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괴담에 대한 내성이 생긴 탓일까.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면서 일본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단행했지만 국내 수산물 소비엔 별다른 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과거 ‘뇌 송송 구멍 탁’, ‘전자파에 튀겨진 참외’ 등의 괴담 탓에 미국산 쇠고기와 성주 참외를 기피하는 현상이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났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오염수 괴담의 독성이 광우병 및 사드 전자파 괴담의 그것보다 약해진 점도 혼란을 막는데 기여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지나고 보니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과거의 역설적 교훈이 괴담 생산자들로 하여금 극단의 거짓말을 자제하도록 유도한 측면이 있었을 것이란 얘기다.

광우병 파동 당시엔 일부 지상파 방송이 관련 보도를 하면서 ‘다우닝 소’를 등장시켜 마치 그 소가 광우병에 걸려 행동 장애를 겪는 듯 보도함으로써 공포감을 자극했다. 당시 문제의 지상파 방송에서는 다우닝 소가 반복적으로 노출됐었다. 여기에 ‘뇌 송송’ 등의 괴담이 가세하면서 공포감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공신력 있는 공영방송이 앞장서서 미국산 쇠고기를 먹었다가는 뇌에 구멍이 송송 뚫려 다우닝 소처럼 쓰러져 죽게 된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했던 것이다. 그런 전략은 그대로 먹혀들었고, 당시 정부는 지지율이 바닥을 치는 바람에 제대로 기능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극단의 방사능 피폭 사례를 상정한 어떠한 메시지도 등장하지 않았다. 기자의 과문 탓인지 모르나 일본산 회를 먹으면 인체에 치명적 해를 입는다는 구체적 내용의 가정은 어디에서도 제시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혼란을 잠재운 일등공신은 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오염수 관련 일일 브리핑(사진)이다. 정부는 현재 전국 1만여개 양식장과 해역 곳곳에서 수시로 해수를 채취해 방사능 오염 여부를 살펴보고 있으며, 그 내용을 모두 공개한다. 광우병 및 사드 전자파 사태를 통해 얻은 뼈아픈 교훈을 십분 활용해 괴담의 천적인 과학적 사실을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된 오염수 관련 일일 브리핑을 통해 아직까지 수산물 소비가 위축되는 신호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은 도쿄전력이 오염수 1차 방류분 7080t을 모두 바다에 흘려보냈다고 발표한 다음날이다. 도쿄전력은 잠시 공백을 둔 뒤 이달 하순에 오염수 2차 방류를 실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2차 방류와 관련된 정보 역시 입수되는 대로 모두 공개한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이날 브리핑에 따르면 노량진 수산시장에서는 찾는 손님이 늘어 전주보다 매출이 증가했다. 소매점은 17.3%, 식당은 3.5%의 매출 증가율을 보였다. 가락·구리에 있는 수산물 도매시장에서도 부산물 배출량이 전주 대비 3.1%, 작년 대비 9.2% 늘었다. 이들 시장에서도 수산물 판매가 늘어났음을 짐작하게 하는 내용들이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수산외식업소 1000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는 이번 주 매출이 전주보다 3.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 횟집 중 100곳에서는 매출액 변동이 없었다. 오염수 방류 개시 이후에도 두드러진 매출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을 종합하자면, 지대한 국민적 관심과 국내 야당의 반발 속에 실시된 도쿄전력의 1차 오염수 방류는 우리 소비자들의 마음을 유의미하게 흔들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정도면 향후 2차, 3차 방류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관심도는 더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오염수 괴담은 방류 반대에 앞장섰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단식 전날인 지난달 30일 전남 목포의 한 횟집에서 해산물을 먹었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사실상 소멸된 것으로 보인다. 당일 이 대표는 목포에서 오염수 방류 반대 집회에 참석한 뒤 횟집을 찾았다. 오염수 방류엔 반대하더라도 국내 수산업 및 횟집은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를 앞세울지 모르나 이 대표의 행동은 사실 상충된 메시지를 전했다고 볼 수 있다. 의도가 무엇이었든 실질적이고 결과론적인 메시지는 오염수 방류가 지속적으로 이뤄지더라도 우리 수산물은 위험하지 않다는 점일 것이다.

이 대표의 이런 행동은 이전의 괴담 정국 당시엔 상상할 수 없었다. 만약 이번에도 괴담이 먹혀들 조짐이 보였다면 이 대표 스스로, 수산물 오염 여부를 믿든 안 믿든, 횟집을 찾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괴담이 통할 가능성이 희박해지니 전략을 바꾸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대표의 이번 행동은 정치적 평가와 무관하게 바람직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식당에 방명록까지 남긴 것을 보면 이 대표의 횟집 방문은 ‘쉬~ 쉬~’ 하는 분위기 속에서 이뤄진 것은 아닌 듯하다. 오히려 현실 인식을 통해 전략을 수정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도쿄전력의 오염수 방류는 누구에게나 께름칙한 일이다. 그렇더라도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오염수 검증에 참여했다면 다소 불만스럽더라도 조사 결과를 존중하는 게 맞는 일이다. 우리가 G8 진입을 노리는 선진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IAEA의 검증 결과에 대한 맹목적 불복은 국제사회에서 이단아로 낙인찍힌 극소수 국가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일이다.

정작 우리가 신경써서 실행해야 할 일은 오염수 방류가 당초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시간이 흐르면서 해양 생태계에 악영향이 나타나는 것은 아닌지 등을 면밀히 살피는 일일 것이다. 그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그 내용을 시민들과 공유하면서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채비를 갖추는 것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 모든 과정이 여야 합의로 이뤄진다면 금상첨화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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