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시청률 40%를 넘긴 초대박 드라마 <찬란한 유산>. 여기엔 드라마처럼 ‘찬란한’ 남자가 한명 있었다. 잘난 외모 뿐 아니라 바르고 단정한 이미지, 좋은 머리까지 가진 이승기. 하지만 그를 설명하기엔 이 몇 가지로는 부족하다. 이런 정도의 조건이라면 난다 긴다 하는 연예계에 발에 채일 만큼 많기 때문. 그렇다면 대체, 왜, 무엇 때문에 이 많은 별들을 제치고 이승기가 ‘승기(勝機)’를 잡은 것일까? 한 번 빠지고 나면 도무지 빠져나올 수 없는 그의 매력을 파헤쳐보자.

▶ ‘남동생’과 ‘남자’사이
이승기, 2004년 데뷔 당시 ‘내 여자라니까’노래를 통해 누나에게 ‘너’라고 하겠다면서 당돌한 출사표(?)를 던졌다. 이 노래에 남자들은 모두 ‘가사가 왜 저러냐’는 반응을 보였지만 여자들, 특히 ‘누나’들은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다. 한국 가요 역사상 처음으로 ‘누나’라는 블루오션을 공략하여 데뷔 앨범을 성공 시킨 것이다. 그는 그렇게 누나들의 로망이자 꿈이 되었다. 그런 그가 어느새 남자의 향기를 물씬 풍기는 한 남자로 성장했다. 이 땅의 많은 누나들은 최근 CF와 화보 등에서 잇달아 선보인 식스팩과 근육을 보면서 소년에게서 남자를 발견했다. 뿐만 아니라 <찬란한 유산>을 통해서 ‘나쁜 남자’로서의 매력도 얻게 됐다.

<찬란한 유산>이 한국에서 첫 방영할 당시 여러 시청자와 언론사들의 우려가 있었다. 이승기는 그 당시 타 방송사의 <1박2일>에서 엉뚱하고 순수한 이미지로 활동 중이었는데, 비슷한 주말 시간대에 전혀 다른 이미지로 대중 앞에 서게 되면 본인의 이미지 충돌과 더불어 드라마의 몰입에도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게다가 까칠한 나쁜 남자 ‘선우환’역을 소화해내기엔 연기 경험이 짧다는 것 또한 큰 우려를 자아냈다. 하지만 이 모든 잡음을 이겨내고 시청률 40%의 금자탑을 쌓는 성과를 보였다. 극 중 상대역인 한효주와 문채원 사이에서 삼각관계의 중심축 역시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게다가 두 여배우 모두 이승기와 동갑(한효주)이거나 연상(문채원)임에도 ‘오빠’역할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리드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렇다고 이승기가 완벽하게 남동생 이미지를 벗고 남자의 세계로 진입한 것은 아니다. 보통 신인 연기자들이 정극 첫 주연을 맡음과 동시에 완벽하게 이미지 변신을 꾀하는 것과 달리 그는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여전히 ‘국민남동생’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다. 자신이 맡았던 역할 때문에 원래 이미지의 훼손이 될 거라는 예상은 단순한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남자의 향기를 물씬 풍기며 ‘나 이제 남자 됐어요~’하다가도 어느샌가 해맑게 웃고 떠드는 그의 모습을 보자면 다시금 순수한 소년의 얼굴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이승기는 그렇게 남동생과 남자 사이의 경계선에 서 있는 상태다. 어찌 보면 어중간하고 애매한 이미지로 전락할 수도 있지만 그는 훌륭하게 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소화해내고 있다. 아마 이승기는 주 팬층인 여성들의 모성애와 로맨스를 동시에 충족시켜내는 몇 안 되는 스타 중 한 명이 아닐까.

▶ ‘엄친아’와 ‘허당’의 공존
그는 연예계의 대표적인 ‘엄친아’(엄마친구아들)이다. 학창시절 학생회장을 역임한 적도 있으며, 대학교에서도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성적을 냈으며, 일반 연예인들과 달리 휴학 한 번 없이 학사과정을 마친 바 있다. 올해는 대학원에 진학해 열심히 수업을 듣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오기도 했었다. 외국어 실력도 뛰어나다. 얼마 전 후지 TV <와랏데이이토모>에서 유창한 일본어로 대화를 나눠 진행자들을 놀라게 한 적도 있다. 외모도 빠지지 않는다. 180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준수한 이목구비, 패션 감각까지 갖추었다. 거기에 연기 잘해, 노래 잘해, 도무지 흠이라곤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그러나 그에게 이런 자로 잰 듯한 완벽함만 있었다면 아마 지금의 인기는 없었을 것이다. 그가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사랑받기 시작한 계기는 주말예능 프로그램인 <1박2일>. 그간의 완벽하고 댄디하던 모습은 간데없고 엉뚱한 질문이나 대답, 허술한 일면을 보며 대번에 ‘허당 이승기’라는 친근한 캐릭터로 인식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누나들의 동생’에서 ‘국민남동생’으로 거듭나게 된 셈이다. 이는 결국 팬 연령층의 다양화라는 결과를 낳았다. 10~20대에 편중된 인기가 아니라 30대 직장 여성들, 40~50대 아줌마 팬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팬덤을 가지게 된 것이다.

