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글로벌 인플레이션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지수 산정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원은 국내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다. 최근 공개된 한은 10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당시 회의에서는 다수 위원들이 우리의 소비자물가지수 산정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그 탓에 물가지표가 정확한 물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문제 제기의 구체적 내용은 주거비가 소비자물가지수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현재 통계청은 매달 소비자물가지수를 산출해 발표하고 있는데, 주거비의 경우 일부만 반영하고 있다. 즉, 집세를 따로 분류한 뒤 이를 물가지수에 반영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집세는 전세와 월세를 통칭한다. 통계청은 집세 전체는 물론 전세와 월세 각각의 전월 대비 및 전년 동월 대비 등락률을 집계한 뒤 발표하고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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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세만 물가에 반영하다 보니 물가지수가 자가에 거주하는 이들의 주거비는 아예 고려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번에 금통위원들이 물가지수 산정 방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가에 반영되지 않지만 자가 거주자들의 주거비는 실제 소비생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결과적으로 자가 거주자들이 느끼는 지표물가와 체감물가 간 괴리는 엄청나게 커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논란은 전부터 있어왔다. 이를 의식해 통계청도 월별 소비자물가동향을 발표할 때 자가주거비포함지수를 보조지표로 작성해 공개하고 있다. 이 지표가 별도로 발표되고 있지만 그야말로 보조지표일 뿐 소비자물가지수에는 여전히 자가주거비가 반영되지 않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통계청의 자가주거비포함지수는 자가주거비를 소비자물가지수에 포함해 별도로 만든 지수다. 이 지수는 자가를 주거목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얻는 서비스에 대한 값을 추산한 뒤 그것을 지불 비용으로 삼는 방식으로 산출된다. 즉, 자신이 거주하는 자가를 전세나 월세로 내놓았을 때 거기서 얻을 이익을 기회비용으로 산정해 주거비로 삼는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 지표마저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주거비 현황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그 이유다. 실제로 최근 수년 동안 발표된 월별 소비자물가동향을 살펴보면 자가주거비포함지수가 대체로 공식 소비자물가지수보다 낮게 나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올해 10월의 경우 자가주거비포함지수(전년 동월 대비)는 소비자물가지수(3.2%)보다 낮은 2.9%였다.

자가주거비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다 보니 우리의 경우 주거비가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비현실적으로 낮게 나타난다. 한은 분석 결과 우리나라의 2020년 기준 소비자물가 내 주거비 비중은 9%에 불과했다. 반면 자가주거비를 임차료와 함께 폭넓게 반영하는 미국(32%)이나 영국(26%)·네덜란드(24%)·아이슬란드·독일(이상 21%)·스위스(20%) 등에서는 그 비중이 우리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런 차이 탓에 최근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미국의 5%대 고물가와 우리의 2%대 물가만 놓고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가 미국보다 안정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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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현실 속에서의 자가주거비는 임대를 주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통계청 추산 기회비용의 규모를 훨씬 웃돈다. 주택 구입시 대출받은 돈에 대한 이자, 주택의 감가상각비, 각종 보유세 등이 모두 실제 주거비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처럼 보유세가 급등한 상황에서는 세금 부담 증가만으로도 자가주거비가 큰 폭으로 오르게 된다.

자가주거비 산입 범위를 어디까지로 정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국제적인 표준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 결과 자가주거비를 물가지수에 반영하는 나라들도 각각 다른 방식으로 그 값을 산출하고 있다. 미국·일본·스위스 등은 임대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기회비용으로 삼는 ‘임대료 상당액 접근법’을, 스웨덴·캐나다 등은 주택 소유에 수반되는 제반 비용을 산정해 지수에 적용하는 ‘사용자비용 접근법’을 채택하고 있다.

자가주거비를 소비자물가지수에 포함시키는 일은 세계적 흐름에도 부합한다. 한은에 따르면 유로지역도 2026년부터 소비자물가지수에 자가주거비를 반영하기로 했다.

문제는 적용 방식과 범위다. 이에 대해서는 향후 전문가 집단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물가지수의 현실성을 높이는 것도 좋지만, 자가주거비의 전면 반영이 물가지수의 변동성을 급격히 키움으로써 물가정책 및 통화정책 운용에 혼선을 가져다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은 금통위의 한 위원은 이와 관련, “어떤 방식이 바람직한지 편제기관인 통계청과의 협업을 통해 신중히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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