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정유진 기자] 최근 서울 신림역 인근에서 벌어진 흉기난동 사건이 사회 전반에 적잖은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내가 불행하니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알려진 피의자 조선씨의 얼굴은 26일 오후 경찰에 의해 공개됐다.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 한복판에서 대낮에 갑자기 벌어진 사건에 놀란 것도 잠시, 조씨의 사진을 보고 기자는 정유정을 떠올렸다. 둘 다 끔찍한 범죄로 전국 팔도를 들썩이게 하긴 했지만, 그보다 중요한 공통점이 더 있다. 정유정이나 조선이나 하위호환이기는 해도 지극히 평범한 용모와 조건을 가진,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을법한 사람으로 보인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범행동기를 본인 주장이나 온갖 추측에도 불구하고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범죄가 진짜 무서운 건 바로 그 지점이 아닐지. 무엇보다 어떤 일이 자신의 이해 범주를 벗어나면 사람은 쉽게 불안해진다.

서울 신림역 인근의 묻지마 흉기난동 사건 현장. [사진 = 연합뉴스]
서울 신림역 인근의 묻지마 흉기난동 사건 현장. [사진 = 연합뉴스]

‘불안’은 단순한 심리 기제 그 이상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불안 하나 때문에 사람은 어쩌면 평생토록 쓸 일이 없을지도 모를 물건을 우르르 구매하고, 뜬금없이 남녀를 갈라 입씨름을 벌이기도 한다. 이 같은 모습을 보고 있자면 우리는 어느샌가 불안이 한도 초과된 사회에서 저마다 홀로 분투 중인 것만 같아 안타깝다. 아닌 게 아니라 보험·제약업계처럼 아예 불안 마케팅, 공포 마케팅을 적극 활용하는 사례가 있을 정도니 말 다했다. 이러한 홍보 전략에 휩쓸리는 건 과연 어리석은 일부 사람들에 불과할까?

최근만 해도 인공 감미료 아스파탐 공포가 몰아칠 뻔했지만, 개인적으로 기자가 몸소 겪어본 공포 마케팅 중 최고는 단연 ‘빨갱이’라 할 수 있다. 이승복이란 어린이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다가 북한 군인에 의해 입이 찢기는(!) 그림을 무슨 위인의 생가인 양 관람해야 했던 세대에 속한 탓이다. 물론 당시 기자에게 들었던 건 ‘이런 무서운 그림을 왜 보라고 시키는지’ 하는 불평불만, 적나라하게 묘사된 참극에 대한 두려움뿐이었지만 말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으니 정당이나 정치가 뭔지도 잘 몰랐고, 무엇보다 왜 저리 잔혹한 방식으로 사람이 사람을 해치는지부터가 이해가 안 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물론 현재는 교육 기조가 개선됐겠으나, 당대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공산당은 자연스럽게 뿔 달리고 불 뿜는 괴물급 극악무도한 살인마로 치환되곤 했다. 공산당원과 일면식조차 없었음에도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게 가능했다는 건 역시 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돌이켜보건대 이는 기자가 어리고 물정을 잘 몰라 빚어진 현상만은 아니다. 언론·정부가 적절히 부추기고 겁을 준 결과값으로 많은 이들의 정신은 한때나마 사실 그 자체보다도 공포에 지배당한 셈이니 말이다.

앞선 언론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조씨에 대한 사이코패스 진단검사를 실시했다. 조씨는 이미 제압됐고 재판을 거쳐 법적 책임을 지게 될 것이 자명하지만, 여기에 ‘왜’라는 퍼즐은 여전히 빠진 채다. 어쩌면 앞으로도 쭉 그럴지 모른다. 오히려 기자는 빈 곳이 있는 그림에 지레 ‘무시무시한 사이코패스’를 써넣으면 그게 충분한 답이 될지 의구심이 든다. 진짜보다 진짜 같은 가짜가 판을 치고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때이니만큼, 도리어 사실관계를 찬찬히 짚고 제대로 판단하기 위한 노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데에 거의 유일한 자구책이 됐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지 못한 자의 결말은 굳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까지 떠올리지 않아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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