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정부의 주택정책에 획기적 변화가 일게 됐다. 아파트 재건축 판단 기준이 안전도가 아니라 ‘주거의 질’로 바뀌고, 재개발 기준인 노후도(낡고 오래된 정도) 요건도 완화된다. 이와 함께 엄격히 적용돼오던 1가구 1주택 원칙도 전보다 완화된다.

변화 시도는 부동산 문제를 바라보는 현 정부의 색다른 시각에서 비롯됐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을 이념적 차원에서 다루려 했던 것과 달리, 윤석열 정부는 철저히 시장의 관점에서 부동산을 바라보려 하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에 대한 시각차는 문제 해결 방식의 차이로 이어졌다. 이전 정부가 규제를 통해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꾀하려 한 반면, 현 정부는 시장원리에 입각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방법론상의 차이에 주목해 설명하자면 전 정부는 수요 억제에, 현 정부는 공급 확대에 초점을 맞추어 부동산 정책을 펼쳤거나 펼치려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부동산에 대한 관점의 차이를 대변해주는 것 중 하나가 다주택자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문재인 정부는 다주택자를 죄인시해 징벌적 과세를 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부동산 정책을 펼쳤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부동산 소유와 처분이 재산권 행사의 일환으로 자유롭게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에서 정책을 운용하려 하고 있다.

윤 정부의 차별화된 인식과 철학을 집대성한 것이 10일 발표된 주택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이다. 이 방안은 이날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를 통해 발표됐다.

‘국민이 바라는 주택’을 주제로 진행된 이 행사에 앞서 윤 대통령은 고양시 일산의 최고령 아파트 단지인 백송마을을 방문해 1기 신도시의 주거 환경을 살펴보았다.

그 영향인 듯 윤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재개발·재건축 규제를 확 풀어버리겠다”며 “30년 이상된 노후 주택은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에 착수할 수 있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관련 규제를 완화해 임기 내에 분당·일산 등 1기 신도시 재건축 착공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약속도 내놓았다. 동시에 다주택자 중과세 철폐를 약속해 눈길을 끌었다.

윤 대통령은 이전 정부가 다주택자를 부도덕한 사람으로 여겨 징벌적 과세를 한 것이 잘못됐다고 지적하면서 “그 피해는 결국 서민이 입는다”고 강조했다. 중과세가 임대료 인상으로 이어져 종국엔 서민들이 그 부담을 떠안는 불합리한 결과가 초래된다는 의미였다.

[이미지 = 국토교통부 제공]
[이미지 = 국토교통부 제공]

재개발 규제 완화가 공급 확대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과거엔 집값이 오른다고 재개발을 막았는데 그렇게 되니까 공급이 부족해 집값이 더 오르는 모순된 현상이 벌어졌다”고 강조했다. 그 결과 출퇴근 거리와 시간이 늘어나고 노후화된 집에서 살아야 하는 등 행복과는 거리가 먼 현실이 나타나게 됐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또 “부동산 문제를 시장이란 관점에서, 자유로운 재산권의 행사 측면에서 정치와 이념에서 해방하고 경제 원리에 따라 시장원리에 따라 작동되게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이 발언들은 이날 정부가 발표한 주택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의 정책철학을 응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방안 내용 중 가장 크게 눈길을 끄는 것은 재건축 규제완화라 할 수 있다.

방안에 따르면 우선 30년이 넘은 아파트라면 안전진단 없이도 재건축 추진 절차에 돌입할 수 있게 된다. ‘재건축 패스트트랙’으로 인해 재건축 기간이 5~6년까지도 단축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신속통합기획을 적용하는 서울 내 단지가 그 정도이고, 기타의 경우 3년가량 기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이란 의미다.

지금까지는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하면 재건축 추진을 못 하거나 리모델링으로 사업 방향을 전환해야 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안전진단 없이도 정비계획 수립과 재건축추진위원회 구성, 조합 설립 등의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안전진단은 재건축 사업의 거의 마지막 단계인 사업인가 전까지만 통과하면 된다.

안전진단 통과 요건도 크게 완화된다. 붕괴 위험 등 안전상 문제가 없더라도 주차난이나 층간소음, 노후 배관 문제 등이 발생한 곳이라면 주거환경에 대한 평가를 통해 재건축을 할 수 있다. 사실상 안전진단이 폐지되고 ‘생활환경 진단’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는 셈이다. 진현환 국토교통부 차관은 “안전진단 기준이 노후도와 생활불편 중심으로 바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국회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재건축 절차를 조정하려면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도정법) 개정이 필수적이다.

재개발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핵심은 노후도 요건(준공 후 30년 이상 된 건축물의 비율)이 기존 3분의 2(66.67%)에서 60%로 완화된다. 재정비촉진지역이라면 그 비율은 50%로 더 낮아진다. 유휴지와 자투리 부지도 재개발 구역에 포함시킬 수 있도록 함으로써 재개발 가능 대상지를 10%가량 늘리는 방안도 마련됐다.

재정 지원도 병행된다. 재건축·재개발조합 설립 때 공공성 확보 등을 심사해 정부 기금에서 초기사업비를 구역당 50억원까지 융자해준다. 1기 신도시에 대해서는 올해 안에 재건축을 먼저 추진할 만한 곳을 지정하는 작업에 곧 착수한다. 사업 속도를 높여 현 정부 임기 내에 착공에 들어가고 2030년에 입주를 시작하도록 독려하기 위함이다.

국토부는 재개발·재건축 제도 개선을 통해 향후 4년간 전국에서 95만 가구가 정비사업에 착수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빌라와 오피스텔 등에 대한 수요를 진작시키기 위해 올해와 내년 2년 동안 준공되는 60㎡ 이하 신축주택은 취득세·양도세·종합부동산세 산정 때 주택 수에 포함시키지 않기로 했다. 대상은 수도권 6억, 지방은 3억원 이하의 아파트를 제외한 주택이다. 다만, 1가구 1주택자가 이들 주택을 추가 매입하면 양도세와 종부세 1주택 특례는 적용받지 못한다.

지방의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을 구입할 경우에도 세제상 목적으로 주택을 산정할 때 보유 주택 수에서 제외한다. 85㎡, 6억원 이하 주택이 대상이다.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을 구입할 경우엔 1가구 1주택자가 구입할 때도 양도세·종부세 특례를 적용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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