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최근 들어 우리가 새롭게 접하고 있는 용어 중 하나가 ‘택소노미(Taxonomy)’다. 이 개념은 서구에서 먼저 도입돼 차근차근 법제화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6월 ‘그린(Green) 택소노미’를 제정했고, 이를 새해부터 적용키로 했다. 올해 7월에는 또 하나의 택소노미인 ‘소셜(Social) 택소노미’ 초안을 발표함으로써 이 역시 법제화 단계에 돌입하게 됐다.

이런 흐름에 맞춰 우리나라도 환경부 주도로 한국형 그린 택소노미인 이른 바 ‘K택소노미’를 제정해 조만간 확정 발표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택소노미’는 순서 또는 배열 등의 의미를 지닌 ‘택스(Tax)’와 ‘-학(學)’이란 뜻을 지닌 ‘노미(nomy)’가 만나 이뤄진 합성어이다. 두 단어가 연결의 의미를 지닌 알파벳 ‘o’를 매개로 합쳐져 새로운 단어로 재탄생한 것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어근(語根)을 쫓아 풀이하자면, ‘택소노미’는 어떤 콘텐츠나 정보 등을 일정한 기준에 맞춰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학문 또는 그런 일을 뜻한다. 상정 가능한 분류 기준으로는 알파벳 순 등을 들 수 있다. 참고로, 택소노미와 달리 무작위로 모아져 있는 정보나 콘텐츠의 집합을 태그(꼬리표)로 분류하는 것을 ‘폭소노미(folksonomy)’라 부른다.

EU가 먼저 법제화해 새해부터 적용키로 한 그린 택소노미는 환경과 관련된 택소노미다. ‘소셜 택소노미’가 인간의 기본적인 삶의 수준과 인권을 개선하는 데 역점을 둔 것과 달리 온실가스 감축 등 지구 환경 개선에 기여하는 활동들을 분류해 놓은 목록이라 할 수 있다. 그린 택소노미에서 목록화된 텍스트는 각국의 경제활동 하나하나가 환경 개선 방향에 부합하는지를 가르는 기준으로 기능하게 된다.

그린 택소노미의 새해 적용을 앞두고 유럽 각국은 현재 치열한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가장 뜨거운 쟁점은 원자력발전을 친환경 경제활동으로 볼지 여부다. 이 문제를 두고 유럽 국가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공방전을 이어가고 있다.

원전을 친환경 목록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국가들의 중심에 서 있는 나라가 프랑스이다. 프랑스는 EU 내 친(親)원전 국가들을 규합해 독일을 축으로 하는 반(反)원전 국가들에 맞서고 있다. 프랑스와 뜻을 같이하는 국가군(群)에는 핀란드와 체코·폴란드·헝가리·루마니아·슬로바키아·크로아티아·불가리아·슬로베니아 등이, 반원전 국가군에는 독일을 필두로 오스트리아·덴마크·포르투갈·룩셈부르크 등이 포함돼 있다.

프랑스 등 친원전 국가들은 반대파들을 향해 원전을 환경 개선 측면에서 지속가능한 투자처로 분류해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반원전 주도국인 독일 내부에서도 원전 활용에 찬성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내분이 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북반구의 겨울 추위가 절정인 시점에 이르렀지만 에너지 공급난이 해소되지 않고 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난까지 더해지면서 원전 찬성 여론이 확산된 것으로 분석된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프랑스는 자국 내 원전 건설 재개를 선언한 가운데 6기의 대형 원자로 건설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U에서 탈퇴한 영국 또한 대형 원자로의 새로운 건설을 추진 중이다. 이들 두 나라는 별도로 소형 원전 개발에도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들 나라 외에 네덜란드는 최근 50억 유로(약 6조7000억원)를 투입해 원전 2기를 신설한다는 계획을 마련했고, 폴란드는 자국 안에 곧 1호 원전을 건설함으로써 원전 국가 대열에 합류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월성 원자력발전소. [사진 = 한국수력원자력 제공/연합뉴스]
월성 원자력발전소. [사진 = 한국수력원자력 제공/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도 일찍이 친원전 정책을 표방하고 나섰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달 초 “원전은 무공해 청정에너지”라고 선언한 바 있다.

우리나라가 조만간 제정할 ‘K택소노미’ 문제를 두고도 원전 활용 여부에 대한 내부 논란이 일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4년 넘게 탈원전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에 대한 반대 여론은 꾸준히 이어져왔다. 최근 들어서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의 악역을 산업통상자원부와 나누어 담당했던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마저 입장을 바꿔 탈원전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언론에서는 한수원이 탈원전 반대 입장을 담은 의견서를 최근 정부에 제출했다는 보도를 내보내기도 했다. 이 보도는 환경부가 조만간 발표할 목적으로 ‘K택소노미’ 제정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서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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