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광복절 가석방 결정을 두고 정치권에서 여진이 지속되고 있다. 예상했던 대로 일부 여당 정치인들은 이번 조치가 대기업 오너에 대한 부당한 특혜라는 입장을 내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대권 주자로 나선 박용진 의원 같은 이는 “문재인 정부에서 재벌 총수에게 특혜 조치가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하며 “부끄럽다”고 말했다. 가석방 결정 하루 뒤인 10일 YTN 라디오에 출연해 한 발언이었다. 박 의원의 이 발언엔 이 부회장 가석방이 문재인 정부의 정체성에 맞지 않는다는 취지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친문 강경파이자 문재인 당 대표 시절 호위무사로 불리곤 했던 민주당 정청래 의원도 페이스북을 통해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심히 유감”이라며 “(이번 가석방은) 특혜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정권에 대한 직접 비판을 자제하면서 가석방 조치 주무 당국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자 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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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내부에서 청년층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동학 최고위원도 비판에 가세했다.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한탄이 또렷해졌다”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법무부의 가석방 결정 직전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미리 밝혔다. 논쟁적인 이 사안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을 피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이번 결정을 두고는 법무부가 청와대를 대신해 총대를 맸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여당 내부는 물론 정권 지지기반인 시민단체 등에서 진작부터 이 부회장 가석방이나 사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던 터라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부담스러웠을 것이란 얘기다. 이로 인해 청와대가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며 사면을 감행하는 대신 법무부가 가석방이란 수단으로 그에 준하는 효과를 내려 했던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청와대도 그동안 이 부회장을 풀어주는데 대해 적극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경제단체들이 이 부회장에 대한 사면을 건의했을 때나, 4대 그룹 총수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면전에서 이 문제를 거론했을 때도 청와대는 즉답을 하지 않았었다. 그러면서도 비교적 긍정적 분위기를 내비쳤다. 지난 6월 초 있었던 청와대 오찬 때 4대 재벌 총수들이 이 부회장 사면을 건의하자 문 대통령은 “국민들도 공감하는 분이 많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의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는 반도체 사업을 둘러싸고 세계적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거론하면서 “국민 의견을 들어 판단하겠다”라고 말했다.

결국 청와대는 그간 국민 여론과 지지층의 반발 움직임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이 부회장 사면 문제를 고민해왔고, 마침내 법무부를 앞세워 가석방하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여론은 이 부회장 가석방을 지지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달 26~28일 1003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부회장 가석방에 대한 찬성 의견은 70%(반대 22%)에 달했다.

이 일로 현 정부에서의 이 부회장 사면은 물건너간 것으로 분석된다. 그렇다면 그 공은 다음 정권으로 넘어갔다고 할 수 있다. 문 대통령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지금보다 늦은 시점에 새삼스레 정치적 부담을 짊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게 합리적 추론이기 때문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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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석방과 별개로 이 부회장 사면은 앞으로도 사회적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가석방만으로는 이 부회장의 자유로운 경영 활동을 완전히 보장해줄 수 없다는 게 그 이유다. 이 부회장은 가석방에도 불구하고 취업제한 조치 등을 감수해야 한다. 해외 출장시 상대국으로부터 일일이 입국허가도 따로 받아내야 한다. 사면복권이 죄를 완전히 면해주고 모든 권리를 회복해주는 것과 달리 가석방은 죄를 면제받지 못한 채 단지 영외에서 나머지 형기를 채운다는 개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취업제한 문제만으로도 이 회장은 삼성전자에 정식으로 복귀할 수 없게 된다. 등기이사로 직접적인 경영 활동을 할 수 없다는 의미다. 다만, 지금처럼 비등기이사로 보수 없이 부회장직을 수행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란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이 부회장이 취업제한의 족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법무부의 별도 승인이 필요하다.

현행법상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범죄와 관련 있는 기업체에 형 집행 종료 후 5년 동안, 집행유예 기간 종료 후 2년 동안 취업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은 지난 2월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징역 2년6개월을 확정선고받은 뒤 법무부로부터 취업제한 통보를 받았다.

그나마 이 부회장의 가석방 상태가 온전히 유지될 수 있을지를 두고도 한때 논란이 일었다. 이 부회장이 현재 프로포폴 투약 혐의와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분식회계 혐의로 각각 재판을 받고 있다는 점이 그 배경이었다. 남은 재판에서 금고 이상의 형(또는 집행유예)을 받을 경우 가석방이 취소된다는 주장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논란은 가석방 취소 요건이 최근 ‘가석방 기간 중 지은 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는 경우’로 바뀜에 따라 더 이상 의미를 갖기 어렵게 됐다.

한편 법무부 가석방심사위원회는 지난 9일 비공개회의를 열고 이재용 부회장 등에 대한 가석방을 결의했다. 이후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위원회 결정을 승인함에 따라 이 부회장은 광복절을 이틀 앞둔 오는 13일 감옥에서 풀려나게 된다. 이 부회장은 지난 1월 최순실씨가 주축이 된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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