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은 500년이란 긴 세월 동안 공식적으로 기록된 조선시대 역사다. 이같이 긴 역사를 사실적으로 기록한 왕조의 역사는 없다. 그래서 그 가치는 대단하다. 

조선왕조실록의 근거가 된 것은 사관이 기록한 사초다. 왕이라도 절대 볼 수 없었던 그 기록이 실록으로 정리됐다. 강압적으로 사초를 본 왕은 그후 최후가 좋지 않았다.

지난 겨울 광화문을 비롯, 전국을 촛불로 물들이게 했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역사 속에 숨겨질 뻔 했던 사건에서 본의 아니게 사초 구실을 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최순실의 태블릿PC와 안종범의 수첩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국무회의 자리 등에서 깨알같이 메모한 안 전 수석의 수첩은 흡사 사초를 보는 듯하다. 붓이 아니라 펜이고, 사관이 아니라 전 수석이 쓴 게 다르다고 해야할까? 참 역사의 아이러니다.

'비선실세' 최순실(61)씨 등 국정농단 사건 재수사 논의가 나오는 가운데 검찰이 안종범(58)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비서관의 수첩을 추가 확보한 것으로 확인돼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안 전 수석 수첩은 국정농단 사건 핵심 증거로 꼽히는 만큼 향후 재수사 논의가 탄력받을 수 있을 가능성도 있어 주목된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12일 "최근 기존에 확보한 안 전 수석 수첩 외에 그동안 특검이나 검찰에 제출되지 않은 추가 수첩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며 "추가 수첩 7권 사본을 안 전 수석 보좌관 김모씨 등으로부터 제출받아 압수해 분석 중이다"고 밝혔다.

안 전 수석은 청와대에서 근무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시한 내용을 수첩에 상세히 기록했다.

앞서 1기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지난해 11월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하면서 안 전 수석 수첩 17권을 확보해 수사에 요긴하게 활용해 왔다.  이후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지난 1월 김씨로부터 안 전 수석 수첩 39권을 임의제출 받아 압수한 바 있다.

이번 7권의 수첩은 어떻게 입수된 걸까? 

검찰은 지난달 31일 김씨를 불러 총 56권의 수첩 가운데 2015년 9월 등 일부 빠진 시점을 추궁,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수첩 존재를 확인하고 제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안종범 전 수석은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을 대기업에 강요한 핵심 증거로 꼽히는 자신의 업무수첩 내용을 법정에서 기억하지 못한다며 혐의를 부인한 바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는 지난 4월 21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최순실(61)씨와 안 전 수석의 29차 공판에서 안 전 수석의 피고인 신문을 진행했다.

당시 안 전 수석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및 대기업 출연을 지시했다는 근거로 제시되는 자신의 업무수첩에 대해 모르쇠로 답했다.

당시 검찰은 "2015년 1월 수첩에 'VIP, 대기업, 문화재단, 갹출' 등의 내용이 있다"며 "박 전 대통령에게 어떤 지시를 받았냐"고 캐물었다.

하지만 안 전 수석은 "기억이 잘 안난다"며 "특검에 제출됐다는 수첩은 본 적 없어 말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안 전 수석 측은 그의 보좌관이 특검에 별도로 낸 수첩은 위법하게 수집됐다며 증거로 동의하지 않았다. 

당시 검찰이 "박 전 대통령 지시를 받아서 수첩에 기재했지 않느냐"고 추궁하자, 안 전 수석은 "검찰에 제출한 17권 수첩도 일부 사본만 보여주고 질문해 당시 기억을 못해 애먹었다"며 "새롭게 임의제출된 수첩을 전혀 못본 상태에서 자꾸 질문한다"고 반발했다.

안 전 수석은 지난 5월 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본인의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혐의 30차 공판에서도, 업무수첩과 관련해 반박했다.

당시 안 전 수석은 "특검 수사를 결코 폄훼하려는게 아니며, 이 업무수첩은 정당한 절차에 의해 수집되고 공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업무수첩에 대해 증거로 '부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민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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