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일본의 경제규모가 국가별 순위에서 4위로 밀려났다. 미국 다음의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수십년 동안 위세를 떨쳤던 일본이 중국에 이어 독일에도 추월당하는 상황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15일 일본 내각부가 지난해 일본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591조4820억엔이라고 발표함으로써 드러났다. 이날 일본이 발표한 작년 명목GDP를 미화로 환산하면 4조5000억 달러가 된다. 달러 기준 독일의 지난해 명목GDP보다 3000억 달러 정도 적다.

일본의 경제규모가 독일에 밀리기는 55년 만에 처음이다. 일본·독일의 순위 바뀜은 지난해 독일내 물가가 러-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일본보다 더 많이 오른 것과 관련이 있다. 지난해 독일 내 물가는 에너지 가격 급등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도쿄 도심의 빌딩숲. [연합뉴스 자료사진]
일본 도쿄 도심의 빌딩숲.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 나라의 경제규모를 가늠하는 기준인 명목GDP에는 물가 변동이 그대로 반영된다. 물가가 오르면 명목매출이 오르고 그렇게 오른 명목매출을 기준으로 작성된 것이 명목GDP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일본은 인구수(약 1억2500만명)에서 독일(8300만명)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단위 GDP 규모가 뒤진다는 것은 1인당 GDP 순위에서는 독일에 더 크게 밀리고 있음을 말해준다.

일본은 한동안 국제사회에서 ‘이코노믹 애니멀’이란 별명을 들을 만큼 지독스레 국부를 축적하며 경제 발전에 매진해온 나라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경제적 성장을 멈춘 채 ‘잃어버린’ 세월들을 보내더니 마침내 ‘빅4’에 만족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4위 자리가 안정적인 것도 아니다.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조만간 인도에도 추월을 허용해 세계경제 순위가 한 계단 더 밀릴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일본의 전철을 밟듯 고령화·저성장의 늪에 빠져들고 있는 우리에게 최근의 세계 경제순위 변화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패전 이후 공업기술 개발에 힘써 빠르게 제조업 강국이 된 일본은 특히 반도체 분야에서 강세를 보이며 1968년에 서독(당시 국명)을 제치고 미국과 함께 2대 경제대국의 지위를 확보했다. 하지만 일본 경제는 19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활력을 잃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잃어버린 20년’ 혹은 ‘잃어버린 30년’이었다.

일본 경제의 쇠락을 말할 때 흔히 거론되는 원인은 인구 고령화와 혁신 실패였다. 1980년대 후반 미·일반도체협정 체결 이후 세계 최강으로 평가됐던 일본 반도체 산업이 미국이 강요한 각종 제약 탓에 내리막길을 걷게 된 것도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

일본 경제의 그 같은 행로는 지금 우리나라의 모습을 비치는 거울처럼 여겨지는 측면이 있다. 심각한 저출산·고령화 현상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산업의 주력인 반도체 제조업이 미국의 압력 하에 위기 국면을 맞고 있는 것부터가 과거의 일본을 닮아 있다.

장기간 성장을 멈추다시피 한 일본 경제는 2010년에 이르러서는 신흥공업국 중국에 2위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일본 경제는 이후에도 더딘 성장을 이어가는 바람에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과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더니 결국 독일에마저 추월을 허용하며 세계 GDP 순위에서 4위로 밀려나게 된 것이다.

일본의 순위 하락은 조만간 또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 시점으로는 2026년이 주로 거론된다. 지난해 10월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연례 ‘세계경제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의 GDP는 2024년에 4조2862억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보고서가 전망한 올해 인도(5위 유지)의 GDP 규모는 4조1054억 달러다.

한국은 올해 1조7848달러의 GDP를 기록하면서 작년에 이어 세계 순위 13위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한국은 지난해 성장률 면에서 일본에도 뒤지는 모습을 연출했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작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1.4%였다. 이날 일본 내각부가 발표한 일본의 작년 실질GDP 성장률(속보치) 1.9%보다 0.4%포인트나 낮은 수준이다.

일본의 경제전문 니혼게이자이 분석에 의하면 지난해 한국의 성장 부진 배경에는 반도체 불황 같은 일회성 요소 외에 사회 구조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저출산·고령화와 구조개혁 성과 부진 등의 문제를 지적한 것으로 보이는 분석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올해엔 한국이 성장률 면에서 일본을 다시 앞설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IMF가 최근 제시한 올해의 두 나라 경제성장률은 한국 2.3%, 일본 0.9%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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