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경 하나

“비록 시술과 치료 과정서 의사 처방에 따랐다고 하지만 깊이 반성하고 있다. … 당시 선친의 와병과 엘리엇 사태, 국정농단 수사와 재판 등으로 삼성 임직원들이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모든 어려움이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라는 자책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시기였다는 점을 고려해 달라.”

1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 11단독(장영채 판사) 심리로 진행된 1심 재판에서 프로포폴 불법 투약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 변호인의 말이다. 이 부회장 측은 검찰이 제기한 혐의를 모두 인정했고 결국 벌금 7000만원과 추징금 1700여만원이 구형됐다.

이재용 부회장. [사진 = 연합뉴스]
이재용 부회장. [사진 = 연합뉴스]

# 광경 둘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지난 7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조세도피처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사실이 취재 결과 확인됐다고 보도해 충격을 던졌다. 보도에 따르면 설립 시기는 2008년 3~5월이다. 그 시기는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비자금 의혹을 폭로해 촉발된 특검 수사와 그 후폭풍이 일고 있던 시기와 중첩된다.

지난 7일과 12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과 관련된 불미스런 뉴스가 쏟아졌다. 프로포폴 혐의의 경우 시종일관 “불법 투약은 없었다”고 했던 기존 입장을 뒤집은 것이어서 그 말을 굳게 믿었던 이들에겐 실망과 충격으로 다가올 법했다. 해외 비자금의 경우도 매한가지다. 삼성그룹 총수가 조세도피처에 유령회사를 설립한 사실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까닭이다.

두 사건에 연루된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대중들의 시선은 복합적이다.

“연예인은 대마 한대 피우면 죽일 놈이지만 재벌은 아닌가 봐.”(dlat****), “벌금형? 무슨 의미가 있나? 돈으로 때우는 것은 식은 죽 먹기 아닌가?”(oran****) 등 공정과 정의 그리고 재벌 특혜를 지적하는 부정적인 의견도 다수이지만 “이해가 간다. 잠이라도 자야 하니깐. 스트레스와 책임감이 엄청났을 거다. 이해간다.”(junh****), “그만해라 뉴스 타파.”(ces4****) 등 이재용 부회장의 처지를 이해한다면서 적극 옹호하는 의견도 없지 않다.

# 광경 셋

“‘역사적으로 당한 경험이 많은’ 국민들이 세계 1위를 더 많이 하라고 삼성을 밀어줘야 한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고, 삼성 성장사(史)는 압축성장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코리안 드림'의 슬로건이 됐으며 이미 상식이 돼버린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원칙을 이재용에게만 적용하지 않는다는 건 불공정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가 얼마 전 'THE 인물과 사상 02'(인물과 사상사)의 ‘왜 국민의 3분의 2는 이재용 사면을 원했을까?’라는 글에서 분석한 내용이다. 이 같은 현상은 "한국인의 마음속에서 이미 포지셔닝을 마친 삼성의 위상"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인들의 마음속에서 이미 포지셔닝을 마친 삼성의 위상, 그게 더 무서운 권력”이라고 짚었다.

비단 이뿐일까? 여기에 숟가락을 하나 더 얹는다면 이재용 부회장 개인에 대한 측은지심과 사면되면 횡보장에 갇혀 있던 삼성전자 상승세를 기대했음직한 동학개미들도 힘을 보탰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 삼성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도움을 받기 위해 뇌물 제공 혐의로 2017년 실형 선고받고 구속. 그리고 약 1년 만에 집행유예 석방. 지난 1월 파기환송심에서 다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재구속. 207일간의 복역 끝에 지난 8월 가석방.
- 14일 삼성물산·제일모직 간 부당합병 의혹 18차 공판.

지난달 30일 부당합병 의혹 17차 공판을 치르며 개인 누적 100회째 재판을 마친 이재용 부회장. 적잖은 국민들은 이 부회장이 경영 참여 후 부친 그늘에 가려, 그리고 그룹의 정해진 승계 구도에 따르다가 사법 리스트에 발목 잡혔다고 본다. 특히 잇단 구속 등으로 자신만의 가치와 역량을 발휘하기에는 시간이 태부족했다고 너그럽게 봐주는 시각도 엄연히 존재한다.

“기술과 제품은 일류라는 찬사를 듣고 있지만 삼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따갑습니다. 이제는 … 편법에 기대거나 윤리적으로 지탄받는 일도 하지 않겠습니다. 오로지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만 집중하겠습니다. 대한민국 국격에 어울리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습니다.”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해 5월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서 밝힌 다짐이다.

새로운 삼성!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큰 시련을 겪은 삼성이 새로운 기업으로 재탄생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다. 이재용의 삼성은 과거 이병철의 삼성과 이건희의 삼성과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높이기도 했다. 세계 11위 기업이자 국내 재계서열 1위 삼성그룹 3세 오너 이재용 부회장의 말은 그래서 나름 국민들에게 달콤하면서도 매력적으로 전해졌다.

# 광경 넷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이재용 부회장은 강남 성형외과 등에서 2015년 1월~2020년 5월 41회에 걸쳐 프로포폴을 불법 투약했다. 이 부회장은 12일 법정에서 불법 투약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1년 8개월 전 삼성전자 측의 “불법 투약 사실이 전혀 없다. 악의적인 허위보도에 책임을 묻겠다”던 강경한 대응방침을 떠올리면 실로 반전이 아닐 수 없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이재용 부회장이 이와 같은 법적 불확실성 하에 삼성그룹을 이끌어갈 수 있을지 경영자로서의 자질을 우려하는 시선도 재계에서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러시아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가 50대에 쓴 단편을 모은 책이다. 그는 여기서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사랑’이고, 그 사랑은 이웃에 대한 실천적인 돌봄 가운데 구체적으로 실현돼야 하며, 그 안에 참 신앙과 구원이 있다고 설파한다.

[이미지 = 연합뉴스]
[이미지 = 연합뉴스]

그렇다면 1968년 6월23일 생 우리 나이로 54세인 이재용 부회장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는 1998년 대상그룹 임창욱 명예회장 장녀인 임세령 현 대상홀딩스 부회장과 결혼했으나 2009년에 합의 이혼해 현재는 슬하에 두 자녀를 둔 싱글파파다. 삼성전자에 1991년 12월 총무그룹 부장으로 입사해 경영수업을 시작한 그는 2014년 5월 부친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입원한 뒤부터 삼성그룹 경영을 실질적으로 이끌어 왔다,

“치열함이 삼성의 DNA여서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돌이켜보면 중요한 것을 놓친 것 같습니다. 삼성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 국민 신뢰를 간과했습니다. … 저희가 잘 할 수 있는 사업에 집중하겠습니다. 국민에게 큰 빚을 졌고, 꼭 되돌려 드리겠습니다.”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해 말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결심 공판 최후진술로 한 말이다.

이 부회장이 무엇으로 살지 그리고 어떻게 살지 이미 답을 내놓았다. 무노조경영 폐지 및 준법감시위 설치 등등 이재용의 삼성은 달라졌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재벌특혜와 정경유착, 할아버지와 아버지세대의 어두운 과거 삼성과는 완전 결별하고 국민과 함께 하는 이재용의 뉴 삼성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그리된다면 진정 승어부(勝於父)가 아닐 수 없다.

한데 국민 운운하는 것이 행여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임기응변 수사였다면 실로 큰 코 다칠 일이다. 성난 민심은 그 어떤 권력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용의 뉴 삼성 행보를 국민들이 이제 냉정하게 지켜보고 있을 듯하다. 그리고 이제 이재용 부회장이 보여줄 차례다.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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