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로 프로젝트'로 대학로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최진(49) 아시아브릿지컨텐츠 대표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돼 충격을 던졌다.

뉴시스에 따르면 21일 오후 6시께 서울 성동구 모 아파트 주차장에서 최진 대표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발견 당시 차량 안에는 번개탄을 피운 흔적이 있고 타살 흔적도 없어 자살로 추정하고 유가족과 회사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숨진 배경과 사인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최진 대표는 숨진 채로 발견되기 전 회사 직원들에게 SNS 메신저를 통해 '미안하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발송한 사실도 경찰에 의해 확인됐다.

숨진 최진 대표는 아시아브릿지컨텐츠를 통해 영화배우 김수로를 프로듀서로 내세운 '김수로 프로젝트'를 히트시켰다. 김수로 프로젝트 외에도 ‘택시드리벌’ ‘로미오와 줄리엣’ ‘이기동 체육관’ 등 20여편의 연극, 뮤지컬 히트작을 잇따라 내며 대학로의 ‘흥행 연금술사’로 부상했다.

그러나 최진 대표는 잘하는 공연 외에 교육, 식음료, 해외사업 등 다양한 영역으로 사세를 확정하는 과정에서 진 90억원의 빚을 이기지 못해 회생신청까지 하는 상황에 몰렸다. 지난 7일 서울회생법원은 아시아브릿지컨텐츠의 회생(법정관리) 신청을 받아들여 ‘포괄적 금지명령’을 공고했다. 채무자회생법에 따라 채권자가 채무자의 재산을 압류하는 등 강제집행을 금지하는 것인데 파산신청과 달리 개인이나 단체가  재기해 빚을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데 주된 목적이 있다.

최진 대표는 그 포괄적 금지명령으로 재기 희망을 찾은 지 불과 2주 만에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해 대학로 공연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김수로 프로젝트는 연극, 음악극과 뮤지컬을 오가며 20여편을 제작해 대학로 상업극의 큰 축을 맡아왔다. 2011년 10월 개막한 김수로 프로젝트 1탄 연극 ‘발칙한 로맨스’을 시작으로 연극 ‘택시드리벌’ ‘친정엄마’ ‘이기동체육관’, 뮤지컬 ‘곤 투모로우’ ‘고래고래’ ‘커피프린스1호점’, 음악극 ‘유럽블로그’ ‘밀당의 탄생’ 등에 이어 지난 3월에는 김수로가 직접 출연한 연극 ‘밑바닥에서’까지 흥행 퍼레이드를 펼쳤다.

소극장에 맞춰 기획된 작품을 중·대극장으로 옮겨 발표하는 등 새로운 접근법으로 성공한 그늘에는 적자 돌려막기가 숨어 있었다. 배우나 스태프들이 몇 달 동안 유예기간을 두고 출연료와 임금을 늦게 받는 사태가 이어진 것이다. 다음 작품을 기획해 투자를 받으면 그 때서야 밀린 출연료와 임금을 메우는 돌려막기는 공연계의 고질질적인 관행이었는데 ‘김수로 프로젝트’ 최진 대표도 잇딴 흥행에도 그 덫을 피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결국 다른 분야로 사세를 키워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시도도 여의치 않게 되자 극단적인 선택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법원에 회생신청을 할 때만 해도 아시아브릿지컨텐츠가 보유하고 있는 공연 21개 판권을 해외에 수출해 자금흐름을 개선하고 보유 콘텐츠를 통한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벌여 추가 수익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끝내 기수로 프로젝트 등 아시아브릿지컨텐츠는 수장을 잃고 무너질 위기에 처하게 됐다.

대기업 출신의 프로듀서로는 연예매니지먼트사 싸이더스 HQ 부사장을 지냈던 최진 대표는 2011년 문화사업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배우 김수로와 손잡고 '김수로 프로젝트'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김수로는 작품 개발, 선택, 캐스팅, 제작 과정, 마케팅까지 참여해 최진 대표와 공동 프로듀서로 활약했다.

최진 대표는 지난해 7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김수로의 열정은 항상 절절하게 느끼고 있다. 물론 내가 제작자로서 발을 맞추기는 하지만 ‘김수로 프로젝트’의 원동력은 김수로의 열정인 것”이라고 찬사를 보낸 바 있다. 이어 “남들은 왜 힘들게 창작을 하는가, 라고 한다. 라이선스는 리스크가 적을 수도 있는데 우리는 70% 이상 창작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창작에 힘쓸 생각”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최진 대표는 “김수로와 ‘창작이 없으면 공연계 미래가 없다’라고 생각하고, 이를 또 해외에 가지고 나가자는 열정과 비전을 갖고 있다. 김수로는 생각만 하지 않고 추진력과 돌파력으로 이에 다가가고 있다”라고 믿음을 보내면서 오랫동안 동반자로 공연계의 지평을 더욱 넓히겠다는 의지를 보인 바 있다. 그리고 1년 뒤 고단한 삶의 연속인 공연계의 그늘 속에서 분투해온 그는 그 다짐과 약속을 이어가지 못하고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고 말았다.   김민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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