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옷차림을 보고 봄이 왔음을 안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꽃샘추위 탓에 여성들이 큰 맘 먹고 산 ‘봄 신상’을 고이 모셔두기 일쑤이기 때문. 대신 봄을 알리는 지표는 화장품으로 옮겨갔다. 봄을 맞아 각 브랜드 별로 경쟁적으로 출시하는 화이트닝 화장품은 ‘미백의 계절’이 왔음을 알리는 중요한 지표. 이렇듯 매해 반복되는 ‘하얀 전쟁’이지만 매번 그 양상은 미묘하게 다르게 전개된다. 올해는 특히 환상보다는 현실감에 무게를 둔 광고가 많이 눈에 띈다.

화이트닝 광고의 핵심은 보다 더 하얗게 표현된 모델의 피부와 화면 처리가 기본. 주로 모델이 여신 같은 모습으로 등장해 마치 ‘이것만 바르면 나처럼 될 수 있다’를 강조하곤 한다. 별다른 대사 없이 화면을 그윽하게 바라보거나 옷자락을 날리기도 한다. 하지만 요새 구매자들은 CF속 미녀들의 모습이 조명과 화장, 보정 등으로 이루어진 것을 충분히 캐치하고 있다. 따라서 최근 화장품 광고에서는 이런 환상성을 강조한 화장품 홍보보다는 여성들의 공감을 끌어내는 ‘현실형’광고가 뜨고 있다. 화면 속에서 고고하게 미모를 뽐내던 모델들이 구매자들 곁으로 가까이 다가온 것이다.

SKⅡ 광고에서는 대표 ‘동안 미녀’임수정이 나와서 자신의 피부자랑을 한다. “요즘 연애 하냐고 다들 물어봐요.”라고 한다. 군더더기 없이 여성들에게 딱 와 닿는 설명이다. 이 말은 “요즘 살 빠졌니?” 못지않게 가장 듣기 좋은 오해 중 하나. ‘사랑에 빠진 여자는 아름답다’라는 공식과 정확히 부합하기 때문이다. 임수정이 이 화장품 모델이 되기 전부터 좋은 피부였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순간만은 모델 = 나 라는 공감을 이끌어내기 충분하다. 이어서 그녀는 “써보세요. 피부에서 광채가 나요.”라는 부추김의 멘트를 던진다. 마치 피부 좋은 친구가 진심으로 권해주는 느낌이 난다. 가격은 결코 만만치 않지만 기꺼이 집어들만큼 ‘강력한’ 한 방이다.

‘헤라’의 화이트닝 에센스 선전은 여성들의 구체적인 피부 고민을 집어내어 주목을 받은 타입. ‘분홍립스틱, 왜 떠 보일까?’라는 멘트로 시작하는 이 광고는 많은 여성들의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맞아, 나도 그래’라는 공감을 산 뒤 지적인 이미지의 김태희가 등장한다. 그녀가 던지는 한 마디. “피부의 조명을 탁 켜보세요.”그럴듯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김태희가 하는 말이라 더 신뢰가 간다. 게다가 피부에 조명을 ‘켠다’라는 비유를 통해 광고에서 전하려는 메시지가 감각적으로 전해진다. 사실 이전의 헤라 화장품 광고에는 김태희의 여신같은 비주얼을 강조한 신비주의 콘셉트가 많았다. 안티에이징 제품을 선전할 때도 김태희는 화면에 얼굴을 비추고 매혹적인 자태를 뽐내는 것이 전부였던 반면, 이번 CF에서는 일종의 조언자 역할을 맡아 적극적으로 여성들을 ‘설득’한다.

시세이도의 최지우는 ‘여배우의 피부 비밀’을 내세웠다. 피부 비법이 뭐냐는 기자의 질문에 “특별히 하는 건 없어요~.” 라고 내숭을 떤 뒤 앙큼하게 웃는다. 그녀의 비밀은 바로 미백 에센스. 뻔~한 설정이지만 이 상황 역시 여성들의 공감을 사기 충분하다. 누구나 파파라치 컷에 잡힌 여배우의 흠 없는 피부를 동경해 본 적이 있기 때문. 그녀들도 좋은 피부를 갖기 위해 노력한다는 친근한 메시지가 전달된다.

한 피부과 전문의는 “화장품 광고의 모습이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광고의 특성상 어느 정도의 과장은 있지만 구매자들에게 현실적이고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가는 것이 요즘의 추세다. 이는 인터넷을 통한 정보검색 발달로 화장품과 피부 관련 지식이 널리 알려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또, 한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화장품 광고의 변화는 고객들의 니즈(needs)에 맞춘 것이다. 특히 화이트닝 화장품은 다른 라인에 비해 오래 써야 그 효과를 본다는 점에서 광고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경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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