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정부가 부담금 전반에 대대적인 손질을 가하기로 했다. 법정 부담금 부과제도가 시행된 이래 20여년이 지나면서 그 종류가 다양해져 국민 부담이 가중됐고, 일부는 효용성이 떨어진 것도 있다는 게 정비에 나서기로 한 이유다.

부담금은 각종 공익사업 등을 추진하기 위해 행정기관장이나 행정 권한을 위임받는 공공단체 또는 법인의 장이 국민들에게 부과하는 돈을 의미한다. 세법에 명시된 세금은 아니지만 국민들에게는 사실상 조세처럼 인식돼 있다 해서 ‘준조세’, ‘그림자 조세’ 등으로 불린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분담금, 부과금, 기여금 등등이 모두 법정 부담금에 해당한다. 종류가 다양하다 보니 명칭도 제각각이 되어버렸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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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부담금은 저마다 법적 근거를 바탕으로 부과된다. 기본적으로는 2002년부터 시행된 ‘부담금관리 기본법’을 근간으로 삼고 있고, 기타 ‘수도권정비계획법’·‘농지법’·‘도시교통정비촉진법’·‘하수도법’ 등등의 법률에 제각각 기반을 두고 있다. 각종 부담금이 임의의 개념이 아니라 이른 바 법정 부과금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의미다.

우리가 평소 의식하지 못하지만 흔히 내고 있는 부담금만 꼽아 봐도 그 종류가 상당수에 이른다. 예를 들어 영화를 보기 위해 티켓을 사는 순간 우리는 관람료의 3%(약 500원)를 부담금으로 지출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부담금이 포함된 금액을 관람료라는 이름으로만 인식하고 있다.

국제선 항공요금에도 부담금이 포함돼 있다. 이름하여 출국납부금이 그것이다. 금액은 1만1000원이다. 2세 이상 탑승자라면 예외 없이 항공티켓을 구입하는 순간 해당금액을 지불하게 된다. 전기요금에도 부담금이 붙는다. 요율은 3.7%다.

법정 부담금은 개인에게만 부과되는 게 아니다. 법인들도 각종 부담금을 내야 하는데 그 중 하나가 아파트 등을 분양하는 사업자가 내야 하는 학교용지부담금이다. 이 부담금이 분양가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0.8%(공동주택의 경우)에 이른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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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도 각종 건축물을 지을 땐 개발부담금, 교통유발부담금 등등의 부담금이 줄줄이 부과된다. 아파트 재건축을 할 때 내야 하는 것으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금 등도 부담금의 일종이다.

부담금은 관련법 시행 이후 시일이 흐르면서 하나 둘 늘어난 결과 현재 그 수가 91개를 헤아리게 됐다. 그러다 보니 기업이나 개인들로부터 사실상 증세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심심찮게 나온다.

이에 정부는 지난 27일 열린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민생회의를 통해 ‘부담금 정비 및 관리체계 강화 방안’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주된 내용은 부담금 수를 91개에서 69개로 줄이고 일부 부담금의 경우 부과액을 줄인다는 것이었다. 부담금 정비로 줄어드는 부담금 수입 규모는 연간 2조원에 이를 것으로 정부는 전망했다. 전체 수입(9조6000억원)의 20% 정도에 해당한다.

정부는 부담금관리기본법도 개정해 부담금의 존속 기한이 만료되더라도 ‘예외 조항’을 앞세워 줄줄이 효력이 연장되는 관행을 차단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모든 부담금에 예외 없이 10년 이내 기한을 설정하기로 했다. 부담금 신설 문턱은 높이기로 했다. 신설되는 부담금에 대해서는 ‘타당성평가’를 도입하고, 동시에 부담금분쟁조정위원회를 신설해 관련 분쟁을 심사·조정토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이번 방침에 재계는 환영의 뜻을 표했다. 대한상공회의소(상의)는 방침이 발표된 당일 “법정부담금은 국민에게 필요 이상의 부담을 지워 경제 활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전제한 뒤 “이번 개편안이 국회를 차질 없이 통과하면 국민과 기업은 불합리한 준조세 부담을 덜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상의는 이어 앞으로도 시대 변화를 반영해 부담금 제도를 수시로 손질해줄 것을 당부했다.

한국주택협회와 대한주택건설협회 등도 개발부담금 한시적 감면 및 학교용지부담금 폐지로 민간 주택공급을 저해하는 요인이 상당 부분 개선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부담금 중에선 시대 변화에 의해 당초의 도입 목적이 무색해진 것들이 있는 게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학교용지부담금 폐지 방침 등은 나름 합리성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학령인구가 감소하는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채 현재의 부담금 부과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건 부작용만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담금의 대대적 폐기 또는 감면이 ‘부담금은 나쁜 것’이란 인식을 심어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게 제기된다. 그들의 지적대로 다수의 법정 부담금은 여전히 공익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부담금의 대대적 폐지 및 감면은 그 빈자리를 정부 재정이나 추가되는 조세로 메워야 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쓰인다는 측면에서 부담금은 일정 부분 조세의 기능을 해온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는 부담금 구조조정이 ‘국민 부담 경감’이란 차원에서만 진행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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