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소비자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한국은행이 물가 전망을 다달이 바꿔야 할 정도다. 지난 7월까지 6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인 결과 2.3%까지 감소됐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기 대비)은 8월 3.4%, 9월 3.7%로 다시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은 한국은행이 예상했던 물가 경로에도 부합하지 않는 모습이다. 한은의 예상을 웃도는 수준에서 물가가 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한은은 통계청이 매달 물가동향을 발표하는 시점에 맞춰 물가상황 점검회의를 진행한다. 그때마다 향후 물가 흐름에 대한 나름의 시의성 있는 전망을 내놓는다. 그런데 그 과정을 되돌아보면 한은의 물가 전망이 미세하게 변화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7월 물가동향이 발표된 지난 8월 초 한은은 소비자물가가 예상대로 둔화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8월부터는 상승률이 다시 3% 내외에서 움직일 것이라 전망했었다. 하지만 ‘8월부터 3% 내외’는 한 달 뒤 ‘4분기 3% 내외’로, 이달엔 ‘연말 3% 내외’로 거듭 바뀌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8, 9월에 3%대 중후반을 기록한 마당이니 ‘4분기 3% 내외’란 전망을 더는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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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을 웃도는 최근의 물가 상승세는 주로 국제유가 동향에 기인한다.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감산 조치를 연말까지 연장한데다 계절적으로 유류 소비가 늘어나는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는 점 때문에 국제유가는 당분간 쉽사리 내려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제유가 상승은 물가 전반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에너지 공급을 수입에 거의 의존하는 나라라면 영향의 정도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미 사회적 현안이 되어 있는 전기요금부터 영향을 받게 된다. 현재 정부와 한국전력은 전기료 인상 문제를 두고 내부 논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짐작된다. 한전 부채가 200조원을 넘어선 데다 누적적자 규모도 나날이 커지고 있는 게 그 원인이다.

정부·여당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전기료 인상 문제에 신중한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비쳐진다. 하지만 한전 김동철 사장은 한전의 자구노력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전기료 인상 없이는 한전의 재무상황이 정상화될 수 없다는 점을 공공연히 강조하고 있다. 시점을 한 차례 놓쳤지만 정부가 4분기 전기료 인상을 결정할 여지는 열려 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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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물가 상승 압력을 높이는 요인은 또 있다. 이달 7일부터는 수도권 지하철 기본요금이 150원 인상된다. 이달 말부터는 유류세 인하 조치도 종료된다. 이 조치가 종료되면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줄줄이 올라 또 하나의 도미노 물가 인상 계기가 만들어진다.

앞으로도 국내 물가는 국제유가 변화의 영향을 크게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유가가 대외 여건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로서는 최악의 상황을 상정한 가운데 대응책을 만들어야 한다. 요행에 기대거나 낙관적 전망만을 앞세워 소홀히 대응했다간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과도한 고물가는 서민과 중산층의 생활을 팍팍하게 만들면서 국내 소비를 위축시키고, 기업의 생산비를 증가시켜 영업이익을 감소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기업의 이익 감소는 투자 위축으로 이어져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현재 시점에서 물가관리는 정부·여당에 주어진 가장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물가 관리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하는데 우선 집중해야 한다. 곧 종료되는 유류세 인하 조치를 한 차례 더 연장하는 것도 대안 중 하나다. 인하 조치 연장이 세수 부족을 심화시킬 것이란 지적도 있지만 사안의 경중을 따지자면 일단 연말까지 연장 시한을 늘린 뒤 상황을 살펴보는 게 현실적 대안이라 할 수 있다.

마냥 늘어만 가는 기업 및 가계부채를 적정선에서 통제하려는 정책적 노력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상환 능력 이상의 부채 또한 소비 및 설비투자를 위축시킴으로써 우리 경제의 활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계 및 기업의 과다 부채가 갖는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인플레이션이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도 중앙은행으로 하여금 통화정책을 뜻대로 운용할 수 없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지금 한은의 처지가 딱 그 짝이라 할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는 한은 기준금리 인상도 고려해봄직한 대안이다. 한은의 물가안정 목표가 2%인 점을 감안하면 지금의 물가동향은 기준금리 인상을 재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더해 한·미 간 금리차나 최근의 외국인 투자자금 이탈, 원/달러환율 불안 등까지 고려하면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하는 게 더 자연스러울 수 있다.

다만 기준금리 인상은 국내 경기를 위축시킬 수 있는 만큼 신중한 전문가적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라 하겠다. 최우선 과제는 물가관리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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