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드라마의 인기 요소는 이른바 ‘막가는 캐릭터’에 있다. 단순한 악의 축이 아니라 ‘사건’을 발생시키는 주된 인물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사실 마냥 착하고 올바르기 만한 인물만 있다면 작품 속 이야기는 진행될 수 없는 법. 누군가는 사고를 쳐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또한, 이런 캐릭터들이 전에는 시청자들의 미움을 받았다면, 요새는 오히려 주인공보다 더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막가는 캐릭터’는 제멋대로인 성격에 결코 밉지만은 않고,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주인공보다 더 공감이 간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 - 정해리(진지희 분)
초반 <지붕 뚫고 하이킥>을 알린 결정적 한마디. “빵꾸똥꾸야!”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경, 신애 자매를 죽도록 괴롭히고 위, 아래 할 것 없이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에겐 막무가내 언행을 일삼는다. 부잣집 손녀딸로서 부족한 것 없이 자란데다 식탐도 어마어마하다. “여긴 내 집이야. 그러니까 여기 있는 건 다 내거야”라는 대사는 해리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 이것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악동 캐릭터의 탄생이다. 하지만 이런 해리의 모습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항상 신애처럼 ‘착한 어린이’이기만을 강요받았던 대부분의 어른들이 해리가 울고 불며 떼쓰는 모습에 대리 만족을 느낀 것이다. 극이 후반부로 갈수록 해리가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재미 역시 쏠쏠했다. 신애에게 이기적이고 못되게만 굴던 해리는 신애가 떠난 뒤 목을 놓아 우는가 하면 자기 때문에 화상을 입은 세경에게 돼지 저금통을 몰래 건네기도 한다. 이는 누군가가 가르친 결과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 바뀐 것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어른들의 마음 역시 흐뭇해진다. 만약 해리가 엄마에게 호되게 혼난 뒤 개과천선했다면 이런 호응은 얻지 못했을 것이다.

▶ 드라마 <부자의 탄생> - 부태희(이시영 분)
해리의 어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명품으로 온 몸을 휘감고, 맘에 안 드는 사람의 뺨을 때리는 것은 물론 나이 많은 아랫사람들까지 막 대한다. 머리도 살짝 모자라서 “자기 아버지를 아버지라 못 부른 이순신”같은 말들을 당당하게 하곤 한다. 지적을 당하면 “당신 잘리고 싶어?”라며 상대방을 윽박지른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철부지 아가씨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이유는 그 특유의 ‘코믹함’덕분. 속이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한다거나 자기 뜻대로 안되면 발악을 하고 떼를 쓰다가 자폭해 버리는 연기가 일품이다. 단순무식하고 자기감정에 솔직한 것이 매력으로, 자신의 욕망을 당당히 표출하는 요즘 세대에 부합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원하는 것을 가지기 위해 수단방법 안 가리는 데다 직접 행동을 개시하는 적극성과 과감함에 왠지 속이 ‘뻥’뚫리는 느낌마저 든다.

▶ 드라마 <검사 프린세스> - 마혜리(김소연 분)
공주병에 ‘된장녀’ 기질이 다분한 그녀가 검사라면? 명품 경매에 참석하기 위해 검사 워크샵을 땡땡이 쳤다면? 마혜리는 ‘검사’라는 직업의 특정 틀을 깼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게다가 보통 막가는 캐릭터는 극의 감초 역할을 위한 조연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검사 프린세스>의 마혜리는 버젓이 주인공 자리를 꿰찼다는 것이 특이한 점. 검사라는 직업에 정의감이나 사명감 따위는 느끼지도 않고, 남이 베푸는 친절에 “얼만데요?”라며 찬물을 끼얹는다. 물론 특별한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세상물정 모름에 주변인들에게 어이없는 캐릭터로 낙인찍혀 버렸다. 하지만 그녀가 틀린 말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가 하는 행동을 어이없게 여기다가도 “저는 공무원이기 이전에 여자니까 꾸미고 다닐 겁니다.”라든가 “일거리가 많음에도 검사를 더 뽑지 않는 것은 국가의 잘못”같은 주옥(?)같은 대사를 듣자면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지곤 한다. 자신의 직업에 목숨을 걸고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 미덕인 시대는 지난 것이다. 직업은 직업일 뿐, 자신의 삶의 질이 더 중요하다고 당당히 말하고 싶은 이들을 대변하는 셈. 살짝 모자란 개념은 극의 진행과 더불어 차차 채워 넣으면 될 것이다.나이스경제=이경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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