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럽연합(UE) 탈퇴, 즉 ‘브렉시트’ 이행을 위한 영국 하원의 표결이 16일 새벽(한국시간) 실시된다. 영국과 EU 양측이 장기간에 걸친 협상을 통해 마련한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한 승인투표가 실시되는 것이다.

일정상 승인투표가 합의안 찬성으로 귀결되면 이행법률 심의를 거친 뒤 EU와 영국 의회는 정식 비준동의 절차를 진행하게 된다. 이 과정이 모두 끝나면 브렉시트는 무난히 완성된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정황상 브렉시트 합의안이 하원에서 승인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현지 언론들의 전망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렇다면 브렉시트가 난항을 겪는 이유는 무엇이고, 합의안에 대한 영국 하원의 승인이 무산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로는 무엇이 있을까?

브렉시트 합의안 승인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은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한 성격을 띠고 있다. 영국이 지닌 특수한 역사와도 관련이 있다. 현지 언론과 외신들은 브렉시트 합의안 승인을 어렵게 하는 대표적 요인으로 ‘안전장치(Backstop)’를 거론하고 있다. 표현은 한 단어로 이뤄져 있지만 그 내용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여기서 말하는 ‘안전장치’란 영국과 아일랜드공화국 간의 ‘하드 보더’(국경 통과시 통행 및 통관을 까다롭게 하는 것)를 없애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의미한다.

안전장치가 왜 필요했는지를 이해하려면 영국의 역사를 먼저 일별해야 한다. 현재 영국은 본토 중앙의 잉글랜드와 남서부의 웨일스, 북쪽의 스코틀랜드, 그리고 본토 서쪽 해상에 위치한 아일랜드섬 북부 일부 지역을 포괄하고 있다. 아일랜드섬 남쪽엔 아일랜드가 별개 국가로 자리하고 있다. 이로 인해 아일랜드섬은 영국과 아일랜드가 국경을 맞댄 채 공존하는 지역으로 남아 있다.

문제는 아일랜드섬이 두 개 국가로 나뉘어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동일하다는 데서 출발한다. 정서적 동질감으로 인해 아일랜드섬에서는 오랜 동안 북아일랜드와의 통일을 목적으로 한 저항운동이 벌어졌다.

이 같은 역사성으로 인해 EU와 영국은 브렉시트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안전장치’ 마련에 합의하게 됐다.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간 하드보더 방지를 위해 북아일랜드를 당분간 EU 관할 지역으로 남겨둔다는 것이 골자였다.

그러자 여기서 새로운 이의 제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번엔 영국이 사실상 본토와 북아일랜드 두 개 지역으로 나뉘게 된다는 불만이 제기된 것이다. 그로 인해 영국의 테리사 메이 정부는 영국 본토를 EU와의 임시 관세동맹지역으로 남겨두자는 추가 제안을 했고 양측은 이에 합의했다.

이같은 내용이 영국과 EU 간 브렉시트 합의안에 포함되자 이번엔 브렉시트에 찬성하는 보수당 내 강경파 등의 반발이 일기 시작했다. 안전장치가 가동되면 영국은 실질적으로 EU 관세동맹에 잔류해야 하고, 그럴 경우 브렉시트의 의미가 없어진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이 같은 반발로 위기를 느낀 메이 총리는 EU에 ‘안전장치’를 종료할 수 있게 보장하는 법적·정치적 장치의 마련을 요구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EU와 영국 간 이뤄진 기존 합의안은 협정 내용을 어느 일방이 취소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영국 보수당내 강경파들은 현재의 합의안이 영국에 대한 주권을 침해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반대는 그러지 않아도 브렉시트에 반대하고 있는 노동당 등 야당의 입장에 동조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하원 의석 분포상 합의안이 승인되려면 전체 639석(표결권 있는 의석) 중 과반, 즉 320명 이상의 찬성표를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집권 보수당이 차지하고 있는 의석수는 317석에 불과하고 내부 의견마저 갈려 있다.

