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18일 올해 경제성장이 당초 전망(2.6%)을 소폭 밑도는 2%대 중반을 나타낼 것으로 경기 인식을 수정했다. 구체적 수정 전망치는 0.1%포인트 하향조정한 2.5%다. 이는 작년 말부터 뚜렷해진 국내외 경기둔화 여건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들어 경기 여건이 악화하고 있다는 경고는 이미 곳곳에서 나왔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한국 경기가 부진해지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우려의 수위를 한 단계 더 높였다. KDI는 지난 7일 ‘KDI 경제동향’ 보고서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대내외 수요가 위축되면서 경기가 점차 부진해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작년 11월 이후 경기 진단에 ‘둔화’라는 표현을 썼지만, ‘부진’으로 표현 수위를 높여 최근 상황이 더 악화했음을 시사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사진 = 연합뉴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사진 = 연합뉴스]

기획재정부도 지난 12일 ‘그린북’에서 “세계 경제 성장세 둔화, 반도체 업황 부진 등 대외여건 악화에 따른 하방리스크가 확대되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한은이 석 달 만에 성장전망 기대를 하향 조정한 요인으로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지표 하락이 꼽힌다. 통관 기준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로 작년 12월 -1.7%, 올해 1월 -6.2%, 2월 -11.4%, 3월 -8.2%로 부진했다. 반도체 가격 하락과 중국경기 둔화가 영향을 미쳤다.

오석태 소시에테제네랄(SG) 이코노미스트는 “KDI도 경기판단을 수정할 만큼 1분기 경제지표가 좋지 않았다”며 “반도체 수출에서 금액뿐 아니라 물량까지 떨어지는 등 부진을 보인 것이 한은 판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한은의 경제성장 기대 하향 조정은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유지키로 한 것과 대비된다. IMF는 지난 9일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3.3%로 0.2%포인트 내리면서도 한국의 기존 전망치(2.6%)는 바꾸지 않았다. 다만 IMF는 정부 성장률 목표(2.6∼2.7%) 달성의 전제조건으로 9조원을 초과하는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언급했다.

‘성장세가 다소 완만해졌다’는 한은의 경기인식은 정부가 국회를 상대로 추경의 조기 집행 필요성을 설득하는 데도 어느 정도 힘을 보탤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18일 오전 당·정협의회를 열고 25일까지 추경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한 뒤 5월 임시국회 회기 내 처리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추경안의 신속한 통과에는 야당의 협조가 필요하다.

추경이 적기에 신속하게 집행될 경우 경제성장률 유지의 버팀목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추경 규모가 7조원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IMF 권고 수준에는 못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은이 경기 인식을 바꾸면서 연내 금리 인하론도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기준금리 전망에 대해선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세계경기 둔화의 여파를 한국도 피해갈 수 없다는 게 연내 금리인하 전망 의견의 주요 근거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세계 경제가 하향 흐름을 보일 텐데 그 흐름이 우리 경제에 증폭돼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며 “미·중 무역 갈등이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경우 수출로 버텨오던 우리 경제는 꺾이는 속도가 빨라져 하반기 중 한 차례 금리 인하를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내다봤다.

반면 가계부채 문제 등 금융안정 등을 고려해 한은이 쉽게 금리 인하에 나설 수 없을 것이란 진단도 있다.

윤여삼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한은이 지난해 금융안정 측면을 고려해 경기상황이 좋지 않았는데도 금리를 올렸다”며 “가계부채 등 문제가 남아 있는데 금리를 다시 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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