▶ 대중성과 고급이미지 동시 획득
‘이승기는 아이돌일까?’ 언뜻 쉬워 보이는 이 질문의 답은 의외로 쉽지 않다. 그는 1987년 1월 13일 생으로, 그와 같은 나이또래의 아이돌은 슈퍼주니어의 최시원, 동방신기의 시아준수 등이 있다. 나이대로만 보자면 그 역시 아이돌측에 속한다. 하지만 이승기를 단순히 ‘아이돌’가수로만 규정하는 것은 뭔가 한참 어긋나 보인다. 그는 앞서 말했듯 굉장히 넓은 팬 층을 소유하고 있다. 이 얘기는 곧 이들로부터 상당한 구매력을 이끌어 낼만한 파워를 지녔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이것은 연예계에서 수익과 직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이미 그가 찍은 냉장고 CF로 증명이 되었다.

현재 이승기와 같은 또래의 아이돌 가수들은 TV광고를 많이 찍긴 하지만 치킨이나 음료수, 학생복 등에 한정되어 있어 굉장히 트렌드성이 강하며 한정적이다. 언제고 인기가 달라지면 다른 이가 꿰차고 들어올 수 있는 자리인 것이다. 모델이 활동하는 기간 동안 그 인기를 빌려 최대한 상품을 많이 팔아치우는 것이 목적이다 보니 해당 가수들은 단기간에 이미지를 소비해야 되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대중들에게 식상한 존재로 전락하기 쉽다.

반면 이승기는 최근 김치냉장고와 냉장고 CF를 연달아 선보이면서 ‘고급 광고모델’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하고 있다. 단발성 광고와 달리 가전제품은 고급스럽고 신뢰감 있는 이미지가 생명이기 때문에 상당히 까다롭게 모델이 선정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냉장고 등의 가전제품은 여태껏 A급으로 알려진 톱여배우들이 했던 것을 감안했을 때 그의 모델 선정은 꽤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그의 스타성을 여실히 입증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광고주의 입장에서 물건이 잘 팔릴만한 대중성을 확보한 동시에 브랜드 자체의 이미지를 고수할 수 있는 모델은 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연기와 노래, 두 마리 토끼를 잡다
이승기가 <찬란한 유산>으로 대중들에게 크게 인식되면서 가수활동은 하지 않는 듯 보였다. 하지만 가요 프로그램 무대에 오르는 횟수가 적었을 뿐, 앨범 판매량에서는 활발한 활동을 벌인 다른 가수들보다 앞서 있었다. 앨범과 음원판매 만으로 가요 탑랭크 10위 안에 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 연기를 겸업하게 되면 자연스레 가요계와는 담을 쌓는 등의 행보를 보이는 것이 통례. 이승기는 어느 쪽도 포기하지 않았다. 드라마의 OST에 자신의 노래를 싣는 등 윈윈 전략도 구사해냈다.

그는 노래를 못해서 연기를 한 것도 아니고, 연기가 되지 않아 다시 가수를 한 케이스도 아니다. 이승기는 둘 다 너무나 잘해냈다. 보통 아이돌 출신 연기자가 첫 연기에 도전할 때 ‘발연기’ 논란을 벗어나기 어려운 데 반해, 그는 첫 연기작인 <논스톱5>에서 대학생 역을 자연스럽게 소화해냈으며, <소문난 칠공주>에서는 마마보이와 바람둥이를 오가는 철없는 남편 역을 맛깔나게 연기했다.

▶ 그는 벼락스타가 아니다
<찬란한 유산>이 종영 후 한 토크쇼에서 촬영 당시의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그 때 여주인공이었던 한효주는 자신의 대기실에 앉아있으면 옆 대기실에서 이승기의 대본 연습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같은 대사를 다른 톤으로 몇 번이고 연습하는 통에 본인의 대본 연습에 차질이 생길 정도였다고. 그는 결코 벼락스타가 아니다. 아무런 노력 없이 대가를 받은 것도 아니다. 물론 데뷔와 동시에 많은 주목을 받긴 했지만 잘생기고 노래 잘하는 가수에게 그 정도의 관심은 사실 평범한 수준이었다. 그 후에 이어진 자기 관리와 철저한 노력이 지금의 그를 만들어 낸 것이다. 앞으로도 그의 연기자, 혹은 가수, 또는 예능인으로서의 전망은 몹시, 몹시 밝다. 이제 곧 그를 이승기가 아닌 ‘승사마’로 부를 때가 오지 않을까.[이경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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