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경영권 승계 의혹과 관련한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 기소 후 3년 5개월 만에 나온 판결이었다. 판결의 골자는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이뤄진 것은 맞지만 그 과정에서 불법은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 회장은 이른바 ‘삼바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서도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분식회계의 고의가 없었다는 것이 무죄 판단의 이유였다.

이로써 이 회장은 사법리스크에서 완전히 해방될 가능성을 열 수 있게 됐다. 다만 아직 1심만이 끝난 상태이므로 최종심이 끝날 때까지는 불안감을 털어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당장의 중요한 포인트는 검찰이 오는 13일 시한까지 항소를 단행할지 여부다.

이번 재판에서도 특히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제일모직-삼성물산의 합병을 재판부가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점이었다. 앞서 대법원은 양사 합병이 경영권 승계작업의 일환으로 이뤄졌다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이는 합병이 기업 발전을 위한 지배구조 개선만을 목적으로 행해지지는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를 안고 있는 것이어서 이 회장 측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2019년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최서원(이전 이름 최순실)씨 국정농단 사건 재판을 통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사이의 합병 등은 승계작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현안”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그 같은 판단은 이듬해에 검찰이 이재용 회장과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국정농단 사건 이후 해체됨) 관계자들을 부당합병 등의 혐의로 기소하는 근거가 됐다.

혐의 내용은 이 회장 등이 2015년 있었던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방법으로 경영권을 승계하고, 지배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각종 불법을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미전실이 행한 부정 거래와 시세 조종, 회계 부정 등에 이 회장도 관여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었다.

합병과 관련한 혐의 중 핵심은 지주회사 격인 삼성물산의 지분을 이 회장이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미전실이 임의로 제일모직의 주가는 올리고 삼성물산 주가는 낮추는 작업을 했다는 것이었다. 즉 이 회장이 최소비용으로 삼성물산 지분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도록 부정한 행위를 했다는 게 기소 요지였다.

하지만 지난 5일 열린 해당 사건 재판에서는 ‘합병 과정에 경영권 승계작업이 있었으나 불법은 없었다’는 취지의 결정이 내려졌다. 결정을 내린 곳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2부(박정제·지귀연·박정길 부장판사)였다. 재판부는 이번 결정을 알리면서 “대법원 판결 취지에 반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당시 대법원이 합병 과정에서 경영권 승계작업이 있었음을 인정하면서도 과정의 불법성 여부는 따져보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우선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와 시세 조종,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 대해 “공소사실 모두 범죄의 증명이 없다”며 무죄 결정을 내렸다. 최지성 전 미전실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 나머지 피고인들에게도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양사 합병 과정에서 미전실 임직원이 미리 계획을 검토하고 추진했다는 것과 양사의 관련 태스크포스(TF)가 긴밀히 협의한 사실 등은 인정했다. 이를 통해 이전의 대법원 결정을 수용한다는 뜻을 밝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재판부는 당시 대법원이 이 회장의 지배권 강화 과정이 위법했다거나 합병 과정에서 주주들의 손해가 발생했다는 등의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또한 이번 판결이 대법원의 이전 결정과 상충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덧붙여진 설명이었다.

그 같은 전제에서 재판부는 두 회사 합병시 적용한 비율이 불공정했다거나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회장에게 검찰이 적용한 업무상 배임 혐의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주주에게 돌아갈 이익을 이 회장이 가로챘다는 증거가 없으니 업무상 배임도 없다는 논리였다.

검찰이 약탈적 불법 합병계획의 증거로 제시한 ‘프로젝트-G’와 ‘M사 합병(안)’ 등의 회사 내부 문건도 불법행위의 증거 자료가 될 수 없다고 결론지어졌다. 이들 문건이 실무 차원에서 작성할 수 있는 기업들의 일반적 보고서 수준에 불과하다고 본 것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2018년 증권선물위원회의 고발 이후 검찰 수사와 기소로 이어진 삼바 분식회계 의혹 사안과 관련해 분식회계의 고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번 일로 이재용 회장은 사법 리스크를 털어내고 경영에만 전념할 기회를 바라볼 수 있게 됐다. KB증권은 1심 판결이 나온 지 하루 뒤인 6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국정농단 사건 이후 지속된 이 회장 사법 리스크가 완화 구간에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아직 사법부의 최종 판단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1심 재판이 무죄로 끝남에 따라 이 회장이 적극적으로 경영행보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본 것이다. 보고서는 삼성이 향후 주주환원 정책 강화나 인수합병, 신규투자 확대 등과 관련해 신속한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라 분석했다. 보고서는 또 이번 판결이 삼성의 기업가치를 높이는데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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