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기업들의 사내유보금을 둘러싼 논란이 재연됐다. 5일 한국산업연합포럼(KIAF)이 진행한 ‘우리 기업들, 사내유보금 과도하게 보유하고 있나?’란 주제의 온라인 공개 세미나가 그 발단이었다.

지루하게 이어져온 사내유보금 관련 논란은 몇 가지 갈래를 이루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사내유보금의 개념에 대한 것이다. 어찌 보면 사내유보금을 둘러싼 다양한 논란들은 대부분 개념에 대한 이해 차이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사내유보금의 개념에 대한 이해가 다르다 보니 처리 및 활용 방식에 대한 견해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사내유보금을 둘러싼 가장 뜨거운 논란의 주제는 그에 대한 과세 및 환수 문제였다. 논란의 단초는 기업들의 사내유보금에 별도로 세금을 매겨 국고로 옮기거나 기타의 방식을 통해 그 돈을 사회로 환수하자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그 같은 주장은 사내유보금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됐다는 반론에 부딪혀 있다.

현대자동차 제네시스 생산라인. [사진 = 현대자동차 제공/연합뉴스]
현대자동차 제네시스 생산라인. [사진 = 현대자동차 제공/연합뉴스]

개념 정리부터 하자면, 사내유보금은 기업들이 세금과 배당금을 치르고 남긴 자금을 말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잉여금이 장기간 축적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사내유보금의 구성요소에 대한 이해가 서로 다른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그에 대한 설명이 언론 등을 통해 수도 없이 이어졌지만 ‘사내유보금’이란 용어가 지닌 언어적 의미로 인해 지금도 구성요소에 대해 오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대표적 오해가 사내유보금이 곧 현금 또는 기타 현금성 자산이란 생각이다.

하지만 기업들의 사내유보금에서 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간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이 밝힌 자료들에 따르면 그 비중은 대체로 20% 수준에 머물러 있다. 나머지는 토지나 공장, 생산설비 등 실물자산이다. 유보금에 포함된 현금조차도 임금 지급이나 차입금 이자 지급 등을 위해 준비된 것이 대부분인 경우도 있다. 이는 유보금이 현금 자산이라 할지라도 모두가 긴급상황 발생시 곧바로 동원될 수 있는 돈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실물자산이 사내유보금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은 “기업들이 사내유보금을 투자에 사용해 고용을 늘리려 하지 않고 곳간에 쌓아두려 한다”는 비판이 온전히 성립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런 비판은 사내유보금이 100% 현금자산일 경우에만 합리성을 띨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내유보금을 강제적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사회로 환수해야 한다는 급진적 주장은 더더욱 성립되기 어렵다. 그런 주장은 실상을 모르는데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를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유보금에 대한 과세를 두고는 ‘이중과세’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미 세금을 내고 남은 잉여금에 다시 과세를 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는 박근혜 정부 당시 경제사령탑이었던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강력하게 밀어붙인 바 있다. 2015년 도입된 기업소득 환류세제가 그 산물이었다. 기업 소득을 가계소득으로 환류해 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것이 최 전 부총리가 내세운 논리였다. 하지만 당시에도 사내유보금의 실체를 둘러싼 논란과 함께 재계의 극심한 반발이 일어났었다. 뒷날 문재인 정부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돼버린 제도이지만, 최경환씨는 부총리 재임 당시 소득주도성장을 주창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5일 KIAF 세미나에 참석한 김태동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 연구원은 “기업들의 사내유보금은 대부분 실물자산이나 연구 등에 재투자되고 있다”며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의 비중은 극히 일부분”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KIAF가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30개 기업을 대상으로 올해 1분기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사내유보금 25조3000억원에서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16.7%(4조2000억원)에 불과했다.

김 연구원은 이를 바탕으로 “(사내유보금이) 변화에 대응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며 “대부분의 기업들이 차입을 통해 자본을 조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의 사내유보금 과세 정책으로 인해 기업들의 세금 부담이 지속적으로 증가했다고 주장한 뒤 “과도한 과세는 국내 경영활동을 위축시키고 해외에서 번 돈을 그곳에 쌓아두게 해 결과적으로 국내 세수 감소를 초래한다”고 강조했다.

사내유보금 과세가 비자발적인 투자를 유도함으로써 결국 투자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날 세미나에서 정만기 KIAF 회장은 반도체 같은 업종에서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백조원 정도의 대규모 투자와 선제적 투자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하면서 세제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사내유보금을 투자해 고용을 늘리라는 주장은 기업회계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이미 세금을 내고 남은 자산에 과세하는 것은 명백한 이중과세”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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