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채무가 1100조를 넘긴 가운데 올해 나라 살림살이도 대규모 적자로 귀결될 것이 확실해졌다. 예상 적자는 58조2000억원으로 잡혀 있지만 실제 규모는 그보다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재정수지가 좀처럼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 근본원인이다.

정부의 나라 살림살이 결과를 실질적으로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올해에도 최소 60조원 이상의 적자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올해 예산안을 짜면서 전망했던 58조2000억원은 서서히 비현실적 수치가 되어가고 있다. 이는 12일 기획재정부가 재정동향 최신호를 공개하면서 전망치 수렴에 대해 자신감을 내비치지 못한데서 비롯된 판단이다. 정부는 다만 올해 국가채무가 당초 전망치인 1101조7000억원에 수렴해갈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감을 표했다. 추후 국고채 상환으로 채무를 상당 부분 덜어낸다는 계획을 근거로 한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문재인 정부 때 400조가량 늘어나는 바람에 단숨에 900조대로 올라섰고 이제 1000조 시대를 맞게 됐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일부 원인으로 작용한 측면이 있지만, 인기영합적 재정운용이 보다 큰 원인이었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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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 중 다행인 것은 윤석열 정부가 이전 정부의 확장재정 정책을 파기하면서 건전재정을 표방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성화된 대규모 재정적자는 좀체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수년간 지나치게 확대해놓은 지출 규모를 감당해 나가려다 보니 생기는 현상이다.

윤석열 정부는 두 해 연속 짠물 예산을 편성했고, 특히 내년 예산안의 경우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에도 못 미치는 긴축예산(전년 본예산 대비 2.8% 증가)을 짰다. 하지만 덩치가 이미 만만치 않게 커져버린 뒤의 일이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세수부족도 따지고 보면 총지출 규모가 과도히 커진 것에 근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 번 늘어난 나라살림 규모를 줄이려 할 경우엔 저항과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는 이제부터라도 긴축을 더 강화해 살림 적자를 최소화하고 국가채무 증가를 멈추게 하는데 초점을 맞춰 재정을 운용해야 한다. 그게 미래 세대를 위해 재정의 지속성을 보장하면서 유사시 재정의 효율성이 극대화될 수 기반을 다지는 유일한 길이다.

정부의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올해 50%를 넘기고 이후 조금씩 증가해 2027년엔 53.0%로 높아지게 된다.

일각에선 우리의 국가채무가 아직 60%에 못 미친다는 점을 들어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선진국들의 국가채무 비율이 우리보다 높다는 점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심심찮게 들린다.

그러나 유수의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진작부터 우리나라를 향해 국가채무 관리를 주문하고 있다. 지금보다 상황이 더 악화될 경우 국가 신용등급이 하락할 수 있다는 경고와 함께다.

실제로 재정 안전성은 우리나라가 지켜야 마지막 보루다. 우리가 기축통화 발권국이 아니라는 점, 저출산·고령화가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국가라는 점, 대외신인도에 특히 신경을 써야 하는 개방경제 체제를 갖추고 있는 나라라는 점 등등이 그 이유들이다.

국가채무 계산 방식이 서로 달라 국가 간의 단순비교가 쉽지 않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국가재정법을 통해 국가채무의 개념을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중앙정부의 부채만 포함돼 있을 뿐 엄청난 규모의 공기업 부채 등은 포함돼 있지 않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나라의 경우 최대한 보수적으로 국가채무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국가채무 현황에 대한 인식이 아닌가 싶다. 가장 큰 문제는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려 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포퓰리즘 추구에만 혈안이 돼 있는 정치권의 자세다. 안 그래도 문제가 돼온 포퓰리즘은 총선이 다가올수록 더욱 극성을 부릴 것으로 우려된다. 각종 ‘기본 시리즈’가 봇물처럼 터져나오게 되면 아직 국회의 소관 상임위 문턱도 넘지 못한 정부·여당의 재정준칙안은 더욱 채택되기 어려워진다.

여권이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재정준칙안은 국가재정법을 개정해 관리재정수지 적자폭을 GDP의 3% 이내로 관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60%를 초과하면 관리재정수지 적자폭을 2% 이내로 관리한다는 내용도 추가돼 있다.

하지만 거대 야당의 반대에 막혀 진전이 없던 재정준칙 논의는 이제 원안보다 완화된 내용으로 수정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3% 상한을 어겼을 경우 다음해엔 세계잉여금 전액을 국가채무 상환에 쓰도록 한다는 게 논의의 주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내용대로 간다면 재정준칙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임의로 상한 규정을 넘길 수 있도록 허용하는 데다 세계잉여금의 채무상환 효과 또한 크게 기대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도 자칫 유럽의 그리스나 모모한 남미 국가들처럼 경제 파탄 지경에 이를 수 있다. 재정 안정성을 다지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 틀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각성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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