는 40대가 1억4000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주택 매입용 대출이 많았던 게 원인인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 2분기 기준 연령대별 LTI는 60대 이상 350%, 40대 및 50대 중장년층 301%, 30대 이하 청년층 262%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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