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셧다운’이 또 미국경제의 주요 변수로 부상했다. 셧다운은 연례행사라 할 정도는 아니지만 잊을 만하면 등장해 미국경제, 나아가 세계경제에까지 악영향을 미치는 골칫덩이다.

셧다운(shutdown)은 본디 임시휴업 또는 사업장 폐쇄 등의 뜻을 지닌 일반명사다. 하지만 미국의 회계연도 변환기가 되면 이 단어는 ‘미 연방정부의 일시적 업무 정지’라는 제한적 의미로 통용된다. 대개는 야당이 정부가 제시한 예산안 처리에 반대함으로써, 의회가 심의필 예산안을 대통령에게 제때 송부하지 않아 발생한다.

미국 정부 예산안은 의회의 가결을 거쳐 대통령에게 송부된 뒤 대통령이 최종 서명함으로써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 같은 과정은 미국의 회계연도가 새롭게 시작되는 10월 1일 직전에 마무리돼야 한다. 소정의 절차가 때맞춰 진행되지 않으면 연방정부는 예산안을 확보하지 못한 채 새로운 회계연도를 맞을 수밖에 없다.

[사진 = EPA/연합뉴스]
[사진 = EPA/연합뉴스]

그 결과 나타나는 현상이 셧다운이다. 집행할 예산이 없어 공무원들에게 월급이나 수당을 못 주다 보니 연방정부가 필수 인력만 남긴 채 휴업 상태에 돌입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엔 준예산이란 제도가 없어서 법적 절차를 완료한 예산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행정부는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 한국의 경우 예산안이 국회에서 제때 처리되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준예산을 집행할 수 있도록 법제를 마련해두고 있다.

미국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방안을 갖추고 있기는 하다. 그 대안이 임시예산이다. 그러나 임시예산 또한 그때그때 의회의 승인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여·야 간 또는 행정부와 야당 간 갈등이 심할 경우 마련되지 못할 수 있다.

올해가 그런 경우에 해당할 수도 있다. 현재 미국 야당인 공화당의 강경파들은 셧다운 사태를 피하기 위해 논의되는 임시예산안 통과마저 거부하고 있다. 일부 강성 보수파 의원들이 민주당 정부에 강력히 맞서고 있는 셈이다. 이들 공화당 의원들은 조 바이든 민주당 정부의 새 회계연도 예산이 지나치게 방만하다고 주장하면서 대규모 삭감을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갈등은 진보 성향의 정부가 재정 집행을 헤프게 한다는 보수 야당의 불만에 뿌리를 두고 있다. 문재인 정부 당시 국내에서 퍼주기에 대한 논란이 요란했던 것과 비슷한 현상이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바이든 행정부가 큰 정부를 지향하는 것 또한 우리의 직전 정부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미국의 셧다운은 매번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되곤 했다. 지난 25일(현지시간) 미 의회조사국(CRS)이 공개한 ‘셧다운 영향 보고서’는 이달 말까지 예산안 처리가 완료되지 않을 경우 셧다운이 현실화돼 미국경제에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 경고했다.

보고서는 셧다운 영향이 기간 및 범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전제한 뒤 “연방정부가 제공하는 재화와 용역이 국내총생산(GDP)의 7%를 차지한다”며 “이들 재화와 용역이 제공되지 않으면 직접적인 GDP 감소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어 2018년 12월 22일부터 이듬해 1월 25일까지 진행된 셧다운 사태가 2019년 1분기 GDP를 0.3%포인트 갉아먹었다고 전했다. 보고서는 2014년 발생했던 셧다운 사태도 거론하면서 당시 40만명의 연방정부 공무원이 한 달가량 사실상의 무직상태에 놓였었다고 설명했다.

셧다운이 현실화되면 연방정부 공무원들이 일시적으로 휴직하고 정부와 하도급 계약을 맺고 있는 숱한 민간기업의 직원들은 정리해고 위험에 놓인다. 그 여파로 미국내 소비와 기업 투자가 줄어 경제 발전에 지장이 초래될 수 있다.

보고서는 또 골드만삭스 분석을 인용하며 2014년 셧다운 당시 미국인 5명중 2명이 소비를 줄였다고 전했다,

국제적 신용평가사 무디스도 경고에 가세했다. 무디스는 지난 25일 낸 보고서를 통해 셧다운이 발생하면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에 부정적 영향이 가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정치적 양극화 심화가 미 행정부의 재정정책 결정에 상당한 제약을 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앞선 지난달 1일 또 다른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는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기존(AAA)보다 한 단계 강등해 AA+로 조정한 바 있다.

미국의 셧다운 사태가 몰고 올 또 다른 파장은 미국경제에 대한 불확실성 증대와 그로 인한 주식시장의 냉각이다. 연방정부 기능이 마비되면 각종 경제지표 생산이 중단되고, 그 여파로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정상적인 통화정책 운용을 못 하게 된다. 연준 통화정책이 기본적으로 각종 경제지표를 기반 삼아 그때그때 변화를 꾀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제롬 파월 현 연준 의장은 지표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강조하는 인물이다. 파월 의장은 그간 기자들에게 ‘그때그때’, ‘지표를 보아가며’, ‘라이브 미팅(통화정책 회의)’을 통해 기준금리 수준을 결정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해왔다.

그러나 노동통계국 등이 물가나 고용 관련 지표 등의 생산을 중단하면 연준은 물론 투자자들도 ‘깜깜이’ 상황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무엇보다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모든 경제주체들이 불확실성을 끔찍이 싫어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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