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총선이 목전에 이르자 여야의 포퓰리즘 경쟁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야당이 노골적인 현금 살포 제안을 내놓자 여당은 질세라 부가가치세 인하 카드를 내밀었다. 여야가 그간 재정 투입과 관련한 선거 공약을 경쟁적으로 쏟아내온 것을 생각하면 양측 간 포퓰리즘 경쟁이 더욱 노골화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모습들이다.

특히 비판받아야 하는 쪽은 여당인 국민의힘이다. 여당은 그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포퓰리즘을 강도 높게 비판해왔다. 이 대표는 기초단체장 시절부터 이미 포퓰리스트로 명성을 떨쳐온 정치인이다. 그는 포퓰리즘을 정치적 성장의 기반으로 삼으며 승승장구해왔다. 그가 내세운 각종 ‘기본 시리즈’가 그의 정치적 성장과정이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 같은 행적에 대한 국민적 평가가 구체화된 것이 지난 대통령선거였다. 비록 간발의 차이로 승패가 갈리긴 했지만 우리 국민들은 경제정책 측면에서 볼 때 보수 정당의 건전재정 운용 방침에 더 많은 성원을 보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방만한 재정운용으로 집권 기간 중에만 나랏빚이 400조원가량 늘어난 점도 보수 정당의 건전재정 옹호론에 힘을 실어주는 요인이 됐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여당은 건전재정 기조 하에 이재명 대표의 선심성 제안들에 비판을 가해왔다. 얼마 전 이 대표가 1인당 25만원, 4인 가족 기준 100만원씩을 민생회복 지원금 명목으로 지급하자고 제안하자 국민의힘은 “현금 살포 포퓰리즘”이라고 즉각 반격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돈을 풀면 물가가 오른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현금 살포를 무책임한 대책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한동훈 위원장은 그 말을 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 이재명 대표에 버금가는 선심성 대책을 유권자들 앞에 내밀었다. 골자는 생필품 구매시 붙는 부가가치세를 한시적으로 절반만 걷자는 것이었다.

한 위원장은 22대 총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 28일 서울 지역 가두연설을 통해 “서민생활과 밀접한 품목에 대해 부가세를 10%에서 5%로 인하할 것을 정부에 강하게 요구했다”고 소개했다. 구체적인 부가세 인하 대상 품목을 열거하기도 했다. 출산육아용품, 라면, 즉석밥, 통조림 등 가공식품, 설탕, 밀가루 등이 그것이었다.

필요하다면 법 개정도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부가세 세율이 부가세법에 10%로 고정돼 있는 점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부가세율을 특정 품목에 한해 인하하려면 조세제한특례법도 동시에 손질해야 하는데, 이 문제 역시 법 개정을 통해 해소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셈이다.

대통령실도 즉각 검토할 뜻을 밝혔다. 전후 맥락으로 보아 양측 간 사전 조율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선거가 임박해오면서 여당의 세불리가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감지되자 여당과 대통령실이 부가세 인하 카드 사용에 의견을 같이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는 말이다.

백번 양보해 직접 선거전에 임한 여당이야 다급한 나머지 그런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고 치다. 그렇다 할지라도 대통령실의 즉각 호응만은 이해하기 어렵다. 대통령실의 호응은 정국 구도와 무관하게 정권 차원에서 이미 국민들에게 약속한 건전재정 이행 약속을 저버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출범 이후 각종 감세정책을 펼쳐왔고, 그 같은 정책의 후유증과 경기 부진이 겹치면서 세수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에 세수 추계치보다 덜 걷힌 국세만 60조원가량이었다. 정부는 낙관론을 펼치고 있지만 경기 동향이 긍정적이지 못한 점을 감안하면 올해에도 세수 부족이 나타날 가능성은 열려 있는 것으로 우려된다.

이런 와중에 생필품 부가세 한시 인하 조치가 취해지면 올해 세수 부족은 또 다시 기정사실화될 가능성이 커진다. 아직 기획재정부의 세밀한 검토가 이뤄지진 않았지만 부가세 인하 대책이 실행된다면 최소한 조 단위의 세수 감소가 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국세청 집계의 의하면, 부가세 세수가 우리 국세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 22.0%였다.

현금을 살포하는 일이나 낼 돈을 덜 내게 하는 일 모두 본질적으로는 포퓰리즘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돈 준다는데, 받을 돈 덜 받는다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을 테니 분명 표를 얻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생각이 미치면 그게 얼마나 무책임한 망국적 발상인지를 금세 짐작하게 된다. 방법은 두 가지다. 어딘가에 쓰려 했던 돈을 빼오거나 적자국채를 발행해 부족해진 재원을 메우는 것이 그 둘이다. 유권자들도 그런 이치를 꿰뚫고 있다.

포퓰리즘 대책이나 공약은 우리의 유권자 수준을 고려할 때 그리 현명한 득표 수단이 될 수 없다. 이 점을 정치권만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포퓰리즘 남용이 오히려 해가 된다는 점을 유권자들이 이번 총선에서 표로 입증해주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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