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원아, 너 밖에 없다

정우성이 광고 속에서 던진 이 한마디는 모든 대한민국 여성들을 ‘정원이’로 빙의시키기에 충분했다. ‘저런 남자라면 365일 밥만 하고 살아도 행복하겠다!’는 것. 그러더니 이제는 그 바통을 ‘국민남동생’, 아니 ‘남자’ 이승기가 이어받았다. 뿐만 아니라 이승기는 미녀스타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냉장고 CF까지 꿰찼다. 그들은 어떻게, 여자의 영역인 주방에 서서 그녀들을 유혹하게 된 것일까?

▶ ‘여자의 로망’을 시각화
수많은 여성 구매자를 상대로 소비욕구를 끌어내려면 여자의 마음을 절묘하게 캐치하는 것이 포인트다. 여자가 자신의 남자친구, 남편에게 바라는 일종의 ‘로망’을 이용하는 것이다.

여자라면 누구나 ‘연인이 나를 위해 차려주는 밥상’에 대한 환상을 한 번씩은 꿈꾸게 마련이다. 이런 이야기를 남자들에게 하면 십중팔구 ‘밥? 그까이꺼~’라며 코웃음을 친다. 물론 손수 요리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엔 아주 중요한 게 빠져있다. 여성의 공간에 있다고 해서 절대 ‘여성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최근 공개된 삼성 <지펠> 화보의 컨셉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남자가 요리를 하는 모습이다. 이승기는 몸에 피트 되는 수트를 입고 냉장고 앞에 서 있다. 파스타 면을 삶고, 우유병을 들고 있는 모습까지 시크하기 이를 데 없다. 앞치마를 두르거나 머리 수건을 쓰는 등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남자들은 본래의 멋진 모습 그대로 그 곳에 있다. 다만, 좀 더 부드럽고 달콤하며 흐트러져(?)있을 뿐이다. 하얀 와이셔츠의 단추가 몇 개 풀려있다거나, 소매를 접어 올려 팔의 근육이 살짝 드러난 것이 그 예이다. 마치 ‘평소엔 직장에서 능력 있는 남자이지만 오늘만큼은 그녀를 위해 요리를 하는’ 엄친아의 포스마저 물씬 풍긴다. 그 모습을 보며 여자들은 ‘역시 남자는 수트가 진리’같은 말을 내뱉고, 남자들은 ‘저런 차림으로 어떻게 요리를 하느냐’고 한다. 로망은 어디까지나 로망이다. 남성들 역시 미녀 스타들이 광고하는 메이커의 소주를 마시며 같이 한 잔 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것처럼 말이다.

▶ 여심(女心) 마케팅, 친숙함이 포인트
로망이라고 해서 너무 멀리 있는 것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공감이고, 내가 그 곳에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다. 비록 자신의 집보다 몇 배는 더 넓고 더 좋은 주방이지만 내가 마치 그 곳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뒤따라야 한다. 그래서 여심(女心) 마케팅을 활용하는 경우, 대부분 남성 단독 모델을 쓰는 경우가 많다. 주로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콘티가 진행되다보니 남자 모델이 말을 거는 상대방 = 광고를 보는 모든 여성들이 되어 강력한 최면 효과를 낳을 수 있다. 마치 자신을 향해 웃어주고 말을 거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게다가 늘 완벽하고 멋있을 것 같던 그들의 허술함 내지 약한 모습을 노출시켜 여성들의 모성애마저 자극한다. <청정원>의 ‘정원이’광고 시리즈의 첫 주자였던 장동건은 백수처럼 집안 여기 저기 드러누워 정원이에게 ‘밥’을 재촉한다. 다소 게으르고 껄렁대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밉기는커녕 사랑스럽기만 하다. ‘저 투정 나한테 좀 부렸으면’ 싶은 생각은 장동건이 밥을 하는 ‘정원이’에게 다가와 눈을 맞추며 웃는 장면에서 절정을 이룬다.

사실 장동건이 연기한 광고 속 인물은 휴일이면 집에서 빈둥거리며 집안일은 도와주지도 않는 일반적인 남편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 일상성에 환상이라는 마법의 가루를 뿌려 여성들의 눈을 멀게 만든 것. 여성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나도 저 제품을 쓰면 저렇게 되겠지, 라는 환상을 품게 되고, 이는 곧 제품의 구매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이경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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