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세계를 휩쓴 고물가 기류가 약화되면서 내년 말이면 주요국들의 물가가 정상 수준에 근접할 것이란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최근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도 경제전문가들과 금융기관의 분석을 토대로 그 같은 전망을 제시했다.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물가 상승률이 중앙은행의 목표치(2%) 부근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 보도의 골자였다.

골드만삭스도 유럽과 일부 신흥국들에서 물가 상승률이 내년 중 2% 수준을 회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3개월간 이들 국가들의 근원물가 상승률이 연 2.2%를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당초 예상보다 물가가 빠르게 안정돼 가고 있을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물가안정 조짐은 한국에서도 예외 없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이 27일 발표한 ‘12월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12월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전달보다 0.2%포인트 하락한 3.2%를 나타냈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기대인플레율은 향후 1년 간 전개될 물가상승률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수준(전망)을 말해주는 개념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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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기대인플레이션율 조사는 매달 전국의 2500개 도시 가구를 대상으로 실시된다.

기대인플레율은 실제로 일어난 현상이 아니라 소비자들의 전망을 정리한 것에 불과하지만 향후의 물가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가가 일정 수준으로 올라갈 것이라는 생각이 일반화되면 소비자들은 그에 걸맞는 행동을 한다는 점이 그 이유다. 예를 들어 물가 상승률이 가팔라질 것이란 예상들이 많아지면 상품이나 서비스 가격을 올리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근로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게 된다.

이날 한은이 집계한 12월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일단 긍정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2월 한은 기대인플레율은 지난해 4월 3.1%를 기록한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한은 기대인플레율은 지난해 7월 4.7%까지 치솟았다가 서서히 하락하는 흐름을 보여주었다.

하락세는 분명해보였으나 그 속도는 답답하리만큼 느렸다. 올해 4월 3.7%로 내려선 한은 기대인플레율은 5월과 6월 각각 3.5%, 7~9월 각각 3.3%, 10월과 11월 각각 3.4%를 나타냈었다. 그러다 12월 들어서는 그 수치가 전달보다 0.2%포인트 떨어졌다.

기대인플레율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한국은행은 국제유가 안정세를 지목했다. 한은의 황희진 통계조사팀장은 브리핑에서 “국제유가 하락으로 석유류값 하락폭이 커지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둔화된 점이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농산물과 가공식품, 외식물가 등이 여전히 높은 수준에 있고 공공요금 인상도 잠재 변수로 남아 있음을 지적하면서 지금의 흐름이 지속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국내 소비자물가가 내년 말이면 2% 언저리에 도달할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한은이 지난 20일 발표한 ‘물가안정 목표 운영상황 점검’에 따르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2월엔 전달(3.3%)과 비슷하거나 소폭 낮아지고, 이후 추세적 둔화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그 결과 내년 상·하반기엔 3.0%와 2.3% 상승률을 기록한 다음 2025년 상반기엔 2.1%로 내려간다는 게 한은의 물가상승률 전망이었다.

한은은 물가가 추세적으로 안정된 흐름을 회복해 갈 것이라고 내다보면서도 여전히 조심성을 드러냈다. 이창용 총재는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하려는 듯 “라스트 마일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언제든 잠재변수가 돌출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다시 치솟거나 장기간 횡보하는 현상이 재연될 가능성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 들어서도 국내 소비자물가는 6~7월에 2%대로 내려갔다가 8월부터 4개월 연속 3%대를 나타낸 바 있다. 9월에 3.9%까지 올라갔던 물가 상승률은 10월 3.8%, 11월 3.3%의 추이를 보여주며 다시 안정화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한은은 이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3% 이하를 나타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물가상승률 하락은 가계의 구매력을 늘리는 한편 중앙은행 기준금리 인하를 자극할 것이란 기대를 낳는다. 한국은행 또한 소비자물가가 안정을 되찾으면 기준금리 인하를 적극 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미국 경제가 지표상 강한 모습을 이어가고 있는 점이 변수로 작용할지 모른다는 시각도 있다. 미국 경제의 강한 흐름은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을 늦추는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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