그간 보수당과 호흡을 맞춰온 북아일랜드 연방주의 정당인 민주연합당(DUP·의석수 10석) 또한 합의안 표결시 반대표를 던질 뜻을 밝히고 있다. ‘안전장치’ 방안이 불만족스럽다는 게 그 이유다. DUP는 북아일랜드와 영국 본토 사이엔 어떤 종류의 미미한 장벽이라도 절대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DUP는 자칫 북아일랜드만 EU 관할로 남을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브렉시트 합의안 승인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와 관련된 전망은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다. 그만큼 뚜렷한 시나리오를 적시해 제시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영국의 메이 총리도 최근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합의안이 부결될 경우 벌어질 상황에 대해 확실한 답을 내놓지 않은 채 영국이 “미지의 영역”에 놓일 것이라고 밝혔다.

합의안이 부결되면 영국 정부는 곧바로 플랜 B를 제시해야 한다. 시한은 오는 21일이다. 현재로서는 합의안 부결시 메이 정부가 어떤 계획을 제시할 지 알 수 없다.

분석가들이 예상하는 유력한 시나리오 중 하나는 메이 총리가 합의안을 다시 한번 승인투표에 회부하는 것이다. 이는 그간 공개된 메이 총리의 발언을 토대로 하고 있다. 메이 총리는 이번 합의안이 유일한 대안이며 이 안이 승인되지 않을 경우 ‘노딜 브렉시트’ 또는 ‘노 브렉시트’가 현실화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노딜 브렉시트’는 말 그대로 양자 간 아무런 계약 없이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 극심한 혼란과 불확실성의 확대로 영국 경제는 물론 글로벌 경제에 큰 충격파가 몰아닥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때부터 영국은 유럽 내 왕따로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상의 기준만을 적용받게 된다. 일각에서는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된다면 1970년대 오일쇼크에 견줄 정도의 충격이 가해질 것이란 분석까지 내놓고 있다.

합의안 부결 후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면 ‘노딜 브렉시트’는 오는 3월 29일부터 눈앞의 현실이 된다. EU의 헌법에 해당하는 리스본조약에 따라 영국은 탈퇴 통보 2년 뒤인 이날 부로 EU에서 자동으로 탈퇴하게 된다.

메이 총리가 이 같은 극단적 상황을 피하기 위해 선택할 카드로는 EU와의 재협상이 거론되고 있다. 일부 내용을 수정해 합의안을 다시 만들어 의회 승인을 요구할 것이란 얘기다.

이를 위해 영국 정부가 브렉시트 시점의 연기를 요구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영국 가디언지는 브렉시트 합의안 승인이 불발될 경우 영국 정부가 브렉시트 시점을 오는 7월로 미루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이 연기를 요청하면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특별정상회의를 소집해 이를 승인해야 한다.

향후 일정이 이같이 흐른다 해도 그 사이 영국 내 상황은 무척 혼란스러울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제1 야당인 노동당은 합의안 부결시 조기총선을 추진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메이 총리에 대한 신임을 묻겠다는 뜻이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합의한 부결 이후엔 조기총선만이 가장 민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조기 총선이 실현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점쳐진다. 현행법상 브렉시트 합의안 부결은 조기 총선의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이기 때문이다.

향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든 브렉시트 합의안 부결은 영국에 적지 않은 혼란을 안겨줄 것으로 보인다. 혼란상의 정도는 메이 총리가 입을 정치적 타격의 크기와 관련이 있다. 따라서 그 충격의 강도가 어느 정도일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 가늠자는 합의안 찬반 표의 차이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지 언론은 분석가들을 인용, 반대표가 찬성표보다 150표 이상 많을 경우 메이 총리의 정치적 미래도 불투명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그 표차가 100표 이내라면 메이 총리가 브렉시트 합의안의 수정을 거쳐 다시 한번 의회 승인을 요